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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한국 가면 고생한다"는 농담이 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리베이트"란 단어다. 영어로 rebate라고 쓰는데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의 하나다.

아래 첨부한 사진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지만, rebate는 상품을 많이 팔기 위해 상인이나 상품 제조업체가 소비자가 낸 상품가격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것을 가리킨다. 즉석 rebate는 discount(디스카운트/할인)와 같지만, 구매 후 나중에 우편으로 물건 값의 일부를 되돌려 주는 rebate도 있다. 또 국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국민이 낸 세금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것도 rebate라 한다. 그러므로 리베이트는 합법적 일부 환불이고 아주 좋은 것이다.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상인들이 "리베이트"를 제공한다고 선전하는 광고들.
▲ 리베이트: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상인들이 "리베이트"를 제공한다고 선전하는 광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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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좋은 리베이트가 한국에서는 '뇌물성 환불'이란 뜻으로 둔갑하여 사용되고 있다.  필자가 이런 사실을 처음 지적한 것이 13년 전쯤이고 그 후 거의 매년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제발 리베이트란 말을 그런 나쁜 뜻으로 쓰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뒷돈'이라고 쓰면 된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환불 리베이트를 범죄로 잘못 알고 있는 한국 정치인(MBC 화면)
▲ 리베이트사건? 정당하고 합법적인 환불 리베이트를 범죄로 잘못 알고 있는 한국 정치인(MBC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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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한국 신문과 방송에는 국민의당이 선거홍보물 제작업자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기" 때문에 검찰이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입건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가 거의 매일 나오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 보도를 보면 고발자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와 수사하는 검찰, 그리고 피의자인 국민의당 사람들이 모두 리베이트란 말을 쓰고 있고, 보도하는 기자들도 리베이트란 말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른바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의 핵심은 대충 이렇다.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 때 선거홍보물 제작비로 약 21억 원을 사용했으니 법에 따라 국가가 이 금액을 보충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21억 원은 정당한 가격이 아니고 약 5억 원이 부풀려진 것이라고 단정하고 약 16억 원만 국민의당에 주었다. 이런 사실을 보도한 한 신문 기사를 보자.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공보물을 직접 인쇄한 업체(비컴) 관계자로부터 '왕주현 국민의당 사무부총장이 단가 부풀리기를 통한 리베이트를 요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며 박선숙 당시 사무총장은 이 같은 과정을 왕 부총장에게 지시하고 보고받았다는 제보자 진술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진술을 검찰에 낸 고발장에 모두 적시했다"며 국민의당 측에서 요구한 리베이트 금액이 2억 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진상조사단장인 이상돈 의원은 15일 '국민의당으로 돈이 유입된 흔적이 없다'며 리베이트 의혹을 부인했다."

선관위와 조사 대상인 국민의당 관련자들 모두 리베이트를 뇌물성 일부환불이란 뜻으로 썼고 기자들은 그것을 그대로 전한 것이다. 한국에서 잘못 쓰고 있는 리베이트 즉, 불법적이고 뇌물성인 일부환불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따로 있다. 바로 '킥백'(kickback)이다.

 제약사가 자기네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에게 킥백(뇌물성환불)을 주었다고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 기사 (왼쪽)과 군납업체가 미국 국방부 공무원들에게 킥백을 주었다는 기사 제목(가운데) 그리고 주택융자보험사가 고객을 몰아준 은행들에게 킥백을 주었다는 기사 메목(오른쪽).
▲ 킥백 제약사가 자기네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에게 킥백(뇌물성환불)을 주었다고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 기사 (왼쪽)과 군납업체가 미국 국방부 공무원들에게 킥백을 주었다는 기사 제목(가운데) 그리고 주택융자보험사가 고객을 몰아준 은행들에게 킥백을 주었다는 기사 메목(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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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그대로 돈을 받은 사람이 받은 돈의 일부를 돈 준 사람에게 "옛다 너도 좀 먹어라"하고 경멸적으로 발로 차서 준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킥백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뒷돈'이다. 그런데 이 좋은 우리말 놔두고 영어, 그것도 좋은 뜻의 환불 리베이트를 나쁜 뜻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법무부와 선관위까지 리베이트를 계속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에는 법무부 산하에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이란 것 까지 조직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당시 황교안 법무장관(현 국무총리)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엉터리 영어를 한국 정부가 사용하는 것은 망신스러울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국제적인 법률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시정하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황장관은 공감을 표시하고 시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도 검찰이 리베이트란 영어단어를 잘못 쓰고 있음이 위의 신문기사로 확인 되었다. 그 뿐인가, 한국의 대표적 한글사전에도 리베이트가 뇌물성 환불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지난 16일 필자는 인터넷에서 한국 3대 TV 저녁뉴스를 보았다. 모두 리베이트를 나쁜 뜻으로 쓰고 있었다. 그래서 화면에 뜬 KBS 기자의 이메일 주소로 리베이트를 쓰면 안 되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 때문인지 다음 날 6월 17일 밤 뉴스에는 리베이트란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같은 날 J일보 인터넷판에서 찾은 기자 3명의 이메일 주소로 리베이트 대신 정확한 단어 킥백을 쓰든지 순수한 우리말 뒷돈을 쓰라고 권고했으나 그들은 내 충고를 완전히 무시하고 다음날 신문에 계속해서 리베이트를 썼다.

뇌물성 환불을 합법적이고 정당한 환불을 뜻하는 리베이트로 잘못쓴 한국의 한 신문 기사.
▲ 잘못 쓴 용어 "리베이트" 뇌물성 환불을 합법적이고 정당한 환불을 뜻하는 리베이트로 잘못쓴 한국의 한 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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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른 신문과 방송도 잘못된 용어 리베이트를 쓴 건 다 똑같다.

만일 국민의당이 서울에 있는 미국인 변호사를 고용하여 한국 검찰에게 "리베이트는 분명 영어다, 영어 리베이트는 합법적이고 좋은 일부 환불이란 뜻이다, 그런데 한국검찰과 언론이 국민의당이 업자로부터 받은 돈을 리베이트라고 한다, 그러므로 "국민의당은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하면 뭐라고 대꾸할 건가? 

잘못된 것은 고치는 게 지식인의 태도다. 틀린 줄 알면서도 계속 쓴다는 건 치졸한 짓이다. 매년 영어교육에 몇 조원을 쓴다는 대한민국에서 리베이트와 킥백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 많은 영문학 교수들, 그 많은 통역사들, 그 많은 영자신문 기자들과 미국주재 특파원들은 다 어디 가고 리베이트란 좋은 단어를 아주 나쁜 뜻으로 계속 쓰고 있으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조화유 기자는 미국거주 소설가이며 영어회화교재 저술가 입니다.



태그:#리베이트, #킥백, #국민의당, #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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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후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 중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흉일"당선. 미국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 역사학과 연구조교로 유학, 한국과 미국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사 연구 후 미국에 정착,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을 출판. 중국, 일본서도 번역출간됨. 소설집 "전쟁과 사랑" 등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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