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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겨울은 한국에 비하면 겨울도 아니다. 한국 가을 날씨 정도라고 생각된다. 우리 동네는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300여 킬로 떨어진 바닷가에 있기에 시드니보다 따뜻하다. 그러나 한국보다 춥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라 난방 시설이 한국만큼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삼일 비가 내리더니 날씨가 춥다. 사실 춥다고 해야 아침에 일어나 바깥 온도계를 보면 10도를 내려가지 못하는 날씨다. 그러나 비구름이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심하기 때문인지 몸이 으스스하다. 체감 온도는 꽤 낮을 것이다. 집에 있으면 너무 움츠러드는 것 같아 가까운 솔트워터 국립공원(Saltwater National Park)에 가기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호주에는 국립공원이 많다. 우리 집에서 10여 분만 걸어도 국립공원이 있다. 따라서 가끔 부담 없이 찾아 나선다. 호주 정부는 숲만 보이면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호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바다를 끼고 있는 솔트워터 국립공원은 우리 동네 해변을 따라가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그러나 중간에 작은 강이 흐르고 있으므로 고속도로를 따라 돌아가야 한다.

집을 나선다. 눈에 익은 시골길, 가끔 자동차 한두 대 지나가는 한가한 도로다. 비가 온 후의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깨끗하다. 물기를 품고 있는 숲도 생기가 돈다. 먹이를 찾아다니는 새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시드니에 살 때는 복잡한 도로를 운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시골에서는 운전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올드 바(Old Bar)라는 동네를 향한다. 가까운 바닷가 동네라 종종 들르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중간에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려 월라비 포인트(Wallabi Point)라고 하는 새로 조성된 동네로 향한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솔트워터 국립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봉고차, 침대와 조리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봉고차, 침대와 조리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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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에 도착하니 넓은 주차장에는 자동차 서너 대만이 느긋하게 주차해 있다. 봉고차 한 대는 뒷문을 열어 놓고 옷을 말리고 있다. 열린 뒷문을 곁눈질로 보니 취사도구와 침구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지붕에 식수통도 있다.

숙식을 자동차에서 해결하며 여행하는, 자신만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출세나 성공이라는 단어와는 일찌감치 인연을 끊었을 것이다. 호주 오지를 여행하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삶에는 정석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임에도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오늘같이 음산하고 바람 부는 날을 기다렸다가 바다를 찾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높은 파도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궂은 날씨지만 서핑을 즐기는 사람은 더없이 좋은 날씨라고 생각할 것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바닷가에는 나이 많은 부부가 주위 경치를 사진에 담고 있다. 노년을 자동차로 여행하며 보내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주차장 근처의 산책로를 걷는다. 작은 나무들이 울창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나무는 하나같이 비틀려 있는 나무뿐이다. 재목으로 쓸 나무는 하나도 없다. 아무리 훌륭한 목수가 와도 혀를 차며 돌아갈 숲이다. 그러나 산책길로서는 손색이 없다. 못생겼기에 더 정감이 가는 나무들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산책로 끝에 이르니 태평양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겨울철에는 고래를 볼 수 있다는 안내문이 있다. 혹시나 해서 바다를 바라보지만 고래가 내뿜는 물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고래는 우리 동네에서도 가끔 보기 때문에 서운한 생각은 없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우리 동네가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작은 강줄기가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발아래에서는 높은 파도가 심하게 바위를 때린다.

팔을 벌리며 심호흡을 한다. 몸 속에 있는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기의 맛을 음미한다. 공기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맛이 다르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못생긴 나무 그득한 산책길을 되돌아간다.

산책길을 나와 야영장에 들어선다. 지난 여름에 잠깐 들렀을 때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 없었는데 지금은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는다. 야영장 큼지막한 바위에 안내문과 함께 원주민 손바닥 도장이 찍혀 있다. 이곳은 원주민들이 캠핑도 하고 원주민에게는 신성시되는 장소라는 안내문이다.

자연과 함께 그들만의 삶을 살았던 원주민의 모습을 그려본다. 물질이 풍족한 지금의 삶이 그때보다 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자연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었는데, 사회가 인간을 불행으로 몰아넣었다는 루소라는 철학자의 주장이 떠오른다.

돌아가는 길에 오면서 지나쳤던 월라비 포인트라는 동네에 들른다. 경치 좋은 해변에 새로 조성된 동네다. 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집 앞에 꿀이 진열되어 있다. 꿀 종류도 꽃에 따라 몇 가지가 있다. 시골에서 흔히 보는 주인 없는 가게다. 돈을 돈 통에 집어넣고 꿀을 차에 싣는다. 손님을 믿으며 파는 꿀, 슈퍼에서 파는 꿀보다 맛이 더 좋을 것이다.   

집으로 향한다. 바람 심하고 구름이 잔뜩 낀 음산한 날씨지만 마음은 청명하기만 하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진리(?)를 되새긴다. 

시골에서 흔히 보는 주인 없는 가게, 이 집에서는 꿀을 팔고 있다.
 시골에서 흔히 보는 주인 없는 가게, 이 집에서는 꿀을 팔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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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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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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