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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의 이름으로 적의 밀정을 척살한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7일 개봉한 영화 <밀정>은 개봉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송강호, 공유, 한지민과 같은 명품 배우들의 합류 소식에 더해 이병헌, 박희순과 같은 초호화 게스트들의 우정출연 소식까지 전해지며 화제를 낳았던 것.

그러나 영화가 더욱 주목 받는 까닭은 실제 사건과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팩션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미 지난 달에 개봉한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등 우리 역사를 바탕으로 한 팩션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성공하며, 이번에 개봉한 <밀정>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치도 한껏 높아져 있는 상태다.

의열단을 소재로 한 영화 <밀정>

영화 <밀정> 공식 포스터
 영화 <밀정> 공식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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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은 1920년대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활약했던 항일비밀결사 의열단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의열단의 수많은 의거들 중에서도 1923년에 있었던 '제2차 대암살 파괴계획'을 극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2차 대암살 파괴계획이란, 1923년 3월 의열단이 중국에서 직접 제조한 폭탄을 대량으로 국내에 반입하여 벌이려던 파괴공작 계획을 말한다. 당시 의열단은 식민지 조선의 수도였던 경성에 폭탄을 반입하여, 식민통치기관을 대상으로 동시다발적 폭탄투쟁을 전개할 예정이었다.

파괴대상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한 식민통치기관들과 물자들을 나르는 주요 철도였고, 암살 대상은 사이토 총독 이하 조선총독부 수뇌들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밀고로 계획은 사전에 탄로났고, 김시현과 황옥을 비롯해 작전에 참여했던 의열단원들 전원이 검거되는 바람에 작전은 미완의 계획으로 그치고 말았다.

영화 <밀정> 스틸컷
 영화 <밀정>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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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이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 책으로 만나자

의열단(義烈團). '의로움(義)을 맹렬(烈)하게 실행하는 단체'라는 뜻이다. 고등학교 근·현대사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누구나 들어봤을 그 이름이다. 이처럼 의열단이라는 이름 자체는 대중들에게 매우 친숙하지만, 사실 의열단의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열단이 전개했던 수많은 의거들 중에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건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이번 영화 <밀정> 개봉을 앞두고 의열단에 대해 궁금해하는 관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영화 <밀정>에서 다뤄지는 의열단의 행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영화 <밀정>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이다. 아래 추천하는 책들을 통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의열단의 이야기를 접해보자.

① 의열단의 리더 김원봉을 읽자, <약산 김원봉 평전>

의열단 하면 역시 '약산 김원봉'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김원봉은 의열단의 창립멤버이자 리더였던 인물이다. 수많은 의열단의 의거들을 막후에서 조종했으며, 훗날 의열단원들을 이끌고 정규 군사조직인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대일항쟁기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에게 걸린 현상금보다 의열단장 김원봉에게 걸린 현상금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은 항일투쟁사에 있어 김원봉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해방 후 김원봉은 미군정이 점령한 남한에서 '빨갱이'로 몰렸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중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끌려가 뺨을 맞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1947년 4월의 일이었다. 노덕술은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의 칠가살(七可殺: 제거해야 하는 일곱 대상)에 포함되는 인물이었다. 해방 정국에서 친일 경찰에 의해 뺨을 맞은 '전설의 항일투사' 김원봉의 심정은 어땠을까.

조선의용대 대장 시절의 약산 김원봉. 1940년대 대원들 앞에서 연설하던 장면을 선무공작 영상으로 촬영했다.
 조선의용대 대장 시절의 약산 김원봉. 1940년대 대원들 앞에서 연설하던 장면을 선무공작 영상으로 촬영했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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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김원봉은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사흘 밤낮을 울부짖었다고 한다. 끝내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1948년 월북한 김원봉은 김일성과 함께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다. 그는 북한 정권 하에서 국가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고위직을 역임하였으나 1958년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산 김원봉 평전> 책 표지
 <약산 김원봉 평전> 책 표지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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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의열단의 역사가 베일에 가려졌던 데에는 김원봉이 월북 인사라는 사실 탓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원봉은 아직까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상태다. 뿐인가. 그의 생애를 다룬 제대로 된 단행본 한 권 출간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작년에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배우 조승우가 분한 김원봉은 우정출연에 가까울 정도로 짤막하게 등장했지만, 오히려 주연 배우들이 맡은 배역보다도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만큼 항일투쟁사에 있어 김원봉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의열단장(의백)이었던 김원봉의 생애를 알아보는 것은 곧 의열단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도 같다. 2008년에 출간된 <약산 김원봉 평전>은 김원봉에 대한 최초의 평전이다.

저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오마이뉴스> 블로그 '김삼웅의 인물열전'을 통해 <백범 김구 평전>, <장준하 평전>, <안중근 평전> 등 우리 근·현대사속 인물들의 평전을 연재해온 바 있다.

그는 30여 년간 수집한 각종 자료를 토대로 김원봉의 생애를 최대한 정확하게 조명하려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의열단에 관한 이야기 역시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는 김원봉을 잡으려고 누구보다 혈안이 되었던 일제 정보당국의 기록과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들의 증언록 등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자료들이 대거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약산 김원봉 평전>을 읽는 것은 의열단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책 정보] <약산 김원봉 평전>, 김삼웅 저, 시대의 창, 2013, 18,500원.

② 김원봉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약산과 의열단>

의열단 경고문 - '조선총독부 소속 각 관공리에게'. 의열단은 끊임없이 경고문을 뿌리며 파괴, 암살을 예비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의열단 경고문 - '조선총독부 소속 각 관공리에게'. 의열단은 끊임없이 경고문을 뿌리며 파괴, 암살을 예비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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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과 의열단>은 '김원봉의 항일 투쟁 암살 보고서'라는 무시무시한 부제가 말해주는 것처럼, 의열단이 전개한 항일투쟁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1930년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을 문단에 내놓으며 정지용, 이상, 이효석 등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작가로 불리웠던 소설가 박태원이다. 그는 의열단원이었던 류자명의 '의열단간사(義烈團簡史)'와 단원들끼리 주고받던 편지 및 당대 신문기사들을 참고하여 책을 집필하였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의 생생한 구술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누구보다 의열단에 대해 정확하게 증언해줄 수 있는 김원봉을 직접 만나 그의 구술을 바탕으로 이 책을 완성시켰다.

"선생이 지금은 이미 없는 옛 동지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줄 때, 나는 그들에 대한 선생의 뜨거운 애정을 내 자신 가슴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구경 나의 이 적은 기록은 선생이 옛 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 저자 후기


<약산과 의열단> 책 표지
 <약산과 의열단> 책 표지
ⓒ 깊은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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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의열단의 주요 투쟁들을 정리하며, 배경과 과정, 의의까지도 자세하게 덧붙였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일제 당국의 감시와 검열 탓에 사건의 전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의거 후에 있었던 짤막한 비하인드 스토리들도 상세히 언급하는 꼼꼼함을 보이고 있는데,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상해 황포탄 사건'에 대한 후일담이다.

상해 황포탄 사건이란 1922년 3월 28일, 의열단원 오성륜, 김익상, 이종암이 일본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를 저격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이다.

당시 오성륜은 상해 황포탄 부두로 내리는 다나카를 향해 권총 1발을 발사하였으나, 그만 지나가던 영국 여성이 맞아 즉사하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 뒤에는 비화가 있다. 이 사건으로 일본 나가사키 형무소에 수감된 오성륜에게 한 영국 남성이 찾아왔다. 그는 바로 오성륜의 총탄에 아내를 잃은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가 오성륜의 손을 붙잡으며 꺼내는 말은 의외였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나는 불행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대들을 원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대들을 존경합니다. 나는 아내의 죽음으로 그대들을 영원히 기념하려 합니다. 앞으로 내게 기회가 있고 또 내 힘이 자란다면 나는 그대들의 해방운동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의열단을 이끌었던 리더 김원봉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의열단의 의거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책 정보] <약산과 의열단>, 박태원 저, 깊은샘, 2015, 12,000원.

③ 푸른 눈의 여성 기자, 의열단원을 취재하다 <아리랑>

해방 후 촬영한 의열단원들의 모습
 해방 후 촬영한 의열단원들의 모습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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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스'가 1937년에 기록한 의열단원 김산(본명 장지락)의 일대기다. 평양이 고향인 김산은 도쿄 유학을 하던 중, 일제의 만행에 충격을 받아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의열단에 가입한 그는 이후 조선과 중국을 넘나들며 혁명가로 활동했다. 하지만 1938년 '일제 스파이'로 몰려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내가 7년 동안 동방에 있으면서 만났던 가장 매력적인 사람 중의 하나였다" - 님 웨일스

님 웨일스는 김산을 취재하면서 그가 소속된 의열단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김산을 비롯한 의열단원들이 어떻게 먹고 마시며 생활하는지까지 세세히 기록한 것이다. 덕분에 오늘의 우리는 의열단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접해볼 수 있다.

"의열단원들은 마치 특별한 신도처럼 생활하였고, 수영, 테니스, 그 밖의 운동을 통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매일같이 저격연습도 하였다. 이 젊은이들은 독서도 하였고, 쾌활함을 유지하기 위해 오락도 하였다. 그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됐다. 언제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었음으로 생명이 지속되는 한 마음껏 생활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기막히게 멋진 친구들이었다. 스포티한 멋진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로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의열단원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생명이 지속되는 한 마음껏 생활했던 것이다."


<아리랑> 책 표지
 <아리랑> 책 표지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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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한국인 혁명투사의 생애에 호기심을 갖고 취재를 시작한 서양인 여기자의 기록은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로 출간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출간된 김산의 일대기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해방된 지 40년이나 지난 1984년의 일이다. 그마저도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의 굴레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바야흐로 신군부의 서슬퍼런 군사독재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아리랑>을 출판했던 동녘출판사의 이건복 사장은 관계 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아리랑>은 출간 3개월 만에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어 판매금지와 지형 반납 결정이 떨어졌다.

국내에서 <아리랑>이 겪어야만 했던 수모를 생각해보면, 왜 의열단의 실체가 얼마 전까지 베일에 가려져왔던 것인지 이해할 법도 하다. 그래서 <아리랑>을 읽는 것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오는 한국근·현대사의 아픔을 읽는 것과도 같다.

[책 정보] <아리랑>, 님 웨일스/김산 저, 동녘, 2005, 15,000원.



아리랑 (리커버 특별판)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동녘(2005)


약산과 의열단 - 김원봉의 항일 투쟁 암살 보고서

박태원 지음, 깊은샘(2015)


약산 김원봉 평전 - 개정판

김삼웅 지음, 시대의창(2013)


태그:#밀정, #의열단,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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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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