"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떠나라. 그리고 더 많이 낚시하라."(폴 퀸네트) 한국 낚시 인구 600만 명 시대. 최근 나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아직 낚시의 손맛과 짜릿한 묘미를 알아챌 수 없는 '아기 조사'다. 하지만 낚시의 세계에선 초짜냐, 프로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 세계에선 결코 잘났다고 떠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환대만이 존재한다.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에 흉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좋다. 낚시란 놈이 말이다.
심리학자 폴 퀸네트는 그 자신이 미치광이 강태공이 되어 낚시 예찬론을 펼쳤다. 그러며 그는 말한다. 비 내릴 때 돌아다니는 것은 미친 개와 낚시꾼 뿐이라고. 길에서 부처와 예수를 만나면 낚시터로 데려가라고. 조력 50년, 프로 강태공 다운 작가의 포스다.
직을 잃고 업을 잃어 낚시-홀릭에 '빠져 빠져~'
직을 잃고 업을 잃어 갈 곳이 없던 나는 최근 '낚시-홀릭(holic)'에 시나브로 빠졌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낚시를 해보라는 선배의 권유에서였다. 조력 한 달 째, 무작정 찾아간 낚시터는 별천지와 다름없었다. 보이는 풍경 자체가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었다. 간간이 물결에 비치는 햇살의 광채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것에 몰입해 모든 시름과 불안이 떨어져 나간다.
추석 긴긴 연휴를 맞아 인천 계양구에 위치한 굴포천 수로를 찾았다. 홀로 맞는 명절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가 내린 결론이다. 아직 낚시의 매력을 알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한 시기다. 그럴수록 더 가까이 낚시와 친해지고자 무작정 차를 끌고 수로로 향했다.
정오에 내리쬐는 뜨거운 폭염은 언제나 낚시터의 훼방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낯선 강태공들은 요지부동이다. 다들 자기만의 자리를 찾아 신세계를 개척 중이다. 시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리다. '야호~월척이로세~' 사이즈가 얼핏 30cm는 넘어 보인다. 팔뚝만한 붕어가 힘 좋게 꿈틀 거린다. 초짜 강태공인 나도 순간 흥분이 몰려온다.
고요한 낚시터의 평화는 입질과 상관없이 언제나 나를 삼매의 순간으로 이끈다. 도시의 온갖 소음과 관계의 망상을 빠져나온 일탈이랄까. 복잡하고 얽혀진 세상사를 벗어나 온전한 나만의 왕국으로 초대된 느낌이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 상태의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낚시는 그런 느낌이다. 유의 세계에서 무의 경지로 들어가는 황홀경의 파라다이스다.
금빛 단단한 근육질, 매끈하게 빠진 몸매에 '홀라당~'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에게도 힘 좋은 입질이 찾아왔다. 호기롭게 건져 올린 녀석은 15cm급 붕어다. 금빛 단단한 근육질에 매끈하게 빠진 녀석의 몸매가 내 손길을 더욱 자극시킨다. 움켜쥔 녀석의 몸에선 끈적거리는 이물질이 흘러나온다. 녀석과 내가 혼연일체 된 카타르시스의 순간이다.
붕어를 담아놓은 살림망에선 벌써 10여 마리가 힘을 과시한다. 한 달 만에 얻은 성과치고는 꽤 좋은 성적이다. 시간이 지나 이내 빨간 저녁놀이 수로 주변을 물들인다.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은 수로 주변엔 케미컬라이트(찌불) 불빛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 이내 붕어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고 다음을 기약한다.
연휴 셋째 날 아침 다시 수로로 향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조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강태공 선배와 함께 찾았다. 붕어 포인트를 잡고 주변을 둘러본다. 같은 곳이지만 낚시터는 언제나 다른 빛깔을 선보였다. 마치 변함없이 반겨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애잔한 눈빛처럼 말이다.
채비를 마치고 대를 던진다. 찌가 서서히 올라서며 강태공의 설렘을 고조시킨다. 이내 작은 움직임이 두세 번 포착된다. 그러더니 마치 우주의 에너지가 끌어올리듯 서서히 하늘로 찌가 솟구친다. 힘차게 낚아챈 대의 끝에서 짜릿한 힘이 느껴진다. '첨벙첨벙' 붕어는 나와 힘겨루는 데 지쳐 서서히 그 모습을 비친다. '우와!' 내 생애 최고의 한 수다. 23cm 실한 녀석이 나를 반겼다. 옆에 있던 선배와 감격의 포옹을 나눈다.
선배의 자리에서도 입질이 포착. '아니 이게 웬 걸~' 힘 좋은 붕어가 낚싯대를 통째로 낚아 채갔다. 바늘을 문 채로 저 멀리 도망쳐갔다. 신호를 알리는 찌는 계속 오르락내리락 춤을 춘다. 당황한 선배가 대를 가져오려 용을 썼다. 옆에 있던 낚싯대의 바늘을 꿰어 끌어올려는 심사다. 그 순간 허걱! 꿰어져 있던 바늘이 내 쪽으로 튕겨 나와 내 입술을 정확히 꿰었다. '아으읔!'
주변에 있는 강태공들도 놀란 모양이다. 서둘러 입술에 꿰인 바늘을 빼냈다. 찢어진 입술에서 피를 토했다. '아~낚시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구나' 순간 후회와 나쁜 심경이 섞여 나온다. 그제야 선배의 무안함을 느낀 나는 아무 일 없듯 또 낚싯대를 던진다. 피식 헛웃음이 나온다.
짧은 해프닝이었지만 십년 감수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낚시 예찬을 펼친다. 그 후 이틀 간의 낚시는 시간과 인내와의 싸움으로 끝났지만 평화로운 풍경에 충분히 만족했다. 모든 일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시간도 인내도 필요하다. 다 때가 있기 마련이다. 아쉬움, 고통, 기쁨, 미련 등등 낚시는 정말 삶의 희로애락과 닮아 있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시오, 신나게 낚시했으니
낚시를 통해 삶을 배우기엔 아직 이른 조력이다. 하지만 기간이 뭐가 중요하랴. 이미 낚시에 입문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다림과 인내를 배우고 있으니. 최근 연예인들이 낚시방송에 얼굴을 비추며 조력을 과시한다. 정치인도 예외가 아니다.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마주한 순간 모두가 평등하듯 강태공이 되는 순간 모두가 겸손한 인간으로 기억될 뿐이다.
낚시가 주는 힐링이 좋다. 낚시를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가 좋다. 폴 퀸네트는 말한다. "제대로만 하면 낚시는 스포츠가 아니라 인생을 사는 방법"이라고. 그의 묘지명에는 이것 만으로 족하다고 강조한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시오. 신나게 낚시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