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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밴드, 주민들과의 소통입니다.
 SNS 밴드, 주민들과의 소통입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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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스로 무덤 파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인 한 사람이 느닷없이 내게 말했다. "대체 뭔 소리냐?"라면서 짐짓 모른체 했지만, 그가 말하는 의도를 안다. '밴드' 때문이다.

SNS를 활용한 행정이 필요한 이유

"면장인 내가 직접 나서는 건 좀 그렇고, 회장님이 '밴드' 운영진 좀 맡아 주시죠."

지난 3월 초, 전미선 사내초교 학부모 회장을 만났다. 열정과 지역발전에 대해 남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사내면 사람들'이라는 밴드는 그렇게 탄생했다. 참고로 나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이다.

밴드는 면사무소에서 주민들에게 알릴 사항을 비롯해 주민 불편사항 등 민원을 접수받는 게 주목적이다. 면민들 간 경조사나 유용한 정보공유 마당으로도 활용된다. 개설 4개월 만에 300여 명의 주민들이 동참했다.

'며칠 전 비에 떠내려 온 흙으로 차량 운행이 어렵다'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에어로빅 시간을 늘려 달라' 등 다양한 의견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즉시 현장에 나가 처리를 지시하고 프로그램 조정 협의도 마쳤다. 밴드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일들이다.

지금까지 행정처리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마을 사람이 면사무소를 찾아 민원을 제기했다. 담당자 판단에 따라 방문 일정이 정해진다. 사진도 찍고 현장 스케치를 마치고 보고서를 만든다. 이후 내가 보고서를 가지고 담당자와 같이 현장을 찾아 이것저것 지시한다. 민원제기에서 처리까지 일주일 걸렸다.

주민들이 전화나 면사무소 방문을 통한 민원제기는 사실상 번거롭고 시간도 낭비된다. 면장을 찾아 장황한 설명을 하느니 밴드를 통해 사진 한 장 올리는 것으로 충분히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다. 현장에서 즉각 조치했다.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마을에 작은 극장이 생겼다. 농촌주민들은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전화로 확인하거나 일부러 극장까지 나와야 알 수 있다.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안남희 '토마토시네마' 부매니저는 밴드에 공지한다.

직원들을 소집, 긴급회의를 열었다. 밴드에 올라온 민원 때문이다. 직원들은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들이다. '왜 규정에도 없는 것을 만들어 번거롭게 하냐'는 눈치다. 직원들의 밴드 가입도 권했다. 면장인 내가 일일이 답글을 올리는 것보다 담당자 말이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도시민들의 귀농·귀촌이 많아졌다. 원주민들과 소통이 어렵단 말도 들렸다. 누군가 밴드를 통해 서로 잘 몰랐던 많은 사람들과 친해졌다는 글을 올렸다. 이들이 바랐던 건 주민들 간 소통이다. 이 또한 밴드행정 효과다.

역지사지, 민원인 입장에서 생각하자

면사무소 앞에 써 놓은 글귀다. 구호가 아닌 주민들과 약속이다.
 면사무소 앞에 써 놓은 글귀다. 구호가 아닌 주민들과 약속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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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정을 할 때 직원들과 상의를 자주 한다. 내 판단이 잘못됐을 수 있고, 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일방적으로 저질렀다.

'정답고 소중한 이웃, 행복한 사내면'

면사무소 앞에 걸렸던 구호다. 이 글귀를 보고 행복을 느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 또한 '정답고 소중한 이웃이 있어 행복하다'란 생각을 한 적 없다. 문구가 다분히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주민들 피부에 와 닿는 어떤 글귀가 없을까'란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한밤중, 잠결에 무심코 떠오른 생각. 벌떡 일어나 메모를 했다. 그래서 바꾼 게 "사내면 공무원들은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글귀다.

페이스북. 감성마을 이외수 촌장께서 극찬을 해 주셨다.
 페이스북. 감성마을 이외수 촌장께서 극찬을 해 주셨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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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마을 할머니 한 분이 20여 리 떨어진 면사무소를 방문했다. 걸어오다 보니 2시간은 족히 걸렸다.

"신청이 지난 건 알고 있지만, 노인 일자리 하나 만들어 주면 안 될까?"
"아니, 시간을 충분히 드렸잖아요. 이제 와서 그런 말씀하시면 어떻게요. 안되니까 돌아가세요."

위와 같은 상황을 가정해봤다. 할머니는 얼마나 힘이 빠지겠나. 힘없이 터덜터덜 두 시간 동안 오던 길을 걸어서 귀가하실 할머니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

안 되는 게 맞다, 아니 규정상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면전에서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일단 돌아가 계세요. 제가 충분히 알아보고 전화 드릴게요"라고 말했다면 그나마 할머니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무조건 법령이나 규정이란 잣대를 들이대 '안 된다'고 하지 말자. 한 번쯤 대안을 찾아보자는 거다. 그래도 정 방법이 없거든 전화로 말씀 드리지 말고 직접 찾아뵙고 정중히 말씀 드려라. '다음 번엔 가장 먼저 생각을 해드리겠다'란 말도 빼놓지 마라."

직원 교육 중 했던 말이다. "'우리 사내면 공무원들은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란 말은 구호가 아니다, 주민들과의 약속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해 8월 화천군 사내면장 부임 이후 매번 친절을 강조했다.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민원인에게 '의자를 권유했다', 기역자에 가까울 정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는 것으로 '친절했다'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민원인 입장에선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절대로 '안 됩니다'란 말을 사용하지 말자고 했던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시민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



태그:#밴드, #SNS행정, #사내면, #이외수, #사내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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