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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보여주는 모양새를 서로 나눠 보고, 그 안에 담긴 뜻을 서로 헤아려 보고, 그 안에서 내 세계를 그려보고, 그로부터 지적 유희를 즐기고, 그것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그런 평가가 있었으면 한다. 그 안에는 주류도 없고, 패거리도 없는 그런 평가가 있었으면 한다.

재미있게 말하자면, 이 땅에 숨겨진 고수를 찾아서 놀이를 하자는 것이다.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허물고, 패거리도 없고 갑과 을의 관계도 없는 대동의 사진 세계에서 한 세상 멋지게 놀 수 있는 이 땅의 고수를 찾는 놀이다. 2016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⑦ '문진우론'은 7월 22일부터 7월 30일까지 전시된다. - 기자 말

사진가 문진우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족히 40년 카메라 인생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하라는 전공 공부는 안 하고 사진만 했다. 이런 사진, 저런 사진, 시도 안 해본 것이 없다. 그러다 문득 자신도 본격적으로 작업 같은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도시 아웃사이더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작품이 됐지만, 딱히 그들에 대한 기록으로 어떤 작품을 남기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작품이 되는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보통 이상으로 고민하거나 애끓은 적도 없다.

그런 점에서 문진우의 사진은 그야말로 사진적이다. 철저히 도구적이라는 의미다. 자기 정체성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멀티 정체성이라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문진우의 사진 안에는 온갖 장르가 없는 게 없다. 메시지가 강한 다큐멘터리에서부터 별 메시지 없는 오래된 다큐멘터리 그리고 무미건조한 다큐멘트까지, 사협 사진에서부터 관념 사진까지 때로는 내 마음이 가는 바에 따라, 때로는 고객이 원하는 바에 따라 찍는다. 문진우는 사진에 관해서만은 그야말로 르네상스적 사진인이다.

1. 오래된 사진,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가 없다

사진가 문진우는 부산 사진가다. 부산을 주로 찍고 부산에서 주로 활동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소위 중앙에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도 않고, 특별한 줄도 닿지 않은 변방의 사진가다'라는 의미다.

그가 첫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1993년에 <불감 시대>라는 제목의 도시 풍경이었다. 그는 도시를 '불감'과 '상실'이라는 키워드로 읽었다. '상실'은 1970~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드러난 도시 공간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언어다.

사진가의 메시지가 강하게 들어간 기록적 성격이 짙은 전형적인 1980~1990년대 다큐멘터리 스타일이다. 대상을 재현하는 스타일상은 특정한 기법에 치우치지 않고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별히 어떤 스승에게서 배운 적도 없고, 그래서 어떤 줄에 서 본적도 없고, 그래서 누구에게도 빚진 적도 없는 1980년 대 이 땅에서 자생하여 일각을 이룬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표상이다.
<불감시대> '해운대'(1986) ⓒ 문진우
<불감시대> '기장' (1987) ⓒ 문진우
<불감시대> '남포동'(1987) ⓒ 문진우
<불감시대> '중앙동'(1990) ⓒ 문진우
<불감시대> '남포동' (1991) ⓒ 문진우
<불감시대> '남포동' (1985) ⓒ 문진우
그의 사진을 긴 호흡으로 천천히 음미해보자. 칼로 물 베듯 구분할 수는 없지만. 문진우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록성이 강한 다큐멘터리 사진이지만 기록은 아니다.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최대한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감성적(혹은 예술적)으로 접근한 기록이다.

그러다 보니 사건의 구체적 사실은 배제된 채 감각적 요소로 덮여 있는 것들이 많다. 이러한 사진에서는 가시성 자체가 메시지 전달의 중요한 수단이다. 가시성이 크면 클수록 메시지 전달력은 강해진다. 그 가시성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는데, 하나는 소재이고 또 하나는 재현력이다.

문진우의 경우 소재는 도시다. 그렇지만 그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자극적 현장으로부터는 벗어나 있다. 사회 문제를 들추어냄으로써 상실을 말하고자 하는 르포르타주의 현장은 아니다. 재현은 구체적인 시공간의 정보를 드러내기보다는 사진을 보는 이의 감성을 자아내게 하는 방향으로 했다. 사진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도시 아웃사이더의 구체적 사실이 아닌 세계에 대한 해석이다.

문진우가 대상을 보는 시선은 최민식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여러 가지 사진의 기법과 분위기가 그렇다. 스냅 샷을 하면서 주로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자 하였는데, 사실, 그 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은 사건에 대한 구체성이 배제된 것으로 역사적 해석을 위한 기록 자료로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낌을 많이 갖게 하는데 최민식은 그 순간 포착을 통해 질긴 휴머니즘을 재현하고자 하였고, 문진우는 그것을 통해 도시 속 외딴 이질감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당연히 연출된 사진도 없고, 시선의 큰 변화도 없다. 최민식과 마찬가지로  전체 시대상을 기록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경(遠境)이나 전경(全景) 같은 것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에게 다큐멘터리 사진은 객관적 자료가 아닌 세계의 주체적 해석과 그것의 전달 매체이다.

<불감 시대>는 여러 장면을 실재와 관계없이 사진가가 전유(專有)한 이미지들을 묶어 도시인의 상실감을 메시지로 전달하려는 작품이다. 그 안에는 그때 그시절에 대한 정보들도 심심찮게 나와 감성을 자극하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주된 것은 사진가가 전유한 이미지를 통해 독자들은 그 '상실과 불감의 시대'라는 메시지를 읽게 된다는 사실이다.

쭈그려 앉은 노인들 앞으로 주차된 차는 그 노인들을 깔아뭉개버릴 기세다. 화려한 극장 앞에 나타난 중이나 목 잘린 노동자 뒤로 말쑥하게 드러나는 외국인의 모습은 이질적이어서 낯설다. 한참 올라가는 신축 빌딩 앞에 가면 쓴 이가 나타나니 그 빌딩이 무너질 것 같고, 지하도에 주저앉은 두 노인을 아주머니는 외면하고 여학생은 (자꾸) 뒤를 돌아보는, 지하철에 앉은 두 소녀 앞에 선 건장한 두 남자의 분위기가 불안한, 한 시외버스 정류장의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우울한 분위기는 함께 어우러져 터널로 들어가는 버스 맨 뒷좌석 승객들은 헬조선을 향해 들어가는 배경이 된다.

문진우가 도시 세계를 해석한 방식이다. 그의 다큐멘터리 메시지가 우리에게 힘 있게 다가서는 것은 그가 세계를 직설적으로 보여 싸움으로 바꾸려 하지 않고 해석하여 보여준 그 은근함에 있다.
<내 마음 속의 다큐 한 장>(1976~1999) ⓒ 문진우
<내 마음 속의 다큐 한 장>(1976~1999) ⓒ 문진우
<내 마음 속의 다큐 한 장>(1976~1999) ⓒ 문진우
<내 마음 속의 다큐 한 장>(1976~1999) ⓒ 문진우
<내 마음 속의 다큐 한 장>(1976~1999) ⓒ 문진우
<내 마음 속의 다큐 한 장>(1976~1999) ⓒ 문진우
2016년에 전시 발표한 <내 마음 속의 다큐 한 장>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내 마음'이 꽂힌 부산 사람들이 살아가던 평범한 모습을 찍은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어서 예술성이라는 거, 작품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다.

사진가 문진우는 사진을 시작하면서 항상 카메라를 메고 부산과 그 주변을 마음 가는 대로 걷는다. 어언 40년 가까이 해 오는 일이다. 걷다보면 마음이 꽂히는 데가 생기는 법이다.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접하고, 책을 읽고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장면 하나하나를 접하면 뭔가에 지남철 끌리듯 끌릴 때가 생긴다.

그 순간 셔터를 끊어, 필름을 현상하고, 모아놓은 것이 어언 40년이다. 걷다 보니 길이 되듯, 찍어두니 '작품'이 된다. 그 작품성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고, 도대체 누가 규정을 하는지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사진가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그 오래된 문진우의 사진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거치면서 '작품'이 되었다.

그 문진우 사진의 작품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바로 오래됨에 있다. 특별히 다지는 기록해야겠다, 는 의지나 예술을 추구해야 한다, 는 정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찍어놓고 보면 시간이 흐르고 그 사이에 오래 됨이 생긴다. 누구든, 그 오래된 사진에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카메라라는 표현의 한계가 분명한 한낱 기계로 고작 해봤자 초점, 콘트라스트, 톤, 프레임 등으로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는 정도의 조합으로 어떤 작품성을 평가한다는 것은 마뜩치 않는 노릇이다. 특정 용도를 기준으로 삼아 내리는 일률적인 판단일 것이다.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진가가 직접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물리적 조건들을 기계를 통해 새롭게 맞춰 봤자 그것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예술적이겠는가? 기계가 만들어내는 사진의 역사가 18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하늘 아래 새로운 사진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겠는가?

사진이 어떤 용도로 쓰일지라도, 그것의 속성이 기록에 가깝든 예술에 가깝든 순수 다큐멘트이든 관계없이 모든 경우에 통용되는 가치 하나만 골라라 한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오래됨'이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것이 태생적으로 시간을 잡아두는 매체이면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사진 이미지는 모든 사람들을 동일한 감정으로 나누고 소통하게 하지 못한다. 지나간 시간 안에서 멈춰버린 그 순간을 보고 자신의 지난 이야기가 떠오른 사람은 슬픔에 잠기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별 느낌을 갖지 못한다. 그가 슬픔을 느끼는 것은 과거를 지나오지 않은 사람은 없을뿐더러, 늙어버림이 서럽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그 과거 한 순간을 잡아둔 그 장면 하나 하나가 너무나 흔한 모습이라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더군다나 구도가 예술적이지 않아 죽어 있지 않고 – 소위 좋은 구도란 그림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의 눈이 실제로 보는 세계는 그 좋은 구도로 재단되지 않는다 - 그 안에 특별한 메시지가 들어 있지 않다면, 그 사진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무덤 위에서 LP판 흔들며 고고 춤추던 모습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구도로 잡힌 사진을 본 적이 없다. "맞아, 저 나이에 연탄지게 지고 연탄 나르곤 했는데" ... "서커스단 한 번 씩 올 때 누나 손잡고 갔었는데" ... "거, 금양철강, 사상공단 안에 있는 거, 그 앞은 지금도 비가 오면 그래 잠기나?" ... 오래된 사진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가 없다.

2. 부산,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곳이 있을까?

부산에서 거주하고 부산에서 활동하는 사진가가 부산을 찍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바다를 찍는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누구나가 잠기곤 한 그 낭만의 세계, 그것을 담는 사진은 비록 소재주의라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사진은 마음 가는 대로 찍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바다를 찍고 싶어 집을 아예 해운대로 옮겼고, 그리하여 아침저녁으로,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비오는 날은 비오는 날대로 바다와 하늘을 담는다. 그리고 1997년 전시를 했다. <바다, 하늘 그리고 오브제>다.

부산하면 떠올리는 장소 중의 또 하나 대표적인 것으로 산복도로라는 게 있다. 산의 배를 갈라 길을 내고 동네를 만들었다는, 그래서 슬픈 역사를 담고 있는 부산에 있는 지역이다. 산복도로는 사진가 문진우가 사진 시작할 때부터 주목해 온 소외된 도시 사람들의 섬이다. 젊은이는 떠나고, 남은 건 허리 굽은 노인들밖에 없다. 그들이 사는 모습을 내 마음 가는 대로 찍어 기록할 뿐이다.
<바다, 하늘 그리고 오브제>(1993~1997) ⓒ 문진우
<바다, 하늘 그리고 오브제>(1993~1997) ⓒ 문진우
<산복도로에서 부산을 보다>(2010~2013) ⓒ 문진우
<산복도로에서 부산을 보다>(2010~2013) ⓒ 문진우
<산복도로에서 부산을 보다>(2010~2013) ⓒ 문진우
부산이 갖는 특수성은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역사에서 중요한 것이 여럿 있겠으나 뺄 수 없는 것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조선통신사가 있다. 이 시기의 역사는 조선통신사를 통해 평화의 사도로 한국과 일본 정부에 의해 이미지화됐다.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와 시즈오카를 거쳐 도쿄로, 그리고 나중에는 뉴욕으로까지 가는 그 행사는 온갖 상징으로 꾸며진 만들어진 역사다. 행사를 주최하는 측은 그 행사를 멋지고, 단순하게 드러내고 싶다.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 같은 것을 들추어내는 것을 마뜩치 않아 할 수밖에 없다. 그 평화로운 축제를 관이 의도하는 대로 멋지게 드러내 줄 사진가가 필요하다.

사진가의 시선이나 해석은 필요 없다. 이 일을 문진우가 맡았다. 카메라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무슨 작품이라는 게 삶에서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닐 터. 신문기자로서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항상 포토저널리즘 스타일로 찍는 것도 아니고, 관에서 요청을 받아 찍는다고 해서 항상 꼭 관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진만 찍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이런 사진을 보고 그를 꼭 무슨 대필 작가 보듯 한다. 그러면서 문진우는 어느덧 돈을 주면 다 찍어주는 사진가, 영혼 없는 사진가가 되어 버린다.

조선통신사 행사를 15년 넘게 찍어 두었으면 그거야말로 소중한 기록이다. 사진가의 시각이나 감성이 최대한 배제된 다큐멘트로서의 기록 사진이다. 이 또한 시간이 가면 매우 귀중한 사진이 될 것이다.

여기서 사진가 문진우가 조선통신사 행렬을 따라 일본에 다니면서 남긴 시모노세키의 축제, 바칸마츠리를 재현한 사진들과 비교해보자. 바칸마츠리 사진은 구경꾼으로 축제 안으로 들어가 함께 춤을 추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슬로우 셔터와 플래시의 조합이 기계적 우연성과 맞아 떨어지면서 멋진 이미지들이 많이 나왔다. 좋은 카메라 놀이로, 유쾌한 흔적이다. 행사를 기록한 다큐멘트 사진이 갖는 공적 성격이나 개인이 놀고 즐긴 축제 사진이 갖는 사적 성격이나 모두 존중해야 할 소중한 사진 행위다.
<하야리아>(2010) ⓒ 문진우
<하야리아>(2010) ⓒ 문진우
<하야리아>(2010) ⓒ 문진우
문진우의 자기 시각을 배제한 다큐멘터리 즉 객관적 정보 제공의 성격이 강한 다큐멘트로서의 사진은 2011년 <하야리아, 사진 속에 잠들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고 2014년 <하야리아 Hialeah> 사진이다.

이 사진은 1950년 들어선 부산의 한 미군부대가 2006년 폐쇄됨에 따라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놓기 위해 부산시가 위탁한 공식 사진가로 참여하여 남긴 작업이다. 사진가 고유의 시선이나 시각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별한 메시지도 있을 수 없다. 다만 사진가가 재현을 했다면 그 장소가 폐쇄되고 사라지는 모습을 그 느낌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사진가가 1998년 부산전국체전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20년 넘게 쌓아 온 무미건조한 공적 기록의 내공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명지 뉴타운>(2015~2016) ⓒ 문진우
<명지 뉴타운>(2015~2016) ⓒ 문진우
<명지 뉴타운>(2015~2016) ⓒ 문진우
사진가 문진우는 지금 저 유명한 낙동강 철새도래지 가운데 하나였던 명지에 뉴타운이 들어서는 과정을 기록하는 중이다. 문진우 특유의 특별한 자기만의 스타일이나 예술적 표현이 강한 기록보다는 남들이 보는 대로 찍어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그 자체로는 어떤 '작품성'이라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예의 지금까지 해 온 사진들과 같이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서 '오래됨'이 퇴적되면 그 가치는 비로소 인정받을 것이다.

그때가 오기까지 사진가는 버텨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먹고 살지 못하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당신은 이 땅에서 사진가가 어떻게 먹고 사는지 아시는가? 풀빵장사에 이삿짐 노가다에 필름값 벌기 위해 벽지 바르는 이 땅의 사진가들의 그 영혼을 헤아려 본 적 있는가?
태그:#문진우,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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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전공의 역사학자. 역사를 분석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참여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이자 해고자생계비지원을 위한 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 및 5.18기념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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