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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6월 처음으로 남북한 정상이 만났다.
 지난 2000년 6월 처음으로 남북한 정상이 만났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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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이 있다. 추석이면 여름 내내 땀을 흘려 거둔 오곡백과로 음식을 장만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배불리 먹으니, 날마다 한가위면 좋겠다는 속담에는 해마다 춘궁기 보릿고개를 겪은 민중의 소박한 소망이 담겨 있다.

분단 70년을 넘긴 갈등과 긴장의 남북관계에서도 '한가윗날만 같아라' 했던 때가 있었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그해 추석이 그랬다. 그해 추석은 9월12일(화)이었다. 주5일근무제가 시행되기 전이어서 추석 앞뒤로 하루씩 쉬어 나흘 연휴였다. 차량용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다. '민족 대이동'이라고 부를 만큼 1천만 명이 고향을 찾는 복잡한 연휴에, 예고에 없던 북한의 '스파이 대장'과 인민군 대장이 서울을 찾은 것이다.

추석 전날인 9월 11일 오전 10시쯤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를 비롯해 박재경 총정치국 부총국장, 림동옥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단 8명이 서울-평양 직항로를 통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용순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와 대외연락부를 십수년간 지휘하며 대남공작-협상-경협을 모두 담당하는 '스파이 총책'이다. 림동옥 부부장은 대남사업만 30~40년을 담당한 대남공작의 산증인이었다. 두 사람 다 몇 해 뒤에 고인이 되었다.

16년 전 추석, 북한 '스파이 대장'의 갑작스런 남행

지난 2000년 9월 13일 오후 김용순 노동당비서 일행이 경주 불국사를 방문해 다보탑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림동옥 당 부부장.
 지난 2000년 9월 13일 오후 김용순 노동당비서 일행이 경주 불국사를 방문해 다보탑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림동옥 당 부부장.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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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련한 스파이 대장들은 남북 핫라인(직통전화)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라며 "북남 화해와 협력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방문하겠다"고 연락해왔다. 갑작스레 북측 스파이 대장 일행을 맞이하게 된 남쪽 호떡집(국정원)에선 불이 났다.

당시 국정원장은 임동원, 북한담당 3차장은 김보현, 대북전략국장은 서영교였다. 제주도가 고향인 김보현 차장은 예매한 귀성 비행기 티켓을 취소해야 했다. 대구가 고향인 서영교 국장도 마찬가지였다. 양영식 통일부차관과 김보현 차장이 김포공항에서 이들을 영접했다. 귀성을 준비하던 통일부 출입기자들도 발이 묶였다.

박재경 대장이 함께 온 목적은 놀랍게도 인민군 장병들이 채취한 '칠보산 송이'를 평양을 방문한 남측 인사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박재경이 가져온 송이는 1인당 10kg 들이 300명분(3t)으로 당시 가격으로 9억 원 분량이었다.

박재경은 6월 정상회담 대표단과 8월 언론사 방북단 등 267명과 전직 대통령과 각 정당 및 정부 요인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소금물에 담갔다가 구워먹거나 참기름에 볶아 먹는 것이 좋은데, 참기름이 많으면 송이의 향이 줄어들어 좋지 않다"고 요리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이 모든 것은 김정일의 지시였다. 실제로 박재경은 서울에서 송이 전달식만 갖고 6시간만에 평양으로 돌아갔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박재경이 1968년 1월21일 '청와대를 까고 박정희의 멱을 따러' 남파된 인민군 124군 부대원 31명 중에서 유일한 원대 복귀자였다는 점이다. 이는 함께 특공훈련을 받은 전우이자 생포된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를 통해 확인되었다.

김정일은 왜 아버지(김일성)가 박정희의 모가지를 떼어오라고 보낸 특공대원 박재경에게 굳이 송이선물을 들려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것일까?(김정일은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 때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칠보산 송이 4t을 평양에서 선물했다). 김정일이 죽어서 그 속을 알 수는 없지만, 국정원은 그것을 김정일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서 남쪽과 손을 잡는 쪽으로 변화를 작심한 징후로 파악했다. 김보현 차장은 당시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김정일은 한계 상황에 직면한 북한을 끌고 나가기 위해서 남쪽과 손을 잡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작심하고, 맨 먼저 북한 체제의 버팀목인 군부를 '변화의 공범'으로 동참시켰다.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군부에 술을 따르게 했다. 이어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을 남쪽에 보내 군부도 변화의 공범으로 만들고, 그 다음에는 대남 공작팀을 보내 (북조선을 도와줄 만큼) 남조선이 잘사는지를 보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군부의 최고위급인 조명록 차수를 미합중국에 보내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하게 했다."

주도면밀한 국정원의 '장난'과 계면공략 심리전

이 모든 것이 2000년 추석을 전후해 이뤄진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들이다. 특히 대남 공작팀의 남행은 남북관계는 물론, 북한이 어렵게 선택한 변화라는 물길의 분수령이었다. 국정원은 김정일의 작심과 군부의 동의(공범)로 이끌어낸 변화의 흐름을 타려고 몇 가지 '장난'을 쳤다. 역시 당시 '비보도'를 전제로 김보현 차장이 들려준 얘기로 처음 공개하는 비화이다.

"김용순이 왔을 때도 변화의 흐름을 타려고 일부러 공군특별기에 태웠다. 공군기는 민항기보다 고도가 낮다. 시간도 30~40분이 더 걸린다. 우리는 산야와 도로를 일부러 다 보여주었다. 경주에 갈 때도 대구에 내려서 고속도로의 밀린 차량도 보여주고, 들판에 퍼런 산도 보여주고, 올 때는 비행기의 고도를 더 낮춰 일부러 한 바퀴를 돌려서 서울 야경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북한은 전력 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보고 놀라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용순에게 간간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김용순은 '좋은데요', '잘 됐는데요'라고 단답형으로만 대답했다. 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김용순은 분명히 김정일에게 본 대로 보고했을 것이다. '남쪽에 기대면 살 것'이라고 보고하도록 장난을 친 것이다. 김일철이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장난은 '애드 립'이 아니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되고 기획된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 국정원(대북전략기획국)이 마련한 '대북포용정책의 전략적 보완방안 검토'(대외비) 문건에는 김정일과 군부를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고 변화의 흐름에 태우기 위한 방안들이 담겨 있다. 이 대외비 문건에서 제시한 '전략적 보완방안'의 일부는 나중에 실제 대북정책으로 입안-시행되었는 바 ▲2002년 월드컵 남북한 분산 개최 ▲미전향장기수와 국군포로의 맞교환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와 재북 이산가족 송금허용을 위한 적십자회담, 국회회담 등 준당국 회담 추진 등이다.

집권층과 주민간의 틈새를 조장하기 위한 계면공략(界面攻略) 심리전을 전개하는 내용이 담긴 국정원의 ‘대북포용정책의 전략적 보완방안 검토’(대외비) 문건
 집권층과 주민간의 틈새를 조장하기 위한 계면공략(界面攻略) 심리전을 전개하는 내용이 담긴 국정원의 ‘대북포용정책의 전략적 보완방안 검토’(대외비) 문건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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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보완방안' 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계면공략도(界面攻略圖)를 제시한 가운데, "북한 집권층과 주민 간의 틈새를 벌리는 계면공략 심리전을 전개한다"는 대목이다. 계면공략 심리전은 ▲일반주민에게는 "기아와 억압의 탈출구는 한국뿐"임을 전파하고 ▲중간권력층에게는 "통일 또는 체제변화 시에도 기득권 보장 혹은 더 나은 전망"을 제공하고 ▲권력 핵심에게는 "경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 마디로 북한에 개혁-개방이라는 '독이 든 사과'를 먹이는 전략이다.

부전승(不戰勝)이 백전백승(百戰百勝)보다 상위의 계책

병법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고의 전략으로 친다. 곧, 부전승(不戰勝)이 백전백승(百戰百勝)보다 상위의 계책이다. CIA 교범에서 포섭공작의 네 가지 요소는 MICE, 즉 돈(Money), 이념(Ideology), 타협(Compromise), 자존심(Ego)이다. 그러나 첩보공작의 세계에서 최고의 공작은 MICE에 의해 '통제받는(controlled)' 공작보다 조종되지만 조종되고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유형의 공작이다. 즉, 북한에 부지불식 간에 '독이 든 사과'를 먹여 천천히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것이 최고의 국가공작이다.

국정원이 대북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을 국가공작으로 뒷받침한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적어도 북한 핵실험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에 '독이 든 사과'를 줘서 천천히 개혁-개방으로 이끌려는 국정원의 대북전략은 노무현 정부 집권 초기의 대북송금 특검으로 동력을 상실했다. 그런 가운데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이 터졌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라기보다는 9.19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대북 금융제재를 강행한 부시 행정부의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 봉쇄에 대한 반발의 성격이 컸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에 뒤늦게 추진한 2차 정상회담의 성과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무용지물이 되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임자인 클린턴의 정책을 부정하는 ABC(Anything But Clinton) 노선을 고수했다. 이를 흉내 낸 이명박 대통령이 6.15 공동선언 및 10.4 선언 이행 거부, 금강산 관광 중단 등 ABR(Anything But Roh) 노선을 취한 가운데 6자회담이 표류하자 북한은 2009년 5월 2차 핵실험으로 대응했다. 이어 남북대화가 실종된 가운데 한반도는 천안함 폭침(2010. 3)과 5.24 대북제재 조치, 그리고 연평도 포격(2010. 11) 등 휴전 이후 최악의 안보 불안 사태가 야기되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말기이자 박근혜 당선인 시절인 2013년 2월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걸고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 차관급-고위급 회담을 가졌으나 관계 회복에는 실패했다.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설파해 통일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부풀리더니, 2016년 1월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2월에 개성공단 폐쇄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그리고 마침내 제 발등까지 찍으며 북한을 옥죄는 봉쇄 정책을 펼친 지 7개월만인 9월 9일 북한의 제5차 핵실험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북한의 제1~5차 핵실험 비교
구분(장소)
1차(1번 갱도)
2차(2번 갱도)
3차(2번 갱도)
4차(2번 갱도)
5차(2번 갱도)
일시
'06. 10. 9.
'09. 5. 25.
'13. 2. 12.
'16. 1. 6.
'16. 9. 9
진도(위력)
3.9Mb(1Kt 이하)
4.5Mb(수Kt)
4.9Mb(6~7Kt)
4.8Mb(약6Kt)
5.0Mb(약10Kt)
평가
핵폭발 성공
폭발위력 향상
부분적 성공
 핵폭발 성공

송이는 사라지고 '버섯구름' 어른거리는 '말폭탄' 난무하는 추석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공개한 장면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핵탄두 기폭장치 추정 물체 앞에서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지도하는 모습.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공개한 장면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핵탄두 기폭장치 추정 물체 앞에서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지도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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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이로써 핵무기 고도화의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북한을 제외한 마지막 핵실험 국가는 1998년 인도(5회)와 파키스탄(6회)으로 알려졌다). 이 모든 것은 외교와 대화를 단절한 미국과 한국이 각각 대북 적대시 정책과 봉쇄 정책을 펼친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북한 붕괴론에 기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대화를 배제한 이른바 '이명박근혜 정부'의 강경책은 사실상 파탄이 났다.

서구 과학자로서는 유일하게 2010년까지 영변 핵시설을 둘러본 핵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해커 박사의 얘기다. 그는 최근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핵실험은 제재를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려고 하는 시도나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기다리는 정책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미국이 현재의 정책 경로를 지속하는 한 북한은 위험한 핵무기 확대를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북한의 핵물질 생산과 핵무기 고도화를 억제할 어떤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남북한의 국정 책임자들이 쏟아낸 '말폭탄'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남북한은 파탄난 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기 위해서라도 더 강경한 공세와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 있다. 한반도는 '한가윗날만 같아라' 했던 때에서 16년 만에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실제로 군 당국은 제4차 핵실험 당시 '김정은 참수작전'을 공개하더니 이번에는 "북한의 핵사용 징후 포착되면 평양을 지도상에서 드러낼 것"이라며 평양을 일정한 구역으로 나눠 선제공격하는 '대량응징보복' 작전개념을 전격 공개했다. 박 대통령이 북한의 핵심 권력층과 간부, 그리고 주민을 분리하는 대북 전략을 공언하고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고 공격하자, 북한은 박 대통령을 그려 넣은 사격용 과녁을 공개하며 말폭탄을 날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일 밤 조기 귀국해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일부터 시작된 러시아, 중국, 라오스 순방을 마치고 9일 오후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박 대통령은 애초 이날 밤 11시께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5차 핵실험 감행으로 일정을 3시간30분가량 앞당겨 저녁 7시30분께 도착했다. 2016.9.9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일 밤 조기 귀국해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일부터 시작된 러시아, 중국, 라오스 순방을 마치고 9일 오후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박 대통령은 애초 이날 밤 11시께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5차 핵실험 감행으로 일정을 3시간30분가량 앞당겨 저녁 7시30분께 도착했다. 2016.9.9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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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뉴욕타임스>의 막스 피셔는 '북한은 미친 게 아니라 너무나 합리적이다'이라는 칼럼에서 "북한을 매우 위험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한반도를 전쟁에 준하는 상태로 유지함으로써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북한의 합리성"이라며 이렇게 비판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가까이에 있는 미군 기지와 한국의 항구들을 우선 타격하고 그 다음 미국 본토에 대한 미사일 발사로 위협하면서 미국의 침공을 저지하도록 고안되었다고 믿는다. 북한이 아직은 이러한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지만 분석가들은 향후 10년 이내에 그러한 능력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본다. 바로 이것이 절망이론으로 알려진 북한 합리성의 최절정이다(This is the culmination of North Korea's rationality, in something known as desperation theory)."

사실 심리전이든 냉전이든 열전(熱戰)이든, 전쟁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 정권과 주민의 분리 전략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해야지 빈 깡통을 요란하게 울리면서 할 일이 아니다. 또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대북 심리전을 펼치면 국정원은 할 일이 없다. 그 무엇보다도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국정원의 '장난'도 남북 간에 대화채널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남북한 사이에는 지금 아무런 대화채널이 없다. 그것이 비극이다. 아직은 '말폭탄' 수준이지만, 송이가 사라진 한반도에 언제 '버섯구름'이 피어오를지 모를 암울한 추석이다.



태그:#5차핵실험, #박근혜, #김정은, #말폭탄, #박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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