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33년, 서상천, 이규현 공저로 한성도서에서 발간한 <현대철봉운동법>에 수록된 선생의 사진. 당시 조선중앙일보 사장이었던 선생의 나이는 무려 48세였다. 실제로 선생은 어릴 적부터 철봉에도 능했다고 전한다.
▲ <현대철봉운동법>에 수록된 선생의 사진 1933년, 서상천, 이규현 공저로 한성도서에서 발간한 <현대철봉운동법>에 수록된 선생의 사진. 당시 조선중앙일보 사장이었던 선생의 나이는 무려 48세였다. 실제로 선생은 어릴 적부터 철봉에도 능했다고 전한다.
ⓒ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관련사진보기


"피를 흘리면서도 싸우고, 다운돼도 다시 일어나 싸우는 권투정신은 우리 청년들이 의당 본받아야 할 훌륭한 정신이다. 남성답게 씩씩하게 싸우라. 비겁하지 않게 정정당당히 스포츠맨십으로 싸우라." - 몽양 여운형

'한국 체육의 아버지' 몽양 여운형 선생(1886~1947)을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부영)는 오는 18일 오후 1시부터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19층)에서 대한체육회, 양평군과 공동 주최로 제9회 몽양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 69주기를 맞이하여 개최되는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는 <한국 체육의 선구자 몽양 여운형의 발자취>.

여운형 선생은 흔히 '건국동맹'을 이끈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정국에서 좌우합작을 추진하다가 반대파에게 암살당한 통일운동가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선생은 62세의 나이로 서거할 때까지 정치계뿐만 아니라 언론, 교육, 체육, 종교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바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특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선생의 체육사적 업적을 재조명한다는 것.

영화 <YMCA 야구단>의 모티브가 되기도

1926년 6월 15일, 여운형 선생이 코치로 있던 상하이 야구팀과 함께 찍은 사진. 선생은 기독교청년회 운동부장 시절 YMCA 야구단을 이끌고 일본 원정경기를 다녀왔고, 중국 금릉대학에서는 야구 대표 선수로 뽑혀 등록금을 면제받기도 했다.
▲ 상하이 야구팀과 함께 1926년 6월 15일, 여운형 선생이 코치로 있던 상하이 야구팀과 함께 찍은 사진. 선생은 기독교청년회 운동부장 시절 YMCA 야구단을 이끌고 일본 원정경기를 다녀왔고, 중국 금릉대학에서는 야구 대표 선수로 뽑혀 등록금을 면제받기도 했다.
ⓒ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관련사진보기


선생이 체육계에서 처음 두각을 드러낸 종목은 '야구'였는데, 실제로 우리나라에 최초로 야구가 도입되던 시기부터 선생은 야구계에서 중심적 활약을 한 바 있다.

우리나라 야구는 황성 YMCA의 초대 총무였던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는데, 당시 YMCA 운동부 주장으로 있던 이가 바로 선생이었다. 선생은 1912년 11월 YMCA 야구단을 이끌고 일본 원정에 나서 일본 야구 명문인 와세다 대학팀과 친선경기를 하기도 했다. 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가 바로 2002년 개봉한 영화 <YMCA 야구단>. 영화 속 이호창(송강호 분)의 실제 모델이 선생이었던 셈이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한편, 동포들의 체육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상해한인체육회를 조직하여 위원장을 맡았으며, 푸단대학교 명예교수로 체육부를 담당하여 대학 축구팀을 이끌고 싱가포르, 필리핀 등을 순방하기도 했다.

1929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어 수감되었다가 1932년 가출옥한 후에는 <조선중앙일보> 사장을 역임하면서 조선체육회 이사, 조선축구협회, 조선농구협회, 서울육상경기연맹 회장 등 각종 체육단체 임원을 맡아 조선체육 발전에 기여했다.

이 시절, 선생은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과 인연을 맺었다.

1934년에 열린 제2회 '조선 풀마라손 대회'는 선생이 직접 대회위원장을 맡아 열린 경기였는데, 이 대회의 우승자가 바로 양정고보 소속의 손기정이었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휩쓸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손기정은 선생의 지지와 후원을 받으며 베를린으로 떠났다.

당시 선생은 손기정을 비롯한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환송사를 하며, 일일이 악수를 하고, 등을 두들겨주며 격려했다고 전한다.

"제군들은 비록 가슴에는 일장기를 달고 가지만, 등에는 한반도를 짊어지고 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침내 베를린 올림픽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쟁취한 손기정은, 한국체육사에 길이 남는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전설 뒤에는 바로 선생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

체육 활동을 통해 민족혼·독립정신 고취

1936년 6월 11일부터 12일까지 양 일간 '제1회 학생축구대회'가 열렸다. 조선중앙일보 간도지국이 주최한 이 행사에서, 선생은 직접 개회사를 맡았다.
▲ 제1회 전간도 학생축구대회 기념사진 1936년 6월 11일부터 12일까지 양 일간 '제1회 학생축구대회'가 열렸다. 조선중앙일보 간도지국이 주최한 이 행사에서, 선생은 직접 개회사를 맡았다.
ⓒ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관련사진보기


해방 후, 선생은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 초대 회장과 조선올림픽위원회(KOC, 대한올림픽위원회의 전신) 초대 위원장을 맡아 1947년 6월에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가입했다.

당시 세계는 1948년에 열리는 런던 올림픽 준비로 분주하던 때였다. 선생 역시 좌우합작운동으로 바쁜 와중에, 우리 대표단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동분서주하였다. 선생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우리 대표단은 런던 올림픽에 정식으로 태극기를 내걸고 출전할 수 있었다. 당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이었기에, 태극기를 내걸고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체육계의 쾌거 중 하나였다.

1947년에 열렸던 선생의 장례식 풍경은, 이러한 선생의 체육사적 위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손기정을 비롯한 체육인들이 선생의 시신을 운구하고 하관까지 맡으며,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던 것이다. 그렇게 선생은 원로 체육인들에게 '한국 체육의 아버지'로 영원히 기억에 남았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의 장원석 학예연구사는 "몽양 여운형 선생의 체육 활동은 단순한 체육 활동이 아니었다"며 "선생은 체육 활동을 통해 청년, 학생들에게 민족혼과 독립정신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고 선생이 주도한 체육 활동의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역사학과 체육학이 만나다

오는 18일부터 몽양 여운형 선성 서거 69주기를 맞아 학술심포지엄 및 추모식이 열린다
▲ 몽양 학술심포지엄 및 추모식 포스터 오는 18일부터 몽양 여운형 선성 서거 69주기를 맞아 학술심포지엄 및 추모식이 열린다
ⓒ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관련사진보기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관련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러한 선생의 체육사적 위상에 대해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특히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체육학 연구자들이 참여한다고 밝혀,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선생의 체육사적 업적을 발표하는 심포지엄이니만큼, 주제 발표는 체육학자들이 맡고, 뒤에 있을 토론은 역사학자들이 맡는다는 것. 주최 측은 "이번 심포지엄에서 학제간 교류, 융합이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시도한다"며 "(선생에 대해) 역사학계에서만 바라보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1부 주제발표에서는 손환 중앙대 체육교육학과 교수가 '몽양 여운형이 한국 체육 발전에 미친 영향'을, 하정희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가 '몽양 여운형과 일장기 말소사건'을, 조준호 서해대 스포츠복지과 교수가 '몽양 여운형과 체육인들의 건국치안대 활동'을, 김재우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몽양 여운형과 제14회 런던올림픽 대회'를 발표한다.

2부 종합토론에서는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장), 류시현 광주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강혜경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등이 발표자들과 함께 토론에 나선다.

주최 측은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선생이 한국 체육사에 남긴 발자취를 재조명함으로써, '한국 체육의 아버지' 여운형 선생의 새로운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며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촉구했다.

19일에는 묘소에서 추모식 열려

한편, 다음 날인 19일 오전 11시부터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 서라벌중학교 입구에 있는 선생의 묘소에서 서거 제69주기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다.

추모식에는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등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부영 기념사업회 회장의 추모식사를 시작으로 박주선 국회부의장,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추도사와 봉도가 제창, 유가족 인사, 헌화·분향의 순으로 진행된다.

덧붙이는 글 | 문의)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031-772-2411)



태그:#여운형, #몽양 여운형, #체육, #역사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