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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운영자인 그는 진정한 자연주의자다
▲ 제롬과 함께 대회 운영자인 그는 진정한 자연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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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라오스 국경까지
▲ 선수들이 떠난 동선을 따라 하노이에서 라오스 국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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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가 가까워지면 다가서는 느낌이 온다. 운영진의 잦은 출몰과 구경나온 원주민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캠프 입구에서 나를 알아챈 제롬이 두 손을 흔들며 환호성을 보냈다. 누군가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을 안겨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의 응원과 박수에 두 다리에 다시 힘이 붙었다. 오후 2시 30분, 한낮의 끓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원주민 마을에 임시로 조성된 캠프(30km)에 도착했다. 지독히 치열했던 첫날 레이스를 마쳤다.

2016년 3월 20일 오후, 어제는 서울 도심의 직장인에서 지금은 베트남 오지 레이서로 변신했다. 사무실을 오래 비울 수 없어 대회 전날 운영진과 선수들이 이동한 동선을 쫓아 하노이 공항부터 혈혈단신 베트남 북서부 라오스 국경의 베이스캠프까지 찾아들어갔다. 체력, 장비, 휴가, 경비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찾아가는 여정 중에 길을 잘못 들어 벼랑 끝에서 차량이 멈춰서는 공포까지 겪었다. 그나마 나이가 들어선지 낯선 것에 익숙해지고 고통이 무뎌졌다. 그래도 의식과 관점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캠프 한 켠에 웅크린 채 깊은 잠에 빠졌다. 몽롱한 무의식에 빠져 다시 주로를 달렸다. 세 번이나 길을 잃었다. 방심한 것도, 자만한 것도 아니다. 주로를 알리는 비표시를 떼어간 원주민 아이들 탓도 아니다. 무턱대고 앞 선수만 쫓아간 게 화근이었다. 다소 긴장한 탓도 없지 않다. 환자의 신음소리에 잠을 깼다. 엄지발톱이 너덜거리는 선수, 뒤꿈치가 물집으로 질컥거리는 선수. 첫날부터 부상자가 속출했다. 내 발톱도 두 개가 죽었다. 덕분에 연세 지긋한 닥터 토마스의 손길도 바빠졌다.

그리고 부상선수들의 신음소리
▲ 닥터 토마스의 일상 그리고 부상선수들의 신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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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한 산악지역에서
▲ 선수들의 격한 레이스 험준한 산악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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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원주민 마을을 지나치고 차량이 오가는 도로를 밟아도 오지는 오지다. 주로는 가혹하고 혹독했다. 때로는 잔혹하기까지 했다. 레이스 둘째 날, 험준한 산악지역을 넘고 강을 건넜다. 머리를 처박고 선수들이 남긴 희미한 족적을 따라 가는 내내 집념과 체념이 수없이 교차했다.

오후 5시 27분, 48km 전 구간 중 유일한 3km의 포장도로를 따라 캠프에 발을 들였다. 제한시간을 불과 3분 남겨놓고... 15년간의 오지레이스 중에 처음으로 꼴찌를 경험했다. 경기 탈락을 면하기 위해 시간에 쫓겨 바둥거리는 선수의 심정을 오늘 알았다. 간혹 '꼴찌에게 보내는 찬사'를 말하며 즐겨볼 만한 체험이라고 하지만 일부러 더디 가는 선수는 없는 것이 분명했다.

일상을 벋어나면 모든 것이 서툴다
▲ 오르고 또 오르고 일상을 벋어나면 모든 것이 서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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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발걸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 함성과 함께 출발 경쾌한 발걸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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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일상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서툴고 불편하다. 레이스 셋째 날, 안개비를 뚫고 산기슭을 기어올랐다. 오전 11시, 간신히 CP2(16km)를 통과했다. 운영진의 설명대로라면 이곳에서 캠프(35km)까지 대회 전체를 통틀어 난이도가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지도상으로 분명 이 산의 수직 능선과 계곡을 번갈아가며 치고 올라가야 했다. 선수 모두 이 구간을 피해가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푯대가 가리키는 데로, 가라는 데로만 달려야 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전해오는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 전류처럼 전신으로 퍼졌다. 너덜지역과 정글을 번갈아 오가며 발바닥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심장은 폭발의 한계를 넘은 듯 격하게 요동쳤다. 날개는 남이 달아주는 것이 아니다. 내 살을 뚫고 스스로 나오는 것이다. '너는 오늘도 그 힘든 여정을 잘 견뎌냈다.' 고통은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고통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멀리 캠프가 시야에 들어오자 종일 일그러졌던 내 얼굴이 환한 웃음으로 변했다. 역시 종전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었다.

이 돼지는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 베트남 장터 풍경 이 돼지는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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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부서져도 카메라만 보면...
▲ 나는 프로다 몸이 부서져도 카메라만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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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가 아니라고 일탈은 아니다. 이제껏 15년 동안 달려온 거친 길도 길이 되었다. 넘어져 봐야 일어날 줄도 안다. 아파 봐야 내 몸도 더 챙긴다. 굶어봐야 배고픔도 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벌거벗은 나를 가장 솔직하게 만날 수 있는 곳에 내가 섰다. 위기는 기회, 절망 속엔 늘 숨겨진 희망이 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위기의 레이스, 무언가가 나를 주저앉히려 할수록 나는 더욱 강해졌다.

사막과 오지를 달릴 때 종종 두 눈을 부릅떠야 할 때가 있다. 갈림길에 다다르면 두 다리보다 긴장감이 먼저 앞섰다. 지난 사흘 동안 밀림과 숲길에서 번번이 길을 잃었던 가혹한 선행학습으로 얻은 습관이다. 주로를 잘못 들어서면 피로와 참담함이 쌓여 사기까지 떨어진다. 호기를 부리거나 허둥대며 시간을 허비할 바에는 차라리 늦더라도 제 길을 찾아가는 편이 낫다. 당황하면 길이 보이지 않지만 사실 길 표시는 다 되어있다. 당황과 호기가 우리의 눈을 가릴 뿐이다.

때론 목가적인 풍경에 빠질 때도 있다
▲ 호사 때론 목가적인 풍경에 빠질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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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의 당당한 포스
▲ 그래도 웃자 선수들의 당당한 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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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마지막 날에도 밀림에 묻혀 눈을 부라리고 표식을 찾아 헤맸다. 수로를 넘고 농로를 따라 달렸다. 벌떼에 놀라 줄행랑을 치고 개떼에 쫓기기 일쑤였다. 여전히 길을 잃고, 길을 묻고, 길을 찾았다. CP2(30km)로 가는 여정은 오지에서 겪을 수 있는 자연 환경이 총 망라된 결정체였다. 능선과 협곡을 수차례 건너다 정오를 맞았다. 간혹 밟아보는 임도는 야속하게 짧았다. 정오를 넘어 작렬하는 태양열에 제한시간에 대한 압박까지 더해졌다.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것은 내가 힘든 만큼 파키스탄 오지마을의 고아들에게 희망의 벽돌이 쌓이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랬다. 주로에 서면 나에 대한 관대함은 없다. 몸이 부서져도 상관없다. 무식하다 비난해도 좋다. 세상에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많다. 지금 나를 이기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나의 길을 간다. 그 일이 가능한 일이든 불가능한 일이든간에 말이다. 새벽마다 목청껏 울어대는 미물에게 삶의 지혜를 얻었다. 나도 최선을 다했다. 가장 값진 나의 선택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일,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조금 더 가봐야겠다.

나는 바로 비행장으로 떠났다
▲ 나만을 위한 시상식 나는 바로 비행장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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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지나봐야 고통인지 안다
▲ 이 맛에 산다 고통은 지나봐야 고통인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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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막, #오지, #김경수, #직장인모험가, #오지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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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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