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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 투표일을 한달 앞둔 지난 2012년 11월 19일. 김수창 특임검사팀은 특수부장 출신인 김광준(55) 전 서울고검 부장검사를 구속했다. 김 전 부장검사의 구속은 검찰총장의 사과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은 이날 배포한 '사죄의 말씀'이라는 자료에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마음 깊이 사죄드리고 준엄한 비판과 질책을 받겠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검찰총장을 '참담하게 사과'하도록 만든 김 전 부장검사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시절 유진그룹 검찰 내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5억 9000여만 원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으로 도피한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씨의 최측근인 강태용씨로부터 총 2억 7000만 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 전 부장검사의 뇌물 수수 사건이 검찰 조직에 큰 충격을 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 전 부장검사가 꽤 잘 나가던 특수부장 출신이었고, 뇌물의 출처가 다단계 사기업체였고, 뇌물 액수가 컸던 탓이다. 하지만 '그랜저 부장검사 사건'(2010년)과 '벤츠 여검사 사건'(2011년)으로 인해 검찰 조직이 국민들로부터 혹독하게 불신받고 있던 차에 터진 사건이어서 그 폭발성이 더 컸다.

1·2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내용을 대체로 받아들여 김 전 부장검사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다만 김 전 부장검사에게 부과한 벌금과 추징금에서 차이를 보였다. 1심은 벌금 4000만 원과 추징금 3억 8070만 원을 선고했고, 2심은 이보다 많은 벌금 1억 원과 추징금 4억 5147만여 원을 선고한 것이다. 대법원은 김 전 부장검사와 검찰의 상고를 모두 기각함으로써 원심을 확정했다(2014년 5월).

지난 2012년 11월 13일 특임검사팀에 조사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한 김광준 전 부장검사.
 지난 2012년 11월 13일 특임검사팀에 조사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한 김광준 전 부장검사.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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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7000만 원 건넨 강태용의 '최초 진술'이 나오다

그런데 김 전 부장검사에게 총 2억 7000만 원을 건넸다는 강태용씨는 검찰에서 조사받거나 재판에 출석한 적이 없다. '조희팔 다단계 사기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지난 2008년 11월 강씨가 중국으로 도피해 버렸기 때문이다.

강씨는 5조 원 대 다단계 사기사건의 주범인 조희팔씨의 최측근이고 김 전 부장검사의 중·고교 동창이다. 검찰과 경찰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강씨는 다단계 업체의 조직관리와 배당금 지급, 사기 혐의로 수사받을 경우 수사와 재판 관련 업무 등을 맡고 있었다. 그는 지난 2008년 11월 중국으로 도피했다가 지난 2015년 10월 중국 장쑤성 우시시의 한 아파트 앞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됐고, 두 달 뒤인 12월 국내로 송환됐다.

강씨의 국내 송환은 조희팔씨의 사망 여부와 은닉 재산, 검찰·경찰과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을 풀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그로 인해 강씨가 김 전 부장검사에게 총 2억  7000만 원을 건넸다는 혐의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강씨는 중국으로 도피하기 전인 지난 2008년 5월(2억 원)과 7월(5000만 원), 10월(2000만 원)에 총 2억 7000만 원을 김 전 부장검사에게 건넸다. 김 전 부장검사는 2억 7000만 원을 '친분 관계에 의한 차용'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1심과 2심, 대법원은 '알선수재 뇌물'로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될 당시 2억 7000만 원을 건넨 강씨가 중국으로 도피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최근 강씨의 피의자 신문조서(1월 2일)과 친필 진술서(4월 22일), 김 전 부장검사에게 보낸 편지(4월 16일)를  입수했다. 여기에서 강씨는 "친구를 통해 김광준이 돈 문제로 여자에게 협박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돈을 건넸고, 중국에 도피하고 있을 때인 2009년 12월께 그 친구를 통해 김광준에게 1억 5000만 원을 돌려받았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김 전 부장검사에게 2억 7000만 원을 건넨 강씨가 이 사건과 관련해 처음으로 내놓은 진술이다. 이를 근거로 김 전 부장검사는 조만간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다. 

지난 1월 2일 진행된 강태용씨 피의자 신문 가운데 일부.
 지난 1월 2일 진행된 강태용씨 피의자 신문 가운데 일부.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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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협박 때문에 검사를 그만둬야 한다고 해서..."

강씨는 지난 1월 2일 대구지검 2608호 검사실에서 11번째 피의자 신문을 받았다. 당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에 따르면, 검찰은 강씨를 상대로 김 전 부장검사를 알게 된 경위와 금전거래, 2억 7000만 원을 준 이유 등을 캐물었다.

먼저 강씨는 "김광준은 저와 성광중, 영신고 동기로 학교 다닐 때는 친하지 않았지만 2004년경 대구지검 산하 지청에서 검사로 일할 무렵부터 친하게 지낸 것 같다"라며 "김광준은 (또다른 동기인) 김○○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를 통해 2004년경부터 김광준을 만나 식사나 술자리를 한번씩 가졌다"라고 말했다.

강씨가 김 전 부장검사를 다시 만났다는 '2004년'에 김 전 부장검사는 대구지검 부부장검사를 거쳐 대구지검 포항지청 부장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후 김 전 부장검사는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2부장과 의정부지검 형사5부장, 부산지검 특수부장을 거쳐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에 올랐다.

강씨는 김 전 부장검사에게 총 2억 7000만 원을 준 이유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최초 김광준에게 2억 원을 줄 당시 김○○으로부터 '김광준이 여자문제에 이상하게 엮여서 공무원 생활을 계속 할 수가 없다'는 취지의 얘기를 듣고 2억 원을 빌려주고, 그 후에 김광준이 주식을 하면서 돈을 많이 날렸다는 얘기를 김○○으로부터 듣고 다시 7000만 원을 주게 됐다"라고 해명했다. 이는 강씨가 지난 4월 16일 김 전 부장에게 보낸 편지와 4월 22일 작성한 진술서에도 등장하는 내용이다.

"자네가 여자문제 때문에 힘들어하고 돈 협박 때문에 앞길이 창창한 검사생활을 그만둘 상황이라는 (김)○○이 이야기 듣고, 그 다음날 바로 자네하고 통화하면서 협박하는 여자문제, 돈문제만 해결되면 직장에서도 아무 문제 안된다길래, 또 6개월-1년 사이에 갚아줄 수 있다 하길래, 나는 정말 친구로서 자네 검사 생활 계속 하라고 (2억 원을 보냈는데).... 이 문제가 자네 발목을 잡아 이런 상황까지 생길 줄은 정말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다."(4월 16일자 편지)

"2008년 5월경 친구 김○○을 통해서 친구 김광준이가 옛날 애인에게 돈 문제로 협박 당해서 검사직을 그만둘 상황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 다음날 김광준과 통화해서 돈 문제로 검사직을 그만두어서 되겠냐고, 협박 당하고 있는 돈이 얼마냐고 물었고, 그쪽에서 요구하는 것이 2억이라 하길래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만들어서 보낼테니 걱정말라고 했습니다. 송금하려고 할 때 본인 월급 계좌 불러주길래 여자에게 협박당해서 돈 보내는데 본인 계좌는 좀 곤란하지 않느냐, 다른 계좌를 불러 달라고 하였고, 제가 다른 계좌로 2억을 송금하였습니다."(4월 22일자 진술서)

법원에서 일관되게 '알선수재 뇌물'로 판단한 것과 다르게 2억 원은 '여자문제를 해결하라'고 김 전 부장검사에게 빌려준 돈이었다는 주장이다. 김 전 부장검사의 고교 동창이자 강씨와 가장 친하다는 김○○도 검찰조사에서 "김광준이 협박성 금품 요구를 받고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니 차용해 달라는 얘기를 듣고 재력이 있는 강태용에게 부탁해 차용해주었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최측근 강태용씨의 진술서.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최측근 강태용씨의 진술서.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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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서울지검 3차장에게 사표냈지만 만류했다"

김 전 부장검사가 엮였다는 '여자문제'는 대학교 미팅 때 만나 결혼까지 약속했다가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 K씨를 대구지검 포항지청 부장검사로 재직할 때 다시 만난 뒤 일어난 일들을 가리킨다.

그렇게 다시 만나 내연 관계를 유지하던 김 전 부장검사와 K씨는 지난 2007년과 2008년 '위기'를 맞았다. 김 전 부장검사가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2007년), '그만 만나자'며 관계 정리를 요구하면서(2008년)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K씨는 김 전 부장검사에게 두 차례 금품을 요구했다. 1차 요구(2007년) 때에는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에게 3억 원을 빌려 K씨에게 2억 5000만 원(위로금 명목)을 주었고, 2차 요구(2008년) 때에는 강씨에게 2억 원을 빌려서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이 김 전 부장검사의 주장이다.

김 전 부장검사는 최근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2008년 4월 말 결별을 선언했는데 그때부터 (K씨가) 대검 당직실에 전화해서 나의 비리를 신고하겠다며 2억 원을 요구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편지에서 그는 김수남(현 검찰총장)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게 이러한 '여자문제'를 털어놓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죄책감과 검사로서의 양심 등으로 사직하기로 하고 김수남 (현) 총장께 사의를 표하였더니 '임명된 지 두 달도 안돼서 무책임하게 사표 내는 게 말이 되느냐, 돈 구해서 막고 사태를 수습하라'고 계속 종용하여 돈을 구하려고 노력하다가 친구를 통하여 고교동창 중 당시 제일 금전적으로 성공하였다는 강태용에게 2억 원을 빌렸던 거예요."

김 전 부장검사에 따르면, 당시 김수남 3차장은 그에게 "특수3부장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데 그만두려 하느냐, 돈을 구해서 이 위기만 넘기면 승승장구할 수 있는데 사직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도 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김수남 현 총장을 "학교 다닐 때부터 같이 당구치던 고향 형"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이러한 '여자문제'는 김수남 3차장뿐만 아니라 명동성(현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명 지검장도 김수남 3차장처럼 사직을 만류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강씨에게 2억 원을 받은 직후 5000만 원을 되돌려주었다(2008년 6월-7월). 그리고 중국에 도피하고 있던 강씨의 요구에 따라 지난 2009년 12월 1억 5000만 원을 반환했다. 이와 관련, 강씨는 지난 1월 피의자 신문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제가 중국에 도피한 후에 1년 정도가 지나서 제 도피자금이 부족한 문제로 김○○에게 연락하여 김광준에게 준 돈 중 일부라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여 김광준이 김○○이 아는 사람의 계좌를 통하여 저에게 1억 5000만 원을 돌려주었습니다. 당시 김상식이 1억 5000만 원을 환치기하여 중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주었습니다. 당시 배△△에게 수표로 맡긴 돈이 날아간 상황에서 도피자금이 부족하여 돈을 돌려달라고 한 것입니다."   

강씨는 특히 2억7000만 원의 '출처'와 관련해 "회사자금이었다"라면서 "당시 조희팔에게 급하게 쓸 돈이 있다는 취지로 얘기한 후 조희팔의 허락을 받아 회사자금을 김광준에게 줬다"라고 말했다.

조만간 재심 청구 예정... "국가권력과의 싸움을 시작"

강태용씨가 지난 4월 16일 작성해서 김광준 전 부장검사에게 보낸 편지.
 강태용씨가 지난 4월 16일 작성해서 김광준 전 부장검사에게 보낸 편지.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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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현재 의정부교도소에서 3년 8개월째 복역중인 김 전 부장검사는 강씨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서, 편지 등이 '무죄를 명백하게 입증할 새로운 증거'라고 보고 조만간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100쪽이 넘는 재심청구서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부장검사는 지난 4월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7년 동안 도망다녀서 영원히 올 것 같지 않던 친구(강태용)가 타의로 귀국했네요, 이제 국가권력과의 싸움을 시작하려 합니다"라고 썼다.


태그:#김광준, #강태용, #조희팔, #김수남, #명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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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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