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열차와 감염되는 사람들. 아직 개봉하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영화를 다 본 것 같은 기분이다. 공유는 좀비물을 다룬 <부산행>이 "한국에서는 생소한 소재"라고 말했지만, <감기>나 <연가시> 처럼 감염성이 높은 질병을 서로 옮고 옮기는 설정, 그 행동반경이 극도로 제한적이라 오히려 집중력 높은 극의 소재가 되는 열차 안(<설국열차>)이라는 설정 속에서 새로운 드라마가 만들어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부산행>은 결과적으로 '안 봐도 본 듯한' 진부함을 넘어 '좀비물'로서의 장르적 가능성과 사회적인 메시지를 엮는 데 성공했다.

<괴물>에 더 가깝다


언론 시사 전부터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라는 것만큼 '대한민국 최초의 LED 후면 영사 기술'을 이용해 달리는 열차를 최대한 현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강조됐다. 하지만 영화 <부산행>은 <스크린 데일리>의 평(<설국열차>와 <월드워 Z>가 만난 한국형 블록버스터)과는 달리 <설국열차>보다는 영화 <괴물>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영화 <괴물>에 나온 의문의 괴생명체는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촉매제였고, 이는 <부산행>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좀비물' 혹은 '재난 영화'로서 보는 <부산행>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지만, 감독은 좀비를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더 자세하게 다룬다.

연상호 감독이 의도한 사회적 메시지는 극 초반부터 명확하게 제시된다. 타이틀 자막이 들어서기도 전, 화면에 등장한 어떤 남성이 운전하다 무심결에 고라니를 치어 죽인다. 생명을 죽였음에도 그저 운수 사나운 날을 만났다는 듯 툴툴대던 남성은 이내 떠나고, 죽었던 고라니는 꿈틀거리며 일어난다. 좀비가 된 것이다.

펀드매니저 석우 역을 맡은 공유는 회사 동료에게 다소 껄끄러운 업무 집행을 부탁하고는 "네가 언제 '개미들(소액 개인 투자자)' 신경이나 썼느냐"며 강행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열차 안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착한 딸 수안에게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네 생각만 해야 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열차'나 '좀비'라는 소재가 무엇을 은유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적자생존 사회에서 오로지 개인적인 생존과 성공만 외쳤던 한국의 사회상이 석우를 통해 제시된다. 연상호 감독은 펀드매니저로 설정된 석우의 직업을 통해 "한국의 성장 중심 사회를 대변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한편,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응원가로 널리 쓰인 '오 필승 코리아'가 영화 <부산행>에도 나온다. 이 노래는 과연 영화 어디에서 쓰일까? '오 필승 코리아'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용한 사례도 있다. 2009년 7월 쌍용차 노조 파업 집회 당시, 쌍용차 사측은 노조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노래 '오 필승 코리아'를 크게 틀었다. 이 영화가 담은 메시지와 '오 필승 코리아'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거울을 보는 공유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여럿이 동시에 등장하긴 하지만 역시 <부산행>의 주인공은 석우(공유)다. 연상호 감독은 12일 언론 시사가 끝난 이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영화 <부산행>이 "소시민, 일상적인 사람들의 드라마를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석우는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던 '소시민적 인물'에 가장 잘 부합하는 캐릭터다.

석우는 자신만 살고자 하다가 모두를 위기에 빠트리는 용석(김의성 분)처럼 마냥 악으로만 가득 찬 사람도 아니고 열차 안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상화(마동석 분)처럼 힘세고 선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살기 위해 사람이 달려오는데도 불구하고 열차의 문을 닫는 악한 모습과 그런데도 살아남은 이들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적당히 선한 모습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다.

영화 <부산행> 속에서 석우는 자주 무언가를 빤히 응시한다. 부산행 KTX는 쉼 없이 달리고 좀비가 된 사람들은 열차만큼 빨리 달린다. 굉장한 에너지로 내달리는 <부산행> 안에서 석우는 움직임이 크지 않은 캐릭터다. 그런데 영화는 석우가 멍한 두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장면을 자주 내준다. 석우는 아빠의 책임감으로 수안(김수안 역)을 바라보다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용석(김의성 분)을 쳐다보기도 하고, 거울을 응시하기도 한다.

영화 <부산행>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극의 거의 마지막, 석우는 노골적으로 거울을 쳐다본다. 이기적인 소시민이었던 석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또 그가 응시하던 수안과 용석에게서 그는 무엇을 본 걸까. 그가 바라보는 대상에 그의 모습이 비치는 듯하다.


오마이스타's 한줄평 : 좀비, 재난, 사회적 메시지 어느 쪽으로 보아도 빠지지 않을 '블록버스터'

평점 : ★★★★ (4/5)

영화 <부산행> 관련 정보

감독 : 연상호 출연 :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의성 김수안 등 제작 : 영화사 레드피터 제공/배급 : NEW(넥스트 엔터테인먼트 월드) 상영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18분 개봉 : 2016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