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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돼지는 서로 다르지 않다. 다만 그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이 다를 뿐이다."

동물보호단체의 채식주의 캠페인에 종종 등장하는 이 구호는 "모든 동물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인간의 잣대에 따라 어떤 동물은 쓰다듬고 어떤 동물은 먹는 것은, 사람을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순'이라는 것이 이 구호가 전하는 메시지다. 고기를 즐겨 먹었던 내가 채식주의로 전향한 것도 나의 반려 고양이와 내가 먹는 돼지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평등의 개념을 거꾸로 적용한다면, 우리는 동물에 대한 '하향평준화'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개도 소·돼지·닭과 다르지 않으니까 먹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개식용을 옹호하기 위해 이런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인류 지성의 역사는 모든 이들을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는 '상향평준화'를 지향해왔다. 이는 한때 '상식'으로 군림하던 노예제·신분제·아동착취·성차별 등이 오늘날 비윤리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인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은 고통받는 동물을 보며 즐거워하기보다는 불편함을 느끼는 천성을 지녔다. 나는 인간 사회가 동물에 대해서도 상향평준화를 지향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동물을 '공평하게 학대'하기보다는 '다 같이 생명으로서 존중'하기 위한 합의를 모색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사회는 개와 돼지를 차별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한국에서 동물보호법이 제정되고 동물보호운동이 태동한 직접적인 계기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를 먹는 것에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 동물보호법과 동물보호운동은 개만이 아닌 모든 동물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돼왔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사회는 반려동물뿐만이 아니라 농장동물·실험동물·동물원·동물쇼 동물의 복지를 이야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개 식용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동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려졌지만, 그런 변화를 촉발시킨 개 식용 문제는 거의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동물보호단체들의 입장이다. 지난 5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개최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국제컨퍼런스'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마련됐다.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에서 개최된 이 날 행사에서는 국내외 동물보호 시민단체·국회의원·학계·법률 전문가들이 발제 및 발표를 통해 개 식용 산업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와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활동을 짚어보고, 개 식용 산업을 종식시키기 위한 대안을 모색했다.

한국의 개 식용 학대, 다른 나라들과 구별되는 이유

HSI의 아담 파라스칸돌라 이사가 지난 5일 개최된 '개식용 종식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에서 '개농장 개들의 구조 및 입양 활동'에 관해 발표를 하고 있다.
 HSI의 아담 파라스칸돌라 이사가 지난 5일 개최된 '개식용 종식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에서 '개농장 개들의 구조 및 입양 활동'에 관해 발표를 하고 있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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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 국제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는 최근 인도에서 개 식용 반대 캠페인을 촉발시킨 충격적인 영상을 공개했다. 인도 북부의 나갈랜드 주에서 촬영된 이 영상은 자루에 담겨 꽁꽁 묶인 채 머리만 밖으로 내민 개들이 산 채로 구덩이에 내던져지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사람들은 그 개들의 머리를 몽둥이로 내려쳐서 도살했다. 몽둥이질은 개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수차례 반복됐다.

영상 속의 개들은 주둥이가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어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밀수로 들여오는 동안 개들이 짖어서 정부 당국에 발각되지 않도록 묶어둔 것이었다. 수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다가 서로가 맞아 죽는 모습을 지켜보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개들의 현실은 동물에 대한 학대일 뿐만 아니라 도살자들의 존엄성마저 바닥으로 끌어 내리는 극단적인 '인간 학대'였다. 

HSI의 캠페인 매니저인 앤드류 플럼블리에 따르면, 개고기 소비가 불법인 인도에서 이런 학대가 벌어지는 이유는 밀수업자들이 법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당국에서도 법을 나갈랜드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HSI는 나갈랜드의 수상에게 보낸 공식 서한을 통해 인도 정부에 개고기 소비 금지법의 발효를 촉구하는 한편, 개고기 거래 시장과 판로의 폐쇄를 요청한 상태라고 한다.

HSI는 중국·캄보디아·라오스·태국·베트남·한국에서 개 식용 금지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식용으로 소비되는 개들에 대한 학대는 이러한 나라에서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에서 벌어지는 학대는 다른 나라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 식용으로 희생되는 개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포획하거나 주인에게서 훔친 개들이 식용으로 거래되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개를 식용으로 사육하는 농장이 집중적으로 운영되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 식용으로 희생되는 개들이 포획이나 도난을 당한 순간부터 학대에 처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개들은 농장에서 사육되면서 평생 복지를 무시당하는 '일상적인 학대'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카라의 전진경 이사는 기업화·조직화된 한국의 개 식용 산업에서 개들이 사육·도살·유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동물학대와 불법행위를 지적했다. 개 식용 농장이 동물학대의 온상지가 된 이유는 좁은 공간에 많은 동물을 밀집 사육하고 동물의 복지를 완전히 무시하는 '공장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장식 축산은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소·돼지·닭을 비롯한 동물들에게도 막대한 고통을 야기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개 식용을 전통 식문화로 인정하고 소·돼지·닭과 마찬가지로 '합법화'시키자는 일각의 주장이 학대의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식용으로 인한 학대를 줄이기 위해 우리 사회에 시급한 것은 소·돼지·닭이 처해있는 '합법적인 학대' 환경을 개선하고 복지를 도모하는 것이지, 개 역시 합법화의 시스템에 편입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동물복지국회포럼의 공동대표인 이정미 국회의원(정의당)은 개 식용이 합법화되면 개를 식용동물로 간주하는 방향으로 대중의 인식이 변할 우려가 있고, 결과적으로 생명존중은 지금보다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개 식용 금지를 위한 사회적 논의와 여론화를 조성하고, 법 개정 등을 통해 업계 종사자들이 업종을 전환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을 확보하는 한편, 필요에 따라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개 식용 금지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했다. 

한편 전진경 이사는 한국이 개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인위적인 교배가 이뤄지는 세계 유일의 국가라는 점도 지적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진돗개와 도사견 혼종으로 소위 '식용견'이라 불리는 개들이다. 개 식용을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존재를 거론하며 "식용견은 반려견과 다르니까 먹어도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흑인과 백인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논리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품종의 개들이 식용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식용견과 반려견의 구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 해결 위해 애쓰는 시민사회 vs. 방임하는 정부

대만 동물학대방지협회(SPCA)의 코니 치앙 사무처장이 지난 5일 행사에서 '대만의 개식용 금지 입법 현황과 전망'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대만 동물학대방지협회(SPCA)의 코니 치앙 사무처장이 지난 5일 행사에서 '대만의 개식용 금지 입법 현황과 전망'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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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I는 한국의 개 식용 농장에서 개들을 구조하여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일차적인 목표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지만, 개 식용 산업이 사양 산업이 된 현실에서 업종 전환을 희망하는 개농장주들을 지원하고 개 식용의 단계적 폐지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HSI의 아담 파라스칸돌라 이사는 한국에서 생계 때문에 개농장을 관두지 못하는 농장주들이 많은 현실을 언급했다. 이런 점에서 HSI가 그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업종전환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낸다면, 상호 대립이 아닌 대화를 통해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 캠페인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HSI는 한국에서 5명의 개농장주들이 곡물을 기르는 농업으로 전환하도록 지원하고 농장에 있던 수백 마리의 개를 미국으로 입양 보낸 바 있다.    

파라스칸돌라 이사는 개들을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이러한 활동이 모든 개는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반려견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캠페인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최근 미국에서 투견으로 쓰이던 개들을 구조하고 반려견으로 입양 보냄으로써 특정 견종에 대한 편견을 해소시키는 캠페인과 맥락을 함께 한다고 했다.

또한 파라스칸돌라 이사는 한국의 동물보호시설이 이미 포화상태인 데다가 한국에서는 대형견을 입양보내기가 어려운 현실도 개들을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이유라고 했다. 주로 아파트에서 소형견을 기르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국토가 넓고 주택이 많기 때문에 대형견을 선호하는 반려인들이 많다고 한다.

대만에서는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활동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대만 동물학대방지협회(SPCA)의 코니 치앙 사무처장은 개 식용 금지가 실제 현실로 이뤄지는 과정에 있는 대만의 개 식용 금지 입법 현황과 전망을 소개했다. 개 사체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이 개 사체의 보관을 금지하는 법안으로 발전되고, 개 식용까지도 금지하는 단계로 발전한 대만의 법안은 현재 경제위원회를 통과하여 의회 투표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카라의 전진경 이사가 지난 5일 행사에서 '개식용이 야기하는 동물학대와 대응의 현주소'를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카라의 전진경 이사가 지난 5일 행사에서 '개식용이 야기하는 동물학대와 대응의 현주소'를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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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는 개 식용 종식을 위해 인도적 캠페인을 벌이는 시민사회와 달리,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불법과 학대마저 방치하는 대한민국 행정부 및 사법부의 직무 유기에 대한 비판도 이뤄졌다. 서국화 변호사는 개 식용을 둘러싼 소송과 민원 사례를 통해 불법과 학대를 방임하는 행정부, 잘못된 법해석을 적용하는 사법부의 관행을 지적하는 한편,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입법·사법·행정 차원의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이날 국내 31개 동물보호단체들의 연합체인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동물유관단체 대표자협의회(동단협)'은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카라의 컨퍼런스에 연대와 지지 의사를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태그:#개식용 종식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동물보호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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