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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말하기 진행 중인 이종란 노무사, 손진우 연구원
 이어말하기 진행 중인 이종란 노무사, 손진우 연구원
ⓒ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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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앞을 지나가는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난 1일 오후 6시 무렵,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과 이종란 노무사가 마이크를 들고 의자에 앉았다.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삼성 반도체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거나 영화를 상영하는 '이어말하기' 자리다. 이번 손님은 손진우 연구원이다.

손 연구원은 40분가량 삼성과 노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삼성의 승승장구는 노동자들의 존엄함을 짓밟으면서 일궈낸 것"이라고 비판하며, 지금이라도 삼성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말하기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추모의 의미를 담아서 만든 76개의 솟대와 화분
 추모의 의미를 담아서 만든 76개의 솟대와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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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주변에는 현수막과 피켓이 놓여있었다. 사람들은 글을 읽고, 자신만의 언어로 삼성반도체 문제를 표현했다. 농성장 한쪽에는 솟대와 고무신 화분이 있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사망자 76명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아래 반올림)은 아침 선전전을 시작으로 시민들에게 삼성의 반도체 문제를 알리고 있다. 이날은 반올림이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한 지 300일이 된 날이다. 작년 10월 7일 시작된 농성은, 한 해를 지나 삼복 더위를 맞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300일 동안 거리로 나게 했을까.

2014년 반올림과 삼성은 제3의 중재기구인 조정위원회를 통해 삼성의 반도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결과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이 나왔지만, 삼성은 권고안 중에서 사회적 기구를 설립해 보상하라는 내용을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자체 보상위원회를 통해 피해 보상을 하였다.

삼성은 권고안대로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삼성 스스로 실시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일부 질병의 발병과 반도체 공장 시설의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반올림은 삼성의 보상을 "반쪽도 안 되는 보상"이라고 평가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76명의 사망자와 200명이 넘는 피해자에게 돌아온 보상은 조정위원회의 권고안보다 훨씬 적은 액수"라고 밝혔다. 피해 보상자 범위도 권고안이 제시한 범위보다 줄었다. 반올림은 삼성의 보상으로 피해가 마무리되었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고, 충분한 보상과 진심 어린 사과를 위해 농성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300일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동안 피해자들의 병세가 악화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반올림이 농성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글을 쓰고, 모금하고, 응원하는 시민들의 '연대' 덕분이다. 막막하지만, 다 같이 싸우고 있기 때문에 서로 힘을 합쳐 농성을 계속할 수 있었다.

농성을 통해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삼성은 올해 1월 12일, 재발방지 대책에 합의하였다. 외부 기관인 옴부즈맨 위원회가 반도체 사업장을 점검하고 이를 외부에 공개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기존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보상과 진심 어린 사과는 제외되었다. 이후 삼성과 반올림 사이에서 사회적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고, 많은 언론에서도 반올림의 이야기는 찾기 힘들다.

300일을 맞이한 반올림 농성
 300일을 맞이한 반올림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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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란 노무사는 "노동자들은 전쟁을 하고 있다. 인간을 인간 이하로 전락시키는 사회가 슬프다"라고 말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자정 능력을 기대하기보다는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부탁하였다.

반올림이 결성된 2007년 이후에도 피해자와 사망자가 나왔다. 삼성이 반올림과 대화를 재개할 때까지 반올림은 농성을 계속할 방침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시민사회취재단이 작성했습니다. 참언론 아카데미 수료생들로 구성된 시민사회취재단은 시민사회 이슈를 취재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태그:#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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