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월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누군가는 또 세월호 이야기를 한다고 지겹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지겹다는 사람들을 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작에 끝났어야 할 인양은 제대로 시작조차 못했다. 왜 세월호 인양이 되어야 하는지, 어째서 세월호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지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JTBC의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탐사 저널리스트 이규연은 세월호의 인양조차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1년에 제작하는 52편의 방송 중에서 한두 편은 방영해야 할 만큼 세월호는 분명히 기억해야할 문제임을 짚고 시작했다.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보스턴 교구의 아동 성추행 문제를 취재하는 기자들을 다룬 실화 영화다. 영화 속에서 기자들은 '완벽한 진실'을 추구하며 저널리즘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보여준다. 같은 이름의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역시 잊히는 세월호에 대한 의혹들과 인양의 문제에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저널리즘을 보여준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

 다윤이의 어머니의 말에는 죄책감과 슬픔이 깊게 묻어 나온다. 
"다윤이한테 너무 미안한 사실은 수학여행을 안가겠다고 한 아이인데…. 학교 수업이니까 혼자 학교에 있는 것보다 같이 가서 아이들이랑 좋은 추억을 만드는게 낫지 않겠냐고 설득해서 그렇게 보냈는데…."

다윤이의 어머니의 말에는 죄책감과 슬픔이 깊게 묻어 나온다. "다윤이한테 너무 미안한 사실은 수학여행을 안가겠다고 한 아이인데…. 학교 수업이니까 혼자 학교에 있는 것보다 같이 가서 아이들이랑 좋은 추억을 만드는게 낫지 않겠냐고 설득해서 그렇게 보냈는데…." ⓒ JTBC


2016년 7월 11일 세월호의 인양의 첫 번째 관문인 선수들기가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좋지 못했고 태풍으로 인해 연기됐다. 벌써 4번째 시도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 많은 종교 인사들과 해경, 그리고 희생자 가족들과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던 팽목항에는 빈 컨테이너만이 남아있고 사람의 발길은 거의 닿지 않고 있다. 어느새 세월호는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이 있다. 바로, 아직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9명의 가족이다. 다윤이의 어머니의 말에는 죄책감과 슬픔이 깊게 묻어 나온다.

"다윤이한테 너무 미안한 사실은 수학여행을 안 가겠다고 한 아이인데... 학교 수업이니까 혼자 학교에 있는 것보다 같이 가서 아이들이랑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게 낫지 않겠냐고 설득해서 그렇게 보냈는데..."

다윤이의 부모님은 지난 11일 세월호 선수들기 예정 장소에 바지선을 타고 나갔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수색을 포기하고 세월호의 완전한 인양을 요구한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세월호 인양은 시작도 못한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다른 미수습자의 가족의 사연도 마음이 아프긴 마찬가지다.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된 지연이의 가족은 지연이만 남기고 엄마, 아빠, 오빠가 모두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엄마의 경우 수습 됐지만 혁규와 권재근씨는 아직도 세월호와 함께 바다속에 있다.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도 너무 어린 나이에 지연이는 가족을 잃었다. 양승진 선생님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복원된 CCTV 영상을 통해서 겨우 남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그의 부인은 남편은 물론 남편의 유품조차 찾지 못한 상황이다.

미수습자 가족의 사연마다 너무 슬펐고 눈물이 나왔다. 2년 전, 세월호 참사를 목격하고 여러 활동을 했지만 미수습자 가족의 곁에서 함께 했던 시간은 거의 없었다. 내가 했던 활동들은 대부분 진상규명 요구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간담회를 하는등이었다. 세월호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진실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며 잊지 말자고 외치고 다녔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진 못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세월호 인양은 이들에게 바다속에서 아직도 나오지 못한 가족들을 만날 마지막 희망이 분명했다.

진실을 위해서 인양은 반드시 필요하다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는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후에 세월호와 관련된 영상들과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것이 20만쪽의 자료와 3TB의 영상자료들이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를 수현군의 아버지는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세월호 인양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는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후에 세월호와 관련된 영상들과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것이 20만쪽의 자료와 3TB의 영상자료들이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를 수현군의 아버지는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세월호 인양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JTBC


세월호가 인양되어야 하는 이유는 미수습자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세월호의 의혹들을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 인양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는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후에 세월호와 관련된 영상들과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것이 20만 쪽의 자료와 3TB의 영상자료들이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를 수현군의 아버지는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세월호 인양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료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세월호는 갑자기 30도로 기울어져 침몰되기 시작했다. 항적도를 보면 거의 360도에 가까운 궤적을 그리며 침몰했다. 하지만,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된 침몰 시뮬레이션 보고서에 있는 항적도는 실제 항적도와 다르게 상당히 훨씬 완만한 모습을 보였다. 목포해양대 항해학부 임남균 교수는 외력이 없을 경우에 복원력이 부족하여 넘어지게 되는데 조사된 화물량으로는 30도로 기울 수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조사하는 과정에서 세월호가 과적운행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월호의 경우에 안전규정상의 화물량은 987톤이지만, 청해진이 전산을 조작한 정황이 밝혀지면서 실제로 얼마나 화물이 실렸는지는 정확히 밝히기 어렵게 되었다. 그로 인해 검찰에서는 선적의뢰서와 물류회사 진술을 근거로 재조사를 실시했고 추정 화물량이 2142톤이라는 발표를 했다. 규정보다 2배 이상의 화물이 실린 채 운항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정확하지 않은 수치라는 정황이 나왔다. 선적의뢰서가 이상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취재팀에서 철재회사를 찾아가 취재한 결과 선적의뢰서가 이상이 있음이 밝혀졌다. 40톤이던 선적의뢰서와는 다르게 실제 주문량은 52톤이었고, 246톤이라고 적혀있던 선적의뢰서는 사실 제주해군기지로 갈 철근이었으며 287톤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청해진해운 물류팀의 김 차장에 따르면 세월호에는 보통 20% 철근은 다른 곳으로, 80%는 제주해군기지로 옮겨오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서 세월호 참사 당일 짙은 안개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운행을 한 이유가 제주해군기지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세월호와 제주해군기지라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밝혀지지 않은 내용은 이것뿐만도 아니었다. 고 제세호군의 아버지는 세월호 재판을 40여차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1심에서는 침몰의 원인이 조타수의 실수에 있었다고 했지만 2심에서는 조타기가 문제가 있었을 의심이 든다고 판결했다고 말한다. 또한, 이것을 정확하게 밝히려면 세월호 인양이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호 인양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확한 이유를 밝힐 수 없기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해 조타실에 있던 선원들에게는 참사의 책임이 없다고 판결이 났다. 결국, 인양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세월호의 정확한 침몰 원인이 밝혀지지 못했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세월호는 아무것도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상태였다. 세월호 참사를 안타까워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활동하던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많은 사람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세월호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다. 아마 미수습자를 찾기 전까지, 그리고 모든 의혹을 밝히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미래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인양뿐이다. 적어도 진실의 한 가닥이라도 잡기 위해서는 인양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잊고 싶다던 생존자 이성호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가 있기때문이며 또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잊고 싶다던 생존자 이성호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가 있기때문이며 또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 JTBC


방송의 마지막에는 세월호 참사와 함께 잊어서는 안될 인물들에 대하여 나왔다. 그 첫번째 인물은 민간인 잠수사 김관홍씨였다. 취재팀에서는 김관홍씨와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김관홍씨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함께 세월호 수색에 참여했던 황병주씨는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조금 이해는 해요. 아직까지도 세월호에 갇혀있는 그 마음을... 세월호가 인양이 되고 했어야지 다 끝났을 것 같은데..."

김관홍씨를 포함한 많은 민간인 잠수사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자의적으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김관홍씨는 해경에 재촉으로 무리하게 잠수를 하다 심정지로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해경의 일방적인 통보로  결국 민간인 잠수사들은 현장을 떠나게 되었다. 미수습자 11명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잠수병을 얻고 생계가 위협받게 되었지만 그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청문회 등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했다.

참사 당시에 배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조한 김동수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또렷해지고 커진다는 그는 아직 세월호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다. 어째서 훌륭한 일을 해내고 힘든 일을 한 이들이 오히려 고통을 받아야 할까. 이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전혀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는데 어째서 청문회에 나온 많은 증인들은 기억이 안 난다며 일관된 대답을 쏟아냈을까. 국민을 보호할 당연할 역할을 하지 못한 책임자들은 멀쩡히 살아가는 상황속에서 당연하지 않은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들이 고통 받아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잊고 있었던 세월호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도 이렇게 많이 묻혀 있었지만 내가 하는 활동들은 지속되지 못하고 금방 끝나버렸다.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외쳤지만 어느새 잊은 채로 살아오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잊고 싶다던 생존자 이성호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가 있기때문이며 또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잊을 진실조차 찾지 못한 사람들은 잊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 진실을 찾아 희생자의 가족들, 그리고 생존자들이 잊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세월호 인양 진실 유가족 미수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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