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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가 5월 26일부터 열린 고래축제에 앞서 장생포 지역의 고래고기 음식점마다 고유 번호판을 제작·부착했다. 이에 울산환경운동연합이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고래 고기가 시중에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것을 더 부추길 것이 뻔하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울산 남구가 5월 26일부터 열린 고래축제에 앞서 장생포 지역의 고래고기 음식점마다 고유 번호판을 제작·부착했다. 이에 울산환경운동연합이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고래 고기가 시중에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것을 더 부추길 것이 뻔하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 울산 남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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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래잡이와 고래고기 문화를 지적하는 기사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홈페이지에 실리면서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다(새누리당 의원들, 멸종 위기 고래 잡아 '먹자파티?').

멸종위기종으로 포경이 금지된 고래가 공공연히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외국의 동물보호가들 눈에는 충격으로 다가왔을법 하다. 하지만 이 같은 고래고기 불법 유통은 고래고기 시장이 가장 큰 울산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공공연한 사실로 여겨져 왔다.

해경에 적발된 고래 불법 포획 소식은 해마다 언론을 장식한다. 하지만 잊을만 하면 어김없이 또 다른 고래 불법 포획·유통 소식이 전해지곤 한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고래고기 최고 유통지인 울산의 각계로부터 의견을 들었다.

불법 포획되는 고래고기의 유통 실태

동물보호·환경단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대형고래인 밍크고래의 연간 소비량을 240마리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경이 고래유통증명서를 발급해 적법하게 유통되는 밍크고래는 80마리 안팎에 그치는 실정이다.

올해 '울산고래축제' 개막일(5월 26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25일, 경찰이 밍크고래 불법포획 유통업자 및 식당업주 검거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이 4월 6일 새벽 울산 북구 냉동창고를 덮쳤을 때 냉동창고에 보관 중이던 밍크고래가 자그마치 27톤(밍크고래 40마리 상당, 시가 40억 원 상당)에 달했다(관련기사 : 고래축제 앞두고 불법포획 밍크고래 40마리분 적발).

적발된 사람은 해상 운반선 선장, 중간 연락책, 판매 총책, 육상 운반책, 식당업주 등이다. 결국 고래고기가 불법으로 포획되고 판매되는 과정에는 서로 상생하는 연결고리의 커넥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것이다.

이 커넥션은 결국 상당한 이권을 챙기는 데서 시작된다. 고래고기는 1kg당 15만 원 정도로 판매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경찰발표), 울산지역 고래고기 호식가들은 실제로는 가격이 몇 배 이상 훨씬 부풀려져 판매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래축제 때 고래고기 시식회를 열면서 물의를 빚은 바 있는 울산 남구청 위생과에 따르면 남구 지역에는 장생포 특구 15곳을 비롯해 20여 곳의 고래고기 전문점이 등록돼 있다. 고래고기가 남구의 특산물인 점을 감안하면 울산 5개 구군 통틀어 등록된 고래고기 전문점은 50여 곳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고래고기 호식가들은 고래고기를 전문으로 하지는 않지만 여러 메뉴 가운데 고래고기도 포함해 판매하는 곳이 많다고 말한다. 이곳 역시 고래고기는 비싼 가격으로 소비된다.

한 호식가는 "만일 지금 울산의 냉동창고에 있는 고래고기가 정상적으로 판매되면 고래고기 가격은 절반 이하로 낮아질 것"이라며 "아마 큰 손들이 물량을 조절해가면서 고래고기 가격을 부풀리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호식가의 말처럼 이 같은 고래고기 불법 유통에는 이른바 '큰 손'이 정점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울산에는 서너 명의 고래고기 큰 손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주와 짜고 불법 포획한 고래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큰 손들은 중간 유통책을 통해 때마다 식당에 판매한다고 전해진다.

호식가는 왜 '불법유통'인 것을 알면서도 고래고기를 찾을까

내셔널 지오그래픽 6월 16일자에 <(한국에서) 고래들은 어떻게 '우연히' 의도적으로 포획되는가>라는 기사가 실렸다
▲ 내셔널 지오그래픽 홈페이지에 실린 한국의 고래고기 내셔널 지오그래픽 6월 16일자에 <(한국에서) 고래들은 어떻게 '우연히' 의도적으로 포획되는가>라는 기사가 실렸다
ⓒ 핫핑크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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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고래고기 호식가들이 '내가 먹는 고래가 불법으로 잡은 것이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래고기를 먹는다는 것. 울산지역 한 고래고기 호식가는 "고래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치고 '이 고래가 불법이 아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고래고기를 먹을까? 호식가들은 "고래가 불포화 지방산인데다 콜라겐이 많아 스태미너와 피부미용에 좋다"고 입을 모은다. 자신의 보신 앞에서는 멸종위기종이 불법 유통됐다는 것쯤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울산 사람들이 고래고기를 즐겨먹는 데는 지역적인 문제도 작용한다. 울산 남구 장생포는 과거 '고래고기 전진기지'로 유명했고,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상업 포경을 금지한 1986년까지 고래고기는 울산지역 토박이들의 주요 먹거리였다.

남구 장생포와 방어진(울산 동구 항구)에서 자란 사람들은 "학창시절인 1980년대 초에는 고래고기를 간식처럼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과거에는 포경한 고래가 많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결국 이 같은 고래 남획은 고래를 멸종위기종에 이르게 한 지름길이 된 것이다. 일부 토착민들은 어려서부터 먹어온 고래고기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고, 이는 불법유통되고 가격이 비싼 데도 즐겨 찾는 이유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같은 불법 고래고기 유통과 식습관을 부추기는 것은 사회지도층과 관할 지자체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다는 지적이 있다.  

우선, 해마다 고래축제를 여는 울산 남구청은 동물보호단체의 반발에도 행사장에서 버젓이 고래고기 무료시식회를 열거나 판매를 허용하면서 고래고기 식습관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올해 고래축제 무료시식회 때는 고래고기 전문점에서 번갈아가면 식단을 맡았는데, 울산지역 유명 식당인 한 고래비빔밥 전문점 직원이 식당명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시민들에게 고래비빔밥을 나눠주는 모습이 목격됐다. 지자체가 고래고기식당을 홍보하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그렇다면 남구청은 왜 논란을 빚으면서까지 고래시식회를 열었을까? 동물보호단체의 지적과는 달리 남구청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남구청 위생과측은 "지역의 식생활문화를 스토리텔링화 하기 위해 지난 2011년 '고래밥'을 상표등록했고 이를 홍보하는 것"이라며 "고래밥에는 고래고기가 들어가는 메뉴도 있지만 고래가 즐겨먹는 해초를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멸종위기종인 고래를 보호해야 할 지자체가 오히려 고래고기를 홍보했다는 측면에서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불법 고래고기가 끊임없이 유통되는 데는 특히 지역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크다는 점이다. 울산의 일부 지자체장과 역대 유력 정치인들이 대부분이 고래고기 애호가였고, 이들이 각종 모임에서 고래고기를 찾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모범이 되어야 할 지도층이 오히려 멸종위기인 고래고기를 즐겨 찾으면서 불법 포획과 불법유통을 부추기고, 지역의 기득권을 중심으로 고래고기 식습관이 지역문화로 자리잡는 데 기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태그:#울산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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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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