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7월 말부터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위를 피해가지 못하고, 그저 견딜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땀 많은 체질과 유전에 후천적 생활 습관이 더해져 형성된 비대한 몸집 탓에, 여름은 내게 무척이나 고된 계절이다.

그럼에도 적어도 올해 7월 초까지는 비교적 더위로부터 차단된 삶을 살 수 있었다. 점심 즈음 출근해, 일 평균 12시간 가까이 머무르는 직장은 일종의 '사내 복지' 차원에서 근무시간 내내 실내 온도를 쾌적하게 유지한다. 퇴근 후에는 집이라기보다는 한없이 방에 가까운 '풀옵션 원룸'으로 돌아와 '풀옵션'에 포함되어 있는 에어컨을 2시간 타이머로 설정해 두고, 바삐 잠들면 그만이었다. 비록 조물주께서 더위에 약한 신체를 주시긴 했지만, 한번 잠들면 좀체 깨지 않는 튼튼한 신경줄도 함께 내려주셨다는 사실에 한없이 감사하며 지낼 수 있었던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피치 못할 일신상의 이유로 '풀옵션 원룸'을 나와, 굳이 빚을 얻어 전세를 살게 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새로 이사한 집은 낡고 오래된 이 층짜리 연립 주택의 이 층이었다. 이 집을 처음 둘러봤을 때, 너덜너덜해지고 찢어진 장판과 곰팡이가 기하학적인 군집을 이룬 벽지로부터 불길한 예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집주인 아저씨의 믿음직한 인상, 무엇보다 '올.전.세.' 이 세 글자에 서려 있는 따뜻하고, 편안하고, 달콤한 어감 앞에 어찌 계약서를 쓰지 않을 수 있으랴. 원래 집이란 건 사람이 살아야 생명력을 얻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 내가 이 후줄근하고, 지저분한 집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테야.

하지만 입주와 함께 집에 생명력을 불어넣기는커녕 되려 집으로부터 생명력을 빨리는 날이 시작됐다.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아무렇게나 형성된 도시의 오래된 건축물들이 으레 그렇듯, 이 집의 구조에는 거주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듯했다. 그 특유의 건축공학적 무신경이 빚어낸 결과로, 나는 이 뜨겁고 습한 여름에 더위, 바퀴벌레, 습기(곰팡이)라는 삼중고에 빠지고 말았다. 참, 이 글의 테마는 '더위를 견디는 사람들'인 만큼, 이 자리에서는 삼중고 중 더위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문제는, 이 집이 미치도록 덥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이 집은 2층짜리 건물이고 우리집 천장 위에는 옥상이 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하루종일 달궈진 옥상의 열기는 바로 아래 우리집에 차곡차곡 저장됐고, 저장된 열기는 집 안을 따뜻하게, 아주 따뜻하게 데웠다. 보일러 계기판의 숫자를 처음 봤을 때, 기계가 오작동하는 줄 알고 전원 버튼을 여러 차례 눌러야만 했다.

집의 온도는 34도다
 집의 온도는 34도다
ⓒ 구슬

관련사진보기


새벽 세 시, 그리고 실내온도는 삼십삼 도였다. 치안상의 문제와 하루 1.5마리 꼴로 출몰하던 바퀴벌레 탓에, 더위를 피하자고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습기 탓에, 분명 계기판에 찍힌 숫자보다 실제 느껴지는 불쾌지수는 더 극심했을 터다. 집에 있는 동안, 한 시간에 한 차례씩 샤워를 거듭하며 일주일을 고민했다. 결론은 뻔했다. 그래. 에어컨을 사자.

그런데 말입니다... 실외기 설치가 안 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인간의 예측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오래된 집이고 창도 크지 않으니 더울 수 있다. 곰팡이가 필 수도, 바퀴벌레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에어컨 설치가 안 될 것이라고는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베란다 구조상 내부에 실외기를 설치하기 어렵고, 옥상에 설치한다 한들 호스를 실내까지 연결하는 과정에서 벽을 타야 하는데, 너무 위험하여 작업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 내 더위가 고통스럽다 한들 다른 사람 목숨만 할까. 그 와중에 나를 더욱 절망케 만든 것은, 같은 건물의 다른 집들은 실외기를 잘도 설치해 에어컨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가구의 실외기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내가 감당해야 할 무더위는 더욱 극심해지리라. 그러나 문외한인 내 눈에도 우리집 구조는 실외기를 달기에는 너무 난해해 보였고, 설치기사님들을 돌려보내고 이미 구입한 에어컨을 환불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실외기가 설치된 집이 부러웠다
 실외기가 설치된 집이 부러웠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참고로 에어컨이 없을 때, 이 집에 머무르면 다음과 같은 일을 겪게 된다. 1. 끊임없이 땀이 흐른다. 화장실까지 이동했을 뿐인데, 이미 몸은 흥건히 젖어 있다. 2. 몸이 뜨거워지고, 동시에 무거워지면서 움직일 수가 없다. 3.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순간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다. 가벼운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난다. 4. 피부 트러블-아마도 땀띠-이 나기 시작한다.

에어컨 설치라는 마지막 희망이 박살 난 상황에서 이 짓을 반복하려니,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실내온도는 하루하루 최고치를 경신해 갔다. 새벽 두 시에 35도를 찍었을 땐, 정말 이러다 죽을 것 같았다. 생활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거리를 걸을 때도, 회사에 출근해서도 매일 '실외기 설치 안되는 집' '실외기 없는 에어컨' 등의 키워드를 기계적으로 검색해 댔다.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에어컨이 존재했다. 물론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는 집 구조상 설치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제한적이었지만...

검색을 거듭한 결과, 대안으로 사용할 만한 '실외기 없는 에어컨'을 발견하긴 했다. 실외기를 바깥에 두고 사용하는 기존 에어컨과 달리, 수도관과 연결해서 사용하는 '수랭식 에어컨'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소음 등 여러 불안 요소가 있었지만, 가장 큰 장애물은 가격이었다. 같은 평수의 벽걸이 에어컨보다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50만 원이 비쌌다. 아, 없는 놈은 쪄 죽으라는 걸까. 회사에 라꾸라꾸 침대 사 두고 집에 들어가지 말까. 그러게 왜 이사를 해가지고... '피난'을 위해 찾은 동네 카페 유리창 너머로, 고양이 한 마리가 땡볕 아래 차 그늘에 늘어져 있었다. 녹은 듯 흐늘흐늘했다. 고양이를 바라보며 마침내 결심했다. 그래, 사자. 사람이 살고 봐야지. 어차피 지금도 빚 뿐인데...

수랭식 에어컨을 설치하기까지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기에 굳이 적지는 않겠다. 결과적으로 나는 지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물론 이 순간에도 타이머는 걸려 있다). 에어컨이 없던 지난 수일 동안, 집에서 최소한의 생존 활동 외에는 어떠한 생산적 활동도 불가능했다는 사실도 굳이 풀어 설명하지 않겠다.

수랭식 에어컨의 모습. 이제 살겠다
 수랭식 에어컨의 모습. 이제 살겠다
ⓒ 구슬

관련사진보기


요즘 이삼일 걸러, 폭염 관련 재난 문자를 받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특히 더위에 취약한 노년층 인구가 많고, 경제적으로도 썩 부유하진 않은 곳이다. 나는 비록 월말의 고지서를 의식하지 않고 에어컨을 틀어 댈 여유는 없을지언정, 빚을 져서라도 비싼 에어컨을 장만할 최소한의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 여름, 땡볕에서 노동하는 이들은 또 어떤가? 폭염으로 인해, 올해만 벌써 두 자릿수의 사람들이 죽어나갔다고 들었다. 더위는 운 좋은 누군가에겐 생활의 사소한 문제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자연재해 앞에, 생존은 개인의 '노오오오오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더위도 마찬가지다.


태그:#에어컨
댓글2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