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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군 쌍림면에서 생산된 딸기.
 경북 고령군 쌍림면에서 생산된 딸기.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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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출신으로 33년간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했던 정득상(58·운수면)씨. 짧지 않은 공직생활을 마친 그는 이제 막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정씨의 곁에 고령의 특산물인 '향기로운 보물'이 발갛게 빛나고 있으니, 바로 딸기다.

지난해 명예퇴직한 정씨는 '내 사랑 딸기농원 대표'라는 명함을 가지게 됐다. "과학영농을 실현해 일손은 줄이면서도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그는 5600여㎡의 딸기밭을 어린이 딸기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농원 재배시설을 보다 과학화·고급화해 딸기체험 전문공간인 동시에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하는 힐링공간으로 만들겠다"라는 정씨는 "공무원 시절보다 수입이 줄었지만 꿈꾸던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며 환하게 웃었다.

실제로 농원엔 아이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적지 않게 방문해 고령 딸기의 달콤한 맛에 매료되곤 한다. "대가야의 유적지인 고령엔 많은 관광상품이 존재한다. 딸기도 그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덧붙여 전한 정득상씨.

재밌는 전설 속에 존재해온 딸기... 비타민C가 풍부한 과일

고령군이 내세워 자랑하는 특산물 중의 하나인 딸기. 딸기의 역사는 저 멀리 고대유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신 프리카에게 바치던 과일이 바로 딸기였다. 성모 마리아 역시 딸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재밌는 전설도 전해온다. 딸기를 너무나 좋아한 한 여신은 천국을 방문하는 사람의 입술에 딸기즙이 묻어 있으면, 그가 딸기를 훔친 것으로 여기고 지옥으로 보냈다. 맛있는 것을 양보하지 못하는 건 인간이나 신이나 비슷했던 모양이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재배종 딸기는 유럽과 미국에서 자생하던 몇몇의 야생종을 교배시킨 것으로, 이를 본격적으로 기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다. 그렇다면, 고령에서 딸기 재배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고령군청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1973년이 고령 딸기 재배의 역사가 시작된 해다. 그해 쌍림면 안림리 600여 평 밭에 딸기모종이 심어졌다. 이후 1980년부터 '반촉성재배'가 일반화됐고, 1982년에는 쌍림면 곽해석 씨 등이 촉성재배를 시작했다.

1989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전조재배 기술'은 딸기 수확량을 대폭 늘였고, 이때부터 '고령 딸기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더불어 수출의 길도 열렸다. 1994년 시작된 딸기 수출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격화됐다. 현재도 고령은 연평균 수십에서 수백 톤의 딸기를 수출한다. 이는 농가소득 증대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내 사랑 딸기농원’을 운영하는 정득상 대표.
 ‘내 사랑 딸기농원’을 운영하는 정득상 대표.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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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두 딸과 농장에서 딸기수확체험을 한 이혜미(대구시)씨는 "딸기가 재배되는 현장에서 직접 딸기를 따보는 경험이라 아이들이 너무 즐거워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맛도 너무 새콤달콤해서 나도 맛있게 먹었다"는 이씨.

고령에서 생산되는 딸기는 맛뿐 아니라 영양가도 높다. 딸기에 함유된 펙틴(pectin)은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고, 쿠엔산과 포도당 함량이 높아 회복단계에 있는 환자에게 영양을 보충해주기도 한다. 동맥경화와 변비에도 효과를 보이는 딸기는 칼로리와 지방 함유량이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비타민C 보충에는 딸기만한 과일이 없다"는 게 고령군청 관계자의 설명.

고령 딸기가 오늘날의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까지는 적지 않은 노력이 있었다. 딸기 재배농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가야산 줄기 미숭산과 만대산의 깨끗한 물과 일대의 기름진 흙이 고령 딸기의 맛을 알렸다. 유기농법에 의한 재배도 품질 향상의 큰 요인이 돼주었다"고.

여기에 농약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꿀벌을 통해 수정을 진행하는 것도 고령 딸기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양질의 과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노령화로 인한 영농포기... 고설재배법 등으로 활로 모색

경북 고령군 덕곡면의 딸기농장.
 경북 고령군 덕곡면의 딸기농장.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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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의 딸기 재배면적은 경상북도에서는 1위(30%), 전국적으로 보자면 15위(약 3%)다. 하지만, 한국 농촌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고령화로 인해 딸기농사를 포기하는 가구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1년 619가구(재배면적 235.8ha)이던 딸기 재배농가는 2005년에는 549가구로 줄었고, 이어 2010년에도 내리막길을 걸어 498가구(206ha)로 감소했다. 지난해 고령의 딸기 재배농가는 385가구로 재배면적은 180ha.

고령군청은 이 같은 딸기농가 감소추세를 "노인가구가 많아지면서 영농포기를 선언하는 집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딸기 재배 중심지역인 쌍림면이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지만, 대가야읍과 덕곡면은 소폭이나마 재배농가가 늘었다"는 게 군청의 이어지는 부연.

그렇다면 줄어드는 딸기 재배농가를 위한 미래의 대안은 없을까? 경북 농업기술원과 고령군청 등에 따르면 노동집약적인 딸기 재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고설재배법'과 딸기관광체험의 확산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고설재배법이란 철재 파이프와 상토(모종을 가꾸는 온상에 사용되는 토양) 등을 이용한 벤치시설에서 딸기를 기르는 방법으로, 딸기 재배와 관련된 모든 작업을 쪼그려 앉아서가 아닌 서서 할 수 있도록 변화시킨 재배법이다. 이를 통해 노동력과 시간은 절감하면서, 품질과 수확량은 획기적으로 높였다.

딸기체험관광은 딸기 농사를 단순한 1차산업에서 고부가가치의 혁신적인 산업으로 변화시켰다. 대구 등 인근 대도시의 가족단위 나들이객을 딸기농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체험관광은 대가야박물관과 지산동 고분군 등 고령 문화유적과의 연계관광으로도 유명해지고 있다.

얼마 전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척 한 분은 "거기서 딸기를 먹어보고는, 한국의 딸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됐다"는 말을 전했다. '사람의 몸과 사람이 살아온 땅은 본래 하나'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란 이럴 때 사용되는 게 아닐까.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도 고령 딸기의 달콤한 향기가 바로 곁에서 풍겨오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태그:#딸기, #고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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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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