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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로 따지면 보건소 같은 성격의 치과클리닉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보건소 같은 성격의 치과클리닉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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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날 들렀던 에버하드의 클리닉 내부 모습이다.
 떠나는 날 들렀던 에버하드의 클리닉 내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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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피가 내게로 왔다

소피가 오기 전까지 우린 그나마 편안했다. 토요일에 도착하고 일요일 오전까지 에버하드, 구드운과 계속 함께 있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배려심이 깊은 두 분은 우릴 위해 드레스덴에서 공부하고 있는, 영어가 유창한 소피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치과의 전문 시험을 치르느라 밤을 낮 삼아 쌍코피 쏟아가며 가며 공부했을 소피는 전날에도 새벽 2시에 잠들었단다. 그런데 부모의 부탁에 따라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운전을 해서 집으로 온 것이다.

교회에서 돌아오니 파란 차와 함께 귀여운 25살 소피도 있었다. 누가 봐도 그녀는 피곤해 보였다. 무엇보다 잠이 많이 부족해보였다. 그럼에도 우린 에버하드가 짠 일정에 따라 밤베르크 시내 관광을 갔다. 1000년 전 세워진 작고 아름다운 교회를 보고 그에 달린 장미 정원을 보았다. 물론 성에 닿기 전 밤베르크 관광의 상징인 다리를 건넜다. 작가 김연수가 이곳에 머물며 집필활동을 할 때 친구들과 맥주 파티를 했을 강이다. 유량이 생각보다 많았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건축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마을이란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모든 것이 예뻤다. 낡으면 낡은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소피도 예뻤지만 피곤해 보였다.

#. 피곤하고 배고픈 소피는 집에 남아

월요일 에버하드와 구드운은 아침 일찍 일어나 옆 마을에 있는 자신들의 치과진료소로 갔다. 7시에 집에서 출발해 진료소 문을 연 후 8시부터 진료를 시작한단다. 쉼이 필요한 소피는 모든 것에서 예외 시켰고 우린 구드운으로부터 집 열쇠를 받았다. 피곤한 소피가 자고 있는 방이 가까이 있기에 조용히 이동했다. 계단을 내려올 때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을 걸었으나 삐걱 소리가 났다. 머리털이 쭈뼛 섰고 일순간 불편함이 확 몰려왔다. 피곤한 소피가 깨기 전 우리가 빨리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야 피곤하고 배고픈 소피가 부엌에 내려와 불편하지 않게 아침을 먹을 터였다.

설거지를 끝낸 후 잔디밭 창고 쪽에 바짝 붙은 차를 빼서 돌아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조금 경사진 아래쪽으로 내려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물기가 많은 잔디밭에서 바퀴가 헛돌았다. 헛돌 때마다 잔디가 상하고 흙이 드러나 점점 흉해졌다. 너무 당황스럽고 초조해진 우리는 자꾸 그 방법, 그 방향으로만 나오고자 애썼다. 바로 그때. 부엌에서 내다보는 그 얼굴. 피곤하고 배고픈 소피였다.

내가 인사를 하자 소피는 편한 원피스 차림에 맨발로 뛰어 나왔다. 잔디밭 물기 때문임을 한 눈에 알아본 그녀는 차를 밀겠다고 했으나 피곤하고 배고픈 소피에게 차를 밀라고 하는 건 도저히 못할 짓이라 판단하여 차라리 운전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소피는 창고 문을 열더니 큰 버팀목을 가지고 나와 차바퀴에 척하니 받쳤다. 독일 여성을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대목이 이 부분이다.

원피스에 맨발로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는 그녀. 여하튼 그녀는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와 차에 올라탔고 나와 남편은 차를 세 차례 밀었다. 물기 때문에 내가 뒤로 밀려났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웃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며 축산업 농가로 갔고 그녀의 설명과 웃음소리 후 이웃이 왔다. 트랙터 없이 먼저 해 보겠다는 그는 우리의 방향과 정반대의 방향-정확히 말하면 더 낮은 정원-으로 차를 휙 몰아 나가더니 사뿐히 도로 위에 차를 올려놓았다.

"아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감탄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차는 도로위에 서 있었음으로 우린 많이 수줍어졌다. 어쩌면 소피도 자신의 손님 때문에 수줍어 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린 피곤한 소피를 두고 집을 나왔다.

#. 카푸치노는 달콤했고 양파는 시원했다

주차는 인포메이션 근처에 했다. 주차를 하고 돌아서니 널찍한 장미공원이 있다. 다국적 사람들이 드나들긴 하는데 우리 아시아 식구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역시나 덜렁대고 칠칠맞은 나는 정보지를 가져 나오며 그것이 영어판인지 뭔 판인지 보지도 않았다.

"영어판 없었어?"란 말에 히죽 웃음으로 때운 후 다시 들어가 보니 없는 것 같다. 물론 돈 주면 살 수 있겠지만 그럴 의욕도 없다. 무사히 차를 꺼내 나오긴 했지만 소피의 그 피곤함에 전염되었는지 걸을 수조차 없이 피곤하다. 어쩌면 소피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행객의 신분으로 모든 장비, 상황, 이웃, 심지어 풀 따위까지 낯선 이국땅에서 의욕을 가지고 내가 주도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당혹스러움, 무력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바로 옆에 카페가 있다. 햇살 따스한 놀이터 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게 다가온 현과 쭈, 그리고 벌 한 마리. 벌은 현의 몸 언저리를 돌다 입술에 들러붙어 구드운이 간식으로 가져가라며 챙겨준 초콜릿의 흔적에서 맴돌고 있었다. 현은 겁을 먹었고 나도 짜증이 났기에 벌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남편의 충고를 무시하고 벌이 잠시 아래쪽으로 쳐졌다는 판단이 섰을 때 정보지로 내려쳤다. 사실 죽일 마음은 없었으나 정보지에 묻어난 약간의 체액을 본 후 큰 상처를 입었겠구나 좀 미안하단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와인 잔에 물을 따라 맛있게 먹었다. '짠' 소리까지 내며. 그런데 한 순간 현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고 일순간 얼굴이 눈물범벅으로 찌그러졌다. 왼쪽 팔뚝 안쪽을 보니 벌이 침과 함께 자신의 꼬리 부분을 박아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손으로 쉽게 뺄 수 있을 거 같아 손을  뻗으니 남편이 카드를 이용해서 침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텔레비전에 나왔다고. 2초면 잡아 뺄 것을 남편은 아주 섬세하게 거의 5분은 걸려 빼냈다. 그동안 손님들은 상황을 살피느라 천천히 칼질을 했고 친절한 종업원은 시원한 양파를 가져다주며 상처부위를 문지르라고 했다. 카푸치노는 달콤했고 양파는 시원했다.

"아이쿠, 오늘 일진이 왜 이렇게 사납냐? 지친다. 지쳐!"

벌에게 공격을 당하기 전 좋은 한 때를 보내는 쏭자매.
 벌에게 공격을 당하기 전 좋은 한 때를 보내는 쏭자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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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큰한, 군침 도는 김치의 맛을 느끼다

3시가 가까워져서야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고 또한 허기가 느껴졌다. 어제 사람이 너무 많아 그냥 지나쳤던 식당으로 갔다. 이름을 기억할 순 없지만 성에서 내려오다 왼쪽에 보이는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면 다리가 있는) 곳이었다.

예상대로 어렵지 않게 찾아갔고 역시나 바깥에 자리는 없었기에 실내 8인석에 2인만 앉아 다소 헐거워 보이는 곳에 합석을 했다. 슈니첼은 없는 듯 했고(아니면 우리 발음이 이상했거나) 여하튼 우린 '모둠 소시지 '정도와 '돼지 어깨  찜' 을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며 두리번거리고 있노라니 한 테이블 건너 대부분 모두가 우리와 같은 메뉴를  먹고 있었다. 특히 돼지 어째 찜은 밤베르크 스페셜 요리라고 하는데 맛이 익숙했고 그래서 맛있게 먹었다.

곧이어 모둠 소시지 밑에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더운 야채가 나왔는데 마치 백김치를 찐 맛 같았다. 모양이나 재료를 가만히 보니 양배추를 얇게 채를 썬 샐러드 모양으로 모양은 무채 김치에 가깝다.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라고 불리는 이 음식은 양배추를 잘게 채 썰어 소금에 절인 독일 음식으로 독일어로 '신맛이 나는 양배추'라는 뜻을 가졌다. 어제 슈니첼을 먹고 식당을 나올 때 홀에서 나던 바로 그 정겨운 냄새였다.

밝고 경쾌한 종업원들의 서비스는 기분이 좋았다. 아침부터 낮까지 자동차와 벌 사건으로 위축됐던 마음은 맛있는 요리 뿐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까지 서비스하는 종업원들 덕분에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살아났다. 소피가 있는 집을 향해 흡족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아이들도 냠냠 맛있게 먹는다.
 아이들도 냠냠 맛있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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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은 듯 보이는 바로 저 양배추 김치가 독일 전통 음식인 사우어크라우트이다.
 숨죽은 듯 보이는 바로 저 양배추 김치가 독일 전통 음식인 사우어크라우트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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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리씨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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