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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정희 전 대통령 만주군 혈서 지원 사실을 보도한 <만주일보> 1939년 3월 31일자 신문. 붉은 색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해당 기사 부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만주군 혈서 지원 사실을 보도한 <만주일보> 1939년 3월 31일자 신문. 붉은 색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해당 기사 부분이다.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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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

(한 번 죽음으로써 나라에 충성함 박정희)

초등학교 교사였던 스물세 살 박정희가 신경군관학교에 지원하면서 쓴 혈서다. 일본 이름 '다카기 마사오'인 박정희는 군관학교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나이(16세~19세) 제한에 걸렸다. 박정희의 집념은 대단했다. 세 차례의 끈질긴 시도 끝에 1940년 4월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학교 측은 일본과 천황을 위해 충성을 다짐한 박정희의 혈서와 멸사봉공의 신념에 감동해 합격시켰다.

패망한 일제는 한반도를 떠나면서 회군(回軍)을 자신했다. 확신에 찬 기약은 세균보다 강력한 친일세력 때문이었다. 친일 군인 박정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의 기약과 확신은 적중했다. 그들은 12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국방부는 반발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장급 인사가 '국방교류 차원에서 참석 한다'고 밝혔다.

아베의 자민당이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이번 선거의 쟁점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아베의 헌법 9조 개정이었다. 이번 총선 승리에 따라 아베는 헌법 개정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들의 군국주의 부활 시도는 더 이상 '망령'이 아니다. 일제가 망령에서 벗어나 회군할 수 있었던 것은 친일세력의 암묵적 비호 때문이 아닐까. 북한에선 자위대 행사를 하지 못한다.

한국은 천황을 위해 혈서를 쓴 일본군인 박정희를 기리기 위해 혈세를 쏟아 붓고 있다. 2014년 기준 최근 7년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무려 1356억5000만 원을 투입했다. 경북도와 구미시는 2017년 완공 예정인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사업에 888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고,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생가 공원화 사업에 286억 원, 민족중흥관사업에 65억 원을 이미 투입했다.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친일파의 준동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는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트렸다. 국민들은 생소한 이름의 바이러스에 의해 사상자가 계속 발생하자 공포에 떨었다. 정부의 부실한 대책으로 국민들이 희생을 당하면서 메르스 사태는 가까스로 진정됐지만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고질병(痼疾病), 민족의 혼을 갉아먹는 '친일파의 준동'엔 무참한 상태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친일에 물든 공직자들의 망언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4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일본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 발언했고, 지난 3월 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임시정부는 민족운동단체이지 정부가 아니다"라고 했고, 지난 6월 이종구 전 국방장관의 아들인 이정호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기에 이르렀다.

"1등 국민은 일본인, 2등 국민은 오키나와인, 3등 국민은 돼지와 차모로(원주민), 4등 국민은 조선인."

일제의 태평양전쟁 당시 남양군도에서 불리던 노래 가사다. 징용된 조선 노동자들이 돼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노래다.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다,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한다"는 발언은 우연이 아니다. 일제가 심어 놓은 식민사관과 자학사관이 고위 관료와 엘리트들에게 심어졌다 터진 사건이 개돼지 발언이 아닐까 싶다.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혼이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

임종국 선생이 직접 지은 창고. 충남 천안시 삼룡동에 있다.
 임종국 선생이 직접 지은 창고. 충남 천안시 삼룡동에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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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한 일제하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참회와 반성이 없었다는 해방 후의 현실이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발본색원의 광정이 없는 한 민족사회의 기강은 헛말이다. 민족사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조상임을 면할 날이 없게 되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300년만에 압박을 벗었고 유대 민족은 2천년을 나라 없이 떠돌아다녔으나, 그들은 민족의 전통을 상실하지 않았다. 우리가 불과 35년으로 이 지경까지 타락했었다는 것은 단순히 친일자들의 수치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민족 전체의 수치로서, 맹성은 물론 환골탈태의 결사적 고행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의 유고다. 선생께서는 "혼이 없는 사람이 시체이듯이 혼이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라고 하셨다. 선생의 비탄한 경고처럼 친일파 세력이 정치, 경제, 언론, 문화, 종교 등을 장악한 이 나라는 혼이 없는 나라이자 죽은 민족의 지경이다. 친일파 세력의 준동과 도발이 잇따르는 데도 속수무책인 이 나라에 무슨 혼이 있고 어떻게 기강이 설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모두 다 혼이 없고 전부 다 죽진 않았다. 만일 임종국 선생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가난과 병고에 시달렸던 선생은 <친일문학론>(1966년)을 시작으로 <일제침략과 친일파>(1983년), <일제하의 사상탄압>(1985년), <친일논설전집>(1987년) 등을 펴낸데 이어 총 10권으로 기획한 <친일파총서>를 집필하던 중 1989년 병환으로 민족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선생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이 만든 단체가 민족문제연구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선생이 남긴 연구 자료를 토대로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 4389명의 친일 행각과 광복 전후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을 2009년 출간했다. 2005년엔 친일청산과 역사정의 그리고 민족사 정립에 공을 세운 개인과 단체에게 주는 '임종국상'을 제정했다.

혼이 있는 민족이 되자…임종국 선생 조형물을 건립하자

9일 충청남도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임종국선생조형물추진위원회'(위원장 이용길) 발족식
 9일 충청남도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임종국선생조형물추진위원회'(위원장 이용길) 발족식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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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선생을 기리는 조형물이 충남 천안에 세워질 전망이다. 친일군인 박정희 기념사업엔 막대한 국고가 투입되고 있지만 친일청산의 아버지인 선생의 조형물은 시민의 정성이 아니면 세울 수 없다. 

'임종국선생조형물추진위원회'(위원장 이용길)는 9일 충청남도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조형물건립위원회 발족식을 열고 추진위원 4389명을 모으기로 했다. 추진위원은 친일인명사전의 친일파 숫자에 맞췄다. 한 명의 추진위원이 한 명의 친일파를 청산하자는 의미다. 조형물은 임종국 선생의 27주기 추모제가 열리는 11월에 맞춰 건립할 계획이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선생은 1980년 천안으로 거처를 옮겼다. 천안 근교 삼룡동에 요산재(樂山齋)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집필 작업을 하면서 밤나무 농사를 지었다. 천안에서 '일제침략과 친일파', '밤의 일제침략사' 등을 발간하며 친일청산 연구에 몰두하던 선생은 60세에 타계하면서 천안공원묘원에 안장됐다.

발족식에는 이용길 위원장과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함세웅 신부, 장병화 기념사업회장, 김지철 충남도교육감, 임종국 선생의 여동생 임경화씨를 비롯해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발족식에는 이용길 위원장과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함세웅 신부, 장병화 기념사업회장, 김지철 충남도교육감, 임종국 선생의 여동생 임경화씨를 비롯해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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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회장 장병화)는 선생의 추모 조형물을 2006년 제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친일청산과 역사정의를 세우는 일은 언제나 난관에 봉착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정부예산을 지원받아 만들 계획이었다.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2003년 친일청산을 방해하는 국회의원들에 의해 예산 5억 원이 전액 삭감됐다. 민중은 개돼지가 아니라 친일청산의 주역이었다. 국회의 예산삭감을 개탄하는 <오마이뉴스> 기사에 분노한 독자와 시민들에 의해 5억 원보다 많은 7억 원이 모금되면서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될 수 있었다.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부역한 매국노 9만8천여 명 가운데 9천 명 가량을 재판 없이 처형했다. 민족의 배신자들을 청산한 프랑스의 후예들은 개돼지 취급을 받지 않고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당당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친일반민족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우리들은 급기야 개돼지 취급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비참하고 굴욕적이다. 이런 수모를 그냥 넘기면 짐승이 된다.

이 시대의 삶은 극명해졌다. 개돼지 취급 받으며 살 것인가. 혼이 살아 있는 민족으로 살 것인가. 태극기 걸었다고 광복이 아니다. 기념식을 거창하게 한다고 광복 71주년이 아니다. 각혈하면서도 친일연구를 멈추지 아니한 재야사학자, 가난 때문에 피를 팔기까지 했던 친일청산의 아버지 임종국 선생을 위해 민족의 자녀들인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임종국 선생의 조형물을 시민의 힘으로 세우자.


태그:#임종국선생, #친일파 청산, #친일인명사전, #임종국선생조형물추진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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