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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대표가 11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 초청 오찬에서 악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대표가 11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 초청 오찬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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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초호화 메뉴 오찬이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지난 11일 새누리당 당대표로 선출된 이정현 의원이 청와대를 예방하여 대통령과 환담을 나눴다. 이들의 회동은 오찬을 겸했는데 문제는 오찬 메뉴가 너무 초호화판이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오찬 식재료로 쓰인 송로버섯과 캐비아, 샥스핀은 일반인들은 이름만 들어봤을 법한 최고급 재료들이다. 외에도 바닷가재 요리, 한우갈비, 능성어 요리 등이었다. 이런 식재료들은 그 값도 값이지만, 특히 캐비아나 샥스핀은 고래고기나 개고기처럼 국제사회가 금기시하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비싼 값뿐 아니라 논란이 되는 식재료들이란 말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새 지도부의 오찬은 국민의 상식선을 넘는 것이어서 세간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사실은 역사학자인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전우용 교수가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내용을 올리면서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

전 교수는 "고통을 분담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백성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조선시대 임금도 알았다"며 조선 시대 왕들이 행했던 '감선령'을 말했다.

조선시대에 임금은 아침수라와 저녁수라 두 끼를 먹었다. 중간에 초조반, 낮것상, 야참을 먹어 배가 든든하도록 했다. 아침과 저녁은 12첩 반상의 정식을 들었다. 조선의 임금은 최고의 존엄이기에 임금이 먹는 음식 재료는 각처에서 진상한 최고급품들이었다.

하지만 세종대왕 16년(1434년) 5월 4일, 식사를 마치고 "이미 처음으로 나온 물건 이외에는 때 아닌 진상을 하지 말라고 명하였는데, 이제 어찌 이 물건을 올렸느냐?"라고 하면서 진상의 수를 줄일 것을 명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조선의 임금들은 흉년이 들면 반찬 가짓수를 줄여 국민의 고통에 동참했다. 이를 '감선'이라고 한다. '감선' 외에도 '철선' '각선' 등이 있는데, '철선'은 국상이나 전쟁 중에 고기반찬을 줄이는 것이고, '각선'은 임금의 영이 잘 서지 않을 때 아예 수라를 받지 않는 금식을 말한다.

'감선'의 첫 시행은 신라의 소지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지왕 14년(492년)에 가뭄이 계속되고 흉년이 들자 임금이 부덕해서 백성들이 고초를 겪는다며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민심을 달랬다고 한다.

신라나 조선 시대와는 다르지만 대통령이 좋은 음식을 먹는 걸 누가 탓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 어느 때인가 하는 것이다. 실질 경제는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전기요금 누진제 폭탄으로 폭염 속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제대로 틀지 못한 채 찜통더위를 나는 국민들이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조선 시대 임금처럼, '감선, 철선, 각선'은 못할지라도 경제적 아픔과 더위에 지친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끼리(?)의 호화 오찬이라니. 국민이 표를 줘 세운 대통령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호화 오찬을 들면서 그들이 의논한 게 '국민의 사기 진작과 단합'이었다니 기가 찰 일이다.

전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 초청 청와대 오찬에 캐비아, 송로버섯 등 초호화 메뉴... 저런 거 먹으면서 서민 가정 전기료 6천 원 깎아 주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는 거군요"라며 "고작 몇 천 원 가지고 징징대는 서민들이 얼마나 찌질하게 보였을까"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우리가 본 것은, 민심의 강 건너에 있는 궁전의 식탁이었다"고 지적하고, "송로버섯은 땅속의 보물이라 불리는 값비싼 버섯이라고 한다, 프랑스 루이14세가 즐겨먹었던 궁궐에 어울리는 요리인 듯하다, 칼국수 주던 YS가 그립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패거리 정치'

김광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청와대 만찬! 이 메뉴는 김영란법의 대상이 안 되나"라고 꼬집었다. 결국 논란이 일자 청와대도 해명에 나섰다. 14일, "송로버섯, 캐비아 관련 메뉴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음식재료로 조금 쓰인 것일 뿐"이라며, 캐비아는 샐러드에 살짝 뿌렸고, 송로버섯 역시 풍미를 돋우는 정도로 쓰였다고 해명했다.

값비싼 재료, 희귀한 재료, 논란의 대상이 되는 재료... 이번 오찬 식재료가 문제가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언론이나 국민들이 분노하는 청와대 오찬의 본질은 따로 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말한다. 그러나 더 깊고 진한 진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문제는 끼리끼리 문화다. 이번에 이정현 대표가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된 걸 누구보다 반기는 건 청와대다. 같은 그룹(끼리끼리)이기 때문이다. '친박, 비박, 원박, 낀박...'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형성되거나 불리는 새누리당 내의 끼리끼리 문화는 결국 청와대 오찬에서 그 본색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2년 전 '비박'으로 분류되는 김무성 전 대표가 당선되었을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때도 박근혜 대통령은 새로운 당대표가 된 김무성 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같이 했다. 그 때는 평범한 중화요리였다.

유승민 의원이 박 대통령의 눈에 나 원내 대표를 사임하고 새로이 원유철 원내대표가 뽑혔을 때 당시 새누리당 대표인 김무성 의원이 원유철 의원을 대동하고 청와대를 예방 박근혜 대통령과 회동한 적이 있다. 2015년 7월 16일의 일이다. 이때는 때가 되었음에도 물만 마시고 식사 대접도 못 받고 나왔다(참고 기사 : 국민 물 먹이는 나라, 정말 싫다).

먹는 것 가지고 차별하는 게 가장 서럽다는데 비박의 김무성 의원과 친박의 이정현 의원의 대우가 이리 달랐다니, 박 대통령이 "'친박'을 만든 적이 없다"고 말해도 믿을 사람은 없어 보인다.

소위 '의리'로 대별되는 끼리끼리 문화는 청산되어야 할 유산이다. 다른 말로 '패거리 정치'라고도 한다. 음식을 나누는 모습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패거리 정치'는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두루 써먹던 패턴과 너무나 닮아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아버지와 딸의 정치를 두고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말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오찬 논란이 고급 음식만의 논란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대통령은 모름지기 국민의 안위와 고통을 헤아려야 한다. 박 대통령 자신도 '국민의 안위와 안보를 위해 사명을 다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정치는 '내편, 내 맘에 드는 사람'과의 진한 우정 나누기가 아니다. 국민의 아픔과 눈물을 닦아 주는 '감선'의 정신을 아는 대통령이 되어주기를 당부한다.


태그:#청와대 오찬 논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박근혜 대통령, #패거리 정치, #끼리끼리 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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