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16이 마지막까지 극적인 반전드라마를 보여줬다. 11일 오전 4시(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유로 2016 결승전에서 포르투갈이 연장 후반 터진 에데르의 결승골을 앞세워 개최국 프랑스에 1-0으로 승리하며 앙리 들로네를 거머쥔 최후의 승자가 됐다. 포르투갈의 사상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결승전에서 대부분 프랑스의 우위를 예상했다. 통산 세 번째 유로 우승을 노리는 개최국 프랑스는 유로 84와 98 월드컵 등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특히 포르투갈에게는 상대 전적과 현재 전력상으로 모두 우위인 데다 1975년 이후 최근 10번의 대결에서 한번도 져본 일이 없었을 정도로 확고한 천적관계를 구축해 왔다.

하지만 축구는 언제나 예상대로만 전개되지는 않는다. 전반 8분 프랑스 디미트리 파예가 거친 태클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무릎을 가격했다.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 호날두는 무릎에 붕대를 감고 어떻게든 계속 뛰어보려고 했지만 25분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교체를 호소했다. 호날두는 들것에 실려나가며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포르투갈 전력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호날두의 돌연한 이탈과 눈물은, 포르투갈의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는 먹구름인 듯 했다.

포르투갈 선수들의 투혼을 불러온 호날두의 눈물

무릎 부상으로 쓰러진 호날두 프랑스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결승전 전반 7분 디미트리 파예(프랑스)와 강하게 충돌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가 무릎을 감싸며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다.

▲ 무릎 부상으로 쓰러진 호날두 프랑스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결승전 전반 7분 디미트리 파예(프랑스)와 강하게 충돌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가 무릎을 감싸며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다. ⓒ 연합뉴스/EPA


하지만 정작 호날두의 눈물은 프랑스의 상승세가 아니라 포르투갈 선수들의 투혼을 불러왔다. 그동안 '호날두 원맨팀'이라는 저평가에 가려졌던 포르투갈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과 조직적인 플레이를 앞세워 프랑스의 파상공세를 끝까지 저지했다. 이날 경기 최우수선수에 선정된 중앙수비수 페페를 중심으로 한 수비가 발군이었다.

우세한 경기에도 골이 터지지 않으면서 경기 종반으로 갈수록 프랑스는 초조해졌고, 체력이 떨어진 연장 후반 포르투갈이 오히려 기세를 올렸다. 결국 교체 투입된 에데르의 기습적인 오른발 슈팅 한 방으로 프랑스의 골문이 열렸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던 유로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서 포르투갈이 최후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포르투갈의 우승은 이번 대회 최대의 이변이라고 할만하다. 포르투갈은 유럽의 강호로 불리기는 했지만 월드컵과 유로컵을 통틀어 정작 메이저대회 우승 경험은 단 한 번도 없다. 루이스 피구나 에우제비오 등 역대 전설적인 선수들이 활약했던 황금세대조차 이루지못한 업적이다.

포르투갈은 이번 유로 2016에서 톱시드를 배정받았지만 당초 무난하다고 평가받았던 F조에서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 헝가리에 3연속 무승부를 기록하는 졸전에 그치며 조 3위로 힘겹게 16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부터 유로컵이 24개국 체제로 확대되며 도입된 와일드카드제가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어야 할 성적표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행보는 토너먼트에서 접어들며 완벽한 반전을 맞이했다. 첫 번째 원동력은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의 철저한 '실리 축구'다. 수비에 비중을 둔 산투스 감독의 전술은 조별리그에서 약팀들을 상대했을 때는 과정과 결과 모두 답답함을 반복했지만 단판승부인 토너먼트로 접어들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포르투갈은 이번 대회 들어 총 7경기를 치르는 동안 웨일스와의 준결승전을 제외하면 무려 6경기에서 90분 이내에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연장전만 세 번을 치렀고 승부차기(폴란드와 8강전)도 한 차례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포르투갈이 상대에게 리드를 잡았던 시간은 모두 합쳐도 70분 정도에 불과하며 이는 역대 유로컵 우승팀 중 최저 기록이다. 역대 유로컵 우승팀 중 최대의 언더독으로 평가받는 그리스(유로 2004)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포르투갈이 이번 대회에서 멀티골을 내준 것은 조별리그 최종전이었던 헝가리전(3-3)이 유일하고, 나머지 6경기에서는 단 2실점만 내줬다. 특히 조별리그에서 4실점한 것에 비하여 토너먼트에서는 4경기 1실점(폴란드와 8강전)이었다. 한마디로는 이기는 축구보다 철저하게 '지지 않는 축구'의 전형이었고, 이는 탄탄한 수비 조직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산투스 감독의 최대 장기이기도 하다.

전화위복이 된 조 3위 16강행

포르투갈, 프랑스 제압... 역대 첫 우승 포르투갈이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인근 생드니 소재 스타드 드 프랑스의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4분 터진 에데르의 결승골로 프랑스를 1-0으로 꺾고 앙리 들로네컵(우승 트로피)을 들어올렸다.
우승 상금 2천700만 유로(약 350억 원)를 거머쥔 포르투갈은 역대 월드컵과 유로 대회를 통틀어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사진은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모습.

▲ 포르투갈, 프랑스 제압... 역대 첫 우승 포르투갈이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인근 생드니 소재 스타드 드 프랑스의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4분 터진 에데르의 결승골로 프랑스를 1-0으로 꺾고 앙리 들로네컵(우승 트로피)을 들어올렸다. 우승 상금 2천700만 유로(약 350억 원)를 거머쥔 포르투갈은 역대 월드컵과 유로 대회를 통틀어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사진은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모습. ⓒ 연합뉴스/EPA


대진운도 포르투갈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조 3위가 되면서 오히려 강력한 우승후보들을 준결승까지 피하게 됐다. 포르투갈이 토너먼트에서 격돌한 상대들을 살펴보면 폴란드와 웨일스는 모두 이번 유로컵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한 다크호스 정도였고, 크로아티아도 우승후보로 평가받던 팀은 아니었다.

조별리그에서의 불안한 행보로 우려를 자아냈던 포르투갈은 토너먼트에서 연달아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듭하며 '생존왕'에 등극했다, 결승전에서 개최국 프랑스를 상대로 호날두를 잃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적직인 반전 우승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포르투갈의 우승을 이야기하면서 역시 호날두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이번 대회에서 꾸준함만 놓고보면 페페나 루이스 나니 등이 오히려 호날두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였다. 호날두는 이번 대회에서 초반 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아이슬란드 축구 비하' 발언과 '리포터의 마이크 투척'등 각종 돌출언행까지 겹쳐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호날두의 부진을 두고 대회 직전 출연했던 나이키의 '스위치' 광고를 패러디하며 "아직도 몸이 바뀌어있는 게 아니냐"는 조롱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못해도 호날두는 호날두였다. 포르투갈이 이번 대회 기록한 9골 중 3골 3도움이 호날두에게서 나왔다. 수비가 아무리 호날두를 흔들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호날두의 활약이 팀을 벼랑 끝에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결승전에서는 비록 부상으로 조기교체되며 동료들의 활약을 지켜봐야 했지만 그의 눈물은 동료들의 투혼을 끌어올리는 도화선이 됐다.

교체 이후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면서 마치 감독처럼 테크니컬 에이리어 앞으로 나와서 산투스 감독과 함께 나란히 팀원들을 독려하는 진풍경은 색다른 볼거리를 연출하기도 했다. 사실 다른 선수 같았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던 장면이지만, 호날두가 그만큼 포르투갈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리더였기에 가능했던 풍경이었다.

호날두는 이번 유로컵 우승으로 자신의 축구 경력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통산 네 번째 유로 본선에 출전한 호날두는 이번 대회에서 프랑스 미셀 플라티니(9골)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대 최다득점자에 등극했다. 올해 레알 마드리드에서 개인 통산 세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던 호날두는 40여일 만에 국가대항전에서 앙리 들로네를 들어올리며 최고의 한 해를 장식했다.

클럽무대에서 숱한 영광에 비하여 국가대항전에서 우승복이 없었던 호날두는 이번 유로컵 우승으로 클럽과 대표팀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라이벌 리오넬 메시가 탈세 논란과 3년 연속 메이저대회 준우승, 국가대표팀 은퇴 결정 등으로 초라한 내리막길을 걸은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한 해였다. 호날두는 완벽하게 메시를 뛰어넘었다.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승자의 운명을 타고난 남자 호날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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