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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가 되면 캠핑장에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주던 정겨운 캠핌장이다.
 11시가 되면 캠핑장에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주던 정겨운 캠핌장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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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앞에 호수가 끝없이 펼쳐졌다.
 캠핑장 앞에 호수가 끝없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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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한 노 젓기의 추억

우리 부부가 결혼 전 함께 래프팅을 한 적이 있다. 남녀노소가 뒤섞인 사조직에서였다. 그중 한 분이 자신이 래프팅 장비를 풀세트로 가지고 있으니 언젠가 함께 홍천강에서 래프팅을 하자고 말씀하셨다.

중요한 행사를 끝내고 딱 래프팅을 하기 좋은 기회가 생겼다. 하필 그 때는 바야흐로 강원도를 포함하여 전국에 가뭄이 심했던 때였다. 물줄기가 바짝 말라 유속이 한없이 느렸던 그때. 나름 다들 도전 의지가 있는 8인이 선발되었다. 그 중엔 나와 남편이 있었다. 앞쪽 좌, 우 두 자리에 앉으려는 경쟁이 치열했고 희망자끼리 가위, 바위, 보를 했다. 하필 나와 남편이 이겼다. 그런데 승부욕 강한 조모언니가 바로 남편 뒤에 앉은 것이 화근이었다.

햇살 따가운 오후에 우린 배에 올랐고 이미 말했듯이 가뭄으로 수량은 매우 적었기에 유속이랄 게 없었다. 홍천강의 강폭은 래프팅으로 유명한 영월 동강의 좁은 폭엔 비할 바 없이 넓었다. 말하고 싶은 요지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듯 했다. 래프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물이 밀어주는 힘없이 오로지 인간, 8인의 힘만으로 노를 저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것. 우리를 배에 태운 후 관람자와 장비 제공자는 모두 하류 쪽에 내려가 기다리겠다고 했다. 어쨌거나 래프팅 장비를 반납하고 집으로 옳게 돌아가려면 그들이 어딘가 서 있을 하류까지 노를 저어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깔짝깔짝 수면에서 노를 젓는 나를 향해 지금의 남편이 말했다.

"야, 그렇게 젓는 거 아니야. 물 속 깊이 노를 내린 다음 90도로 저어. 이렇게."

난 그의 말을 따랐고 팔은 빠질 지경이었다. 그때 뒤에서 평소 괄괄하고 우악스럽기로, 그래서 때론 편하기도 했던 40대 이전의 조모 언니가 소리쳤다. 

"야, 훈, 썽 니들 커플 맨 앞에서 부지런히 저어야지. 앞에 앉아서 연애하는 거야? 뭐야? 빨리 못 저어?"

앞에 앉은 사람이 좋은 풍경을 보며 노를 젓는다고 생각하면, 그 등판만 보고 노를 저어야 하는 뒷사람이 짜증날 것이라고 생각도 한다. 그러나 그 사건 바로 며칠 전 훈님이 스위스 하고도 인터라켄 하고도 융프라우에서 제대로 래프팅을 하고 왔다는 게 문제였다. 숙련된 조교가 가르쳐 준 방법이 가지는 신뢰도와 권위는, 래프팅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조모언니의 말이 갖는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괄괄하고 우악스러우며 직설적인 조모언니는 그와 같은 말을 쉬지 않고 했다. 그때 훈은 자신의 인내심이 부족함을 깨닫고 한창 인내심을 키워가던 중이었음으로 조모언니의 말과 비슷한 수준에서 응대를 하며 신경전을 벌렸다. 처음엔 그들의 신경전에 호기심 반, 걱정 반 하던 3, 5, 6, 7, 8번 참가자는 목적지까지 반도 못 간 상황에서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되어 정신 줄을 놀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날이 밝아 헤어졌던 장비 제공자와는 달이 뜨고 반짝이는 별을 무수히 많이 본 후에야 만나게 되었다. "어, 저 환한 빛!" 그건 바로 그의 트럭 불빛이었다. 몇 시간 노질을 했던가? 기억이 혼미했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계속 노를 저었던 고로 우린 그들이 준비한 먹을거리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트럭 불 앞에 젓가락질을 하는 우리의 팔들은 덜덜덜 떨렸고 물가였기에 무수한 모기떼가 달려들어 우리의 피를 노략질 하였으나 그걸 떨어 낼 여유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군대를 가지 않은 내가 삽질 보다 노질을  무서워하는 이유이다.

#. 독일 포츠담 삽질보다 무서운 노질

여행지에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이 심하게 요동친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밤베르크에서의 시간이 그와 같았기에 잠시 어디론가 숨어들어 휴식을 취해야했다. 그렇게 포츠담에 들어왔다. 리셉션 수속을 마친 후 한 스태프가 와서 텐트 칠 공간으로 우릴 안내한다고 했다. 꽤 긴 시간 기다렸다고 생각할 때까지 직원은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영업을 하지 않는 레스토랑 야외좌석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김일성 별장이었다던 강원도 어딘가의 호수가 생각나는 편안함이 있었다.

바로 앞엔 배를 렌트해주는 곳이 있었고 막 돛이  달린  배를 하나 렌트해서 떠난 3인의 남, 여가 자리를 잡은 후 돛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이 돛을 올리는 것, 바람을 타지 못하는 돛 때문에 난감해 하는 모습, 잠시 뒤엔 바람을 맞으며 어디론가 배가 흘러가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 세계를 전혀 모르는 내 눈에 그들의 출발은 여러모로 어설퍼 보였다. 우리 가족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격을 물어보니 2시간은 20유로, 4시간은 25유로라고 했다. 참 합리적인 가격이다. 그 가격이면 그들 정도의 어설픔으로 우리도 일단 출발은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여행을  하며 이토록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기는 처음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친절하고 아리따운 스태프가 왔다.

#. 아~ 세일링의 세계

포츠담은 호수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호수가 참 많다. 호수가 많으니 배도 많고 오리도 많고, 별별 배도 많고,  별별 오리도 많고. 사실 휴식이 필요했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세일링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다. 하루에 2시간씩만 타도 바람과 세일링에 대해 아주 조금은 그 감을 익힐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나의 마음을 몰랐다. 내가 원하는 것은 '돛'이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이었는데 남편은 그냥 배를 타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돛이 없는 카누 정도. 어제 알아본 가격은 카누를 타는 값이었다. 순간 울컥 짜증이 났다.

"나는 돛이 있는 것을 타고 싶어."

강하게 말했더니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아~ 세일링이요?" 한다. 그때서 난 '배를 탄다'는 말보다 '세일링'이란 말이 더 내 욕구를 표현하는데 적절하다는 것을 알았다. 세일링을 위한 배 가격을 물어보니 2시간 37유로란다. 이 아름다운 호수에서 평생 한 번 할 수 있을까 싶은 세일링을 위해서라면 삼시세끼 빵만 먹더라도 괜찮다 싶어 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내비치니 사장님 묻기를 세일링 경험이 있냐고 한다. 당연히 "처음이죠."라고 말하니 벙긋 웃으셨다. 그 느낌은 "천진난만하기만 한 이 아줌마 같으니라구." 쯤 이었기에 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첫 날 어설프게 자리를 잡고 돛을 올리며 바람의 간을 보던 그들의 자세가 결코 초짜들이 아니었구나 생각하니 여러모로 씁쓸했다. 바람의 결을 따라 떠다니는 수많은 종류의 '배'를 누구든지 3박 4일 동안 내내 바라만 본다면 나의 씁쓸한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 겸손한 '노'를 쥐다

배는 카누보다 큰 4인용 배다. 유선형 모양으로 날씬하게 잘 빠진, 흰 색의 배다. 태국에서 탔던 것에 비하면 거의 2배 크기이고 플라스틱 재질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건 제법 그럴 듯 하다. 그런데 노가 래프팅용 노다. 즉 좌, 우로 번갈아 젓는 카누용 노가 아닌 그것 반절 길이의 한쪽만 물갈퀴가 있는. 그것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난 이 노의 활약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내리 쬐는 햇볕에, 모터 달린 그것들이 파도를 일으키며 우리 옆을 지나갈 때, 우리가 힘을 쓰는 이유는 저쪽 방향으로 가고자 함이나 그 방향과 달리 자꾸 우리의 힘을 허비할 때서야 난 알았다. 사장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서라도 "카누 노라도 주세요." 했어야 했다는 걸.

남편은 뒷좌석에서 우현, 난 앞좌석에서 좌현을 맡았는데 역시나 식스팩을  가진 남편의 힘은 내 것의 몇 배였다. 똑같은 횟수로 노질을 하면 영락없이 우리가 가려는 방향에서 자꾸 배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그럴 때면 난 "여보, 쉬어. 멈춰."라고 소리를 지른 후 방향을 되돌리기 위해 쉬지 않고 노질을 해야 했다. 간간히 우린 배를 세워 물놀이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난 배가 뒤집어질까 조심조심 몸을 가누며 배에 누워 있었고 남편과 아이들은 선착장에서 호수로 뛰어내리며 첨벙첨벙 물놀이를 예쁘게 했다. 고동색의 호수는 깊고 서늘했다. 아~ 물 건너 간 내 세일링의 기회여~

사회책에서 배웠던 포츠담은 나에겐 누런빛 호수, 넘쳐나는 수상교통수단들, 그리고 체념어린 나의 노 젓기가 강하게 기억난다.

밖에 나가지 않고 며칠째 물가에 가서 놀고 있다.
 밖에 나가지 않고 며칠째 물가에 가서 놀고 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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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한 세일링은 이것이 아니었기에... 노를 젓다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 있다.
 내가 원한 세일링은 이것이 아니었기에... 노를 젓다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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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선착장에서 바다로 풍덩 다이빙을 한다. 5살 쭈가 용기내어 뛰어들 준비를 한다.
 낡은 선착장에서 바다로 풍덩 다이빙을 한다. 5살 쭈가 용기내어 뛰어들 준비를 한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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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리씨네 여행 , #유럽캠핑, #포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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