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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은 인간을 이해타산적인 존재로 본다. 경쟁 시장에서 상품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는 수요·공급 곡선(X자 곡선)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신앙이다. 신앙은 인간의 노동을 상품으로 보는 자본주의와 만날 때도 적용된다. 가령 어떤 사업장이 10명을 고용하겠다는 구인 공고를 냈고 능력이 비슷한 구직자 15명이 줄을 서면 경영자는 적은 임금을 받고도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부터 고용한다.

임금을 너무 낮게 부를 경우는 구직자가 '그 돈 받고는 못 해'라고 거부해야 이상적이다. 문제는 현실이다. 구직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처럼 조직적이지 않고 생득적인 부와 권력도 약하다. 또한 생존 본능은 구직자가 자신을 합리적 주체로 보는 '자의식'조차 정지시킨다. 따라서 생존 본능은 단순한 '사적' 이기심 이상의 무엇이다. 경영자가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불합리한 임금을 불러도 굶어 죽지 않으려고 줄을 선다.

그 결과 임금은 더 하락하고 생계비 부족 분을 메꾸고자 노동 시간, 강도 역시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시장이 '합리적으로' 유지되려면 '이기적'이어서만은 안 되는데(애덤 스미스 <도덕 감정론> 참조), 자본가 집단이 이익을 늘리거나 유지할망정 분배하지는 않으려 할 때 생기는 문제다. 대안은 뭘까. 우선 1940년대 독일의 경제학자 발터 오이켄이 임금의 하한선을 긋는 최저임금제를 제안했고 전 세계 150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실제로 공익 위원 안은 노동자 위원 안보다 사용자 위원 안에 더 가깝다. 시각화 기법은 시사인 김연희 기자의 6월 27일 보도를 참고했다.
 실제로 공익 위원 안은 노동자 위원 안보다 사용자 위원 안에 더 가깝다. 시각화 기법은 시사인 김연희 기자의 6월 27일 보도를 참고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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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가 매년 6월까지 몇 차례 회의를 거쳐 결정한다. 위원회는 노동자 위원 9명, 사용자 위원 9명(경영계), 공익 위원 9명 총 27명으로 구성되며 공익 위원은 대통령이 위촉한다. 공익 위원은 노·사가 각각 최초로 제시한 최저임금 안을 놓고 법정 시한을 넘길 때까지 거리를 좁히지 못 하면 심의 구간을 설정한다.

'대통령이 위촉한다'에서 눈치챘겠지만 캐스팅 보드를 쥔 공익 위원들은 정권의 성향에 맞는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지난해 심의 구간이 5940~6120원으로 정해지자 노동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원 사퇴했고 경영계와 공익 위원만 표결에 참여한 가운데 공익 위원 안인 6030원이 결정된 바 있다.

'노동계 불참 표결' 시나리오는 최근 부쩍 잦기는 하지만 헌법에 따른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1988년부터 꾸준했다(☞관련 기사: 정부의 뜻 헤아리는 최저임금 '공익 위원'? ). 안타깝게도 2017년 최저임금 역시 오는 11일부터 11차 전원회의가 예정된 가운데 결국 이런 시나리오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은 반복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최저임금 심의 법정 시한을 넘긴 6월 29일부터 3일간 다음과 네이버에는 각각 6건, 3건의 최저임금 관련 톱 기사가 올라왔고 댓글이 달렸다. 생활 경제에 민감한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주갤)도 민첩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주갤 45.8%, 다음 45.8%, 네이버 8.4%씩 메시지(댓글+게시물) 총 832건을 수집해 의미망 분석을 실시했다. 동등한 비율로 할당하고자 했으나 네이버는 최저임금 톱 기사를 메인에 올리지 않아 수집 가능한 메시지가 비교적 적은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다음·네이버·주갤 공통 반응, '기업'은 왜 '욕설'과 연결됐나?

의미망 중앙의 빨간색 키워드들은 다음·네이버·주갤의 공통 반응이다. 이슈에 걸맞은 '최저' '임금(시급)'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세 번째는 뭘까. 다름 아닌 '욕설'들이었다. 세 커뮤니티 모두 욕설의 향연이 펼쳐졌다. 욕설은 종류도 변형태도 많아 프로그램이 완벽히 분류할 수 없고 포털은 욕설 제한이 있는 데도 이 정도였다. 누리꾼들이 거친 언어생활을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누구나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럼 네 번째는? '기업'이다. 흥미롭게도 '욕설'과 '기업'은 자주 연결됐다. 팍팍한 삶의 원인을 공정한 분배는 하지 않고 생산성만 뽑아내려는 '기업'으로 지목하고 공분을 느끼는 경향이 도드라졌다. 특히 주갤에는 경영계의 최저임금 '동결' 안이 공개됐는데 해당 문서에는 "노동생산성 측면에서 현 최저임금은 매우 '과도'한 '수준'"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자 주갤러들은 "이맛헬('이맛'에 '헬조선')"을 외치기도 했다.

① 크기가 클수록 누리꾼들이 자주 언급한 키워드. ② 선의 굵기가 굵을수록 함께 언급된 경우가 많음. ③ 빨강(다음+네이버+주갤), 보라(다음+주갤), 연두(다음+네이버), 주황(다음), 파랑(주갤) 등으로 커뮤니티별 공동 반응/단독 반응.
 ① 크기가 클수록 누리꾼들이 자주 언급한 키워드. ② 선의 굵기가 굵을수록 함께 언급된 경우가 많음. ③ 빨강(다음+네이버+주갤), 보라(다음+주갤), 연두(다음+네이버), 주황(다음), 파랑(주갤) 등으로 커뮤니티별 공동 반응/단독 반응.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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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는 미혼·단신노동자가 103만 원이면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계청이 조사한(2016) 도시 1인 가구 월 지출액은 188만 원, 최저임금위원회 스스로 조사한(2015) 1인 가구 월 생계비는 150만 원이다. 누리꾼들이 경영계 주장에 공감하기 힘든 것도 실제 생활비와 괴리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경영계의 주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건 아니다.

경영계는 "영세·중소 기업 생존, 근로자 고용 안정 도모"와 "최저임금 미만율 5% 달성"을 위해 동결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이 진정성이 있는지와 상관없이 다음, 네이버, 주갤도 최저임금(시급)을 '10000원'으로 올리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거나 얼마만큼 올려야 적정한지 가늠해보는 반응이 많았다.

'인상'의 필요성을 대체로 긍정하든(다음+주갤), 총선 때 앞다퉈 최저임금 인상 '공약'을 내세웠지만 조용한 '국회' '의원'들에게 분노를 드러내든(다음+네이버), 결국 현실을 고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자영업' 입장에서 최저임금이 부담스럽다는 지적, 청년들을 먹고 살게는 해줘야 '소비'가 활성화된다며 멀리 보자는 상반된 주장이 공존했다.

또한 최저임금을 준수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한 자영업 난립이 경제의 악순환을 낳는다며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는 주장도 있었다. 반면 최저임금이 오르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알바'만 할 거라는 추측, 대기업과 자영업은 최저임금 기준을 다르게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저임금은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이슈다.

문제의 본질은 과연 '물가'인가?

한편 좀 더 근본적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제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물가'다. 물가 상승률에 최저임금 인상률을 맞추자는 쪽이든, 최저임금을 인상하지 말고 물가를(가끔 '세금'을) 낮추자는 쪽이든, 알바든 자영업자든 모두 먹고살아야 하므로 소비자라는 이중 신분을 갖는다. 높은 물가의 주범은 '기업'이 지목됐다.

물가 결정의 주도권이 대기업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을 향해 유류비가 떨어졌는데 물가는 낮추지 않는다, 임금 동결하고 물가는 올리려 한다 등의 지적이 나온 이유다. 다음 누리꾼들은 높은 물가 자체에 분노하는 쪽에 가까웠고, 주갤러들은 최저임금 변동이 물가에 미칠 영향을 놓고 논쟁하는 모습을 보였다.

커뮤니티별로 독특한 성향이 나타났지만 공통적으로 '기업'과 '정부'를 향한 '욕설'이 도드라졌다.
 커뮤니티별로 독특한 성향이 나타났지만 공통적으로 '기업'과 '정부'를 향한 '욕설'이 도드라졌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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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갤에서는 알바 시급이 오르면 구직자가 알바로 몰려 기업도 임금을 올려야 하고 인건비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리라는 예측이 나왔다. 반대로 '헬조선' 기업은 인건비 비중이 높지 않고 이미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상여금을 깎고 포괄임금제를 적용해 퉁치는 배짱을 부리니 물가 상승에 거의 영향이 없으리라는 반론 등도 나왔다.

그러나 각자 불확실한 추측에 기대고 있고 임금을 얼마나 올리는 게 적정할지 견해도 천차만별이다. 결국 정보가 부족한 대중의 입장에서는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 실제로 최저임금위원회는 박준성 위원장의 방침 하에 철저한 '비밀주의'를 유지한다. 회의록은 공개하지만 요약된 형태로만 공개하므로 위원들이 정확히 어떤 근거로 안을 내세우는지 불투명하다.

단, 통계적 기준을 넘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음, 네이버, 주갤 모두 한목소리로 누리꾼들 입장에서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됐다. 자영업 입장에서 '임대료(월세)'를 물가의 진짜 원인으로 지목하고 빨리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주갤은 알바 입장에서 현재 정해진 최저임금을 안 지키는 사업장부터 제대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이러한 일련의 시장 실패에 대한 분노들은 결국 '정부' 책임론으로 향했다(욕설-정부).

정치권에 대한 분노로까지 확대되는 경향은 포털에서만 두드러졌다. 다음 누리꾼들은 '욕설'과 함께 '개누리'라는 말을 많이 썼다(더민주도 가끔 언급됐지만 통계적 기준을 넘지 못 했다). '새누리'도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기로 '공약'했는데 '총선' 끝나니 결국 태도를 또 바꿨다는 식이다. 다음은 민주적 가치와 평등과 같은 이상에 대해 언급하는 키워드들도 자주 출현했다. 그럼 다음 누리꾼들이 대안으로 생각하는 정책은 뭘까?

흥미롭게도 '최고-임금'이라는 연결이 도드라졌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이른바 '살찐고양이법(최고임금법)'을 말하는 것이다. 최고임금법은 최저임금법과 연동해 경영자가 노동자보다 지나치게 과도한 몫을 분배 받지 못 하도록 상한선을 긋자는 거다. 물론 임금의 하한선, 상한선을 긋는 게 과연 좋은 결과만을 낳을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 철학이 있다. 어쩌면 최저임금(하한선), 최고임금(상한선), 물가 모두 본질이 아닐지 모른다. 연재 2편에서는 심 의원이 제안한 최고임금법을 분석해 더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보도록 하겠다. 단서는 한 누리꾼의 다음과 같은 메시지다.

"재벌의 이익 배당부터 투명하게 하고 과도한 수입부터 쳐내라 그게 서로가 사는 길이다."


태그:#최저임금, #최저시급, #헬조선, #살찐고양이법,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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