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따지다보면 아무 것도 못 해. 무조건 저지르고 보는 거야.'

덜컥 돈부터 입금했다. 제주도에서 보름 이상 살 수 있다는데,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제주도에 사는 어떤 사람이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집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그래도 17일 동안 독채를 전세로 사용하는 가격치고는 헐했다. 그래서 다짜고짜 내가 쓰겠다고 연락을 하고는 내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돈부터 입금했던 것이다.

제주도에서 살아 보기

 제주도의 색깔, 검정과 파랑.

제주도의 색깔, 검정과 파랑. ⓒ 이승숙


'제주도에서 살아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아예 거처를 옮겨 이사를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신기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쉽게 거처를 옮길 수 있는 조건의 사람들일 테고, 우리처럼 붙박이로 한 곳에 머물러 사는, 소위 정착민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의식 한 편에서도 유목민처럼 떠돌며 살고 싶다는 꿈이 자라고 있었나 보다. 그러니 이렇게 무모하다 싶은 '제주도 살이'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제주도에서 살아볼 수 있다는 설렘은 얼마 안 가 고민거리가 되었다. 좋았던 것은 잠깐이었고 걱정이 나를 내리눌렀다. 남편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내 마음대로 일을 저절렀던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니 남편과 의논해서 일을 진행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보나마나 남편이 반대할 게 뻔했다. 집을 놔두고, 그것도 남편과 함께도 아닌, 마누라 혼자서 보름 이상 제주도에서 지낸다는데 좋다구나 찬성해줄 턱이 없었다.

그는 보통의 양식과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을 따라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런 그에게 제주에서 혼자 살아보겠다는 아내의 말은 낯설기만 할 것이다. 나중에 퇴직을 하면 그때 둘이서 좋은 곳에 가서 몇개 월씩 살아보자는 말은 늘 했었지만 그것은 지금 현재가 아닌 미래의 일이고, 더군다나 혼자가 아닌 둘이 같이 하는 계획이었다. 남편은 당혹감과 함께 배신감까지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마침 핑곗거리도 있었다.

요즘 나는 그동안 써놓았던 글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올 가을까지는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집에서는 잘 되지가 않는다. 이렇게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다가는 영영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든다. 그러던 차에 제주도행이 나왔으니, 얼싸 좋구나 하고 일을 저질렀다. 분위기 전환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집 놔두고 낯선 곳으로…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즉 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즉 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 Filmax Entertainment


그날 저녁에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내게 통박을 준다.

"아니,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집 놔두고 뭐 하러 남의 집에서 지낸다는 거야? 집에서 안 되던 글이 제주도에 간다고 될까? 그리고 당신 혼자서 지낸다고? 말도 안 돼."

마지막 "말도 안 돼"라는 말은 실제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남편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아, 일은 저질러 놓았는데 수습할 일이 태산이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집부터 얻어놓았으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온갖 궁리를 하느라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그러던 차에 강화 동검도에 있는 예술영화관에서 <산티아고 가는 길>이란 제목의 영화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산티아고라면 순례자의 길로 유명한 스페인의 그 길이 아니던가. 치유와 소통의 길로 널리 알려진 산티아고 길은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이름난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아들이 못다 걸은 길을 대신 걸은 아버지, 그러나 그 길은 자신의 길이었다.

아들이 못다 걸은 길을 대신 걸은 아버지, 그러나 그 길은 자신의 길이었다. ⓒ Filmax Entertainment


길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꾼다. 최근에 내가 아는 한 분도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그 길을 한 달 동안 걷고 왔다. 직장에서 퇴직을 하자마자 오래 준비해왔던 그 길을 마침내 걸었다고 했다. 5년 동안 준비해 왔던 길을 걷고 온 그 분의 얼굴과 목소리는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빛이 났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이 영화의 원 제목은 <The Way>다. <지옥의 묵시록>이란 영화에서 '윌러드 대위'로 나왔던 마틴 쉰이 주연을 한 이 영화는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했고,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이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안과 의사인 '톰'은 버클리대학 박사 과정을 하다가 그만둔 아들이 못마땅하다. 아들은 학교보다는 길에서 배움을 얻겠다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다. 그는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 아들의 사망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스페인으로 날아갔고, 도대체 '카미노'가 무엇이길래 죽을지도 모르는 그 길을 아들이 걸었는지 알고 싶어 유품으로 남아있는 아들의 배낭을 메고 순례길에 들어선다.

꿈을 이루려면 꿈부터 꾸어야

 '강화나들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강화나들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 이승숙


장장 80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길을, 걸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걷는다. 매일 25킬로미터 정도를 한 달 동안 걸어야 하는 길이다. 그러자면 순례에 나서기에 앞서 여러 달 혹은 여러 해에 걸쳐 걷기에 최적화된 몸을 만들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길에 대한 꿈도 꾸어야 한다. 기다리고 갈망하며 꿈을 키우는 것이 곧 산티아고를 향한 준비일 것이다.

톰은 그 어느 것 하나 준비된 게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여정은 안 봐도 환히 알 수 있다. 다리가 아프고 몸이 힘든 것 이상으로 마음의 갈등도 많았을 것이다. 왜 아들은 이 길을 걸으려고 했을까, 이 길의 무엇이 아들을 불렀던 것일까. 톰을 괴롭히는 것들은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길이 아닌 아들의 길을 대신 걷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인 것이다. 시작은 아들이 걷고자 했던 길을 따라서 가는 걸음이었지만, 결국 톰은 자신의 길을 걷는다. 그 길은 아들을 알아가는 여정이기도 했고 종래에는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 되었다.

길을 걸으면서 언뜻언뜻 세상을 떠난 아들과 마주친다. 바다를 앞둔 길의 끝에서 마침내 아들과 만난다. 아들이 못다 걸었던 길을 대신 걸었지만 그것은 아들의 길이 아니라 아버지 톰의 길이었다.

삶은 각자 선택하는 것이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선택하고 걷는다. 어떤 이의 삶만이 최고이고 최선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선택한 그 길은 각자에게는 최선의 길이고 또 최고의 길인 것이다. 톰이 살아온 인생의 궤적이 톰에게 최선이었듯이 아들이 선택한 길 역시 그에게는 최선이었고 최고였다. 어쩌면 아버지인 톰은 그것을 느낀 것이 아닐까.

나의 산티아고를 찾아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길을 걷는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길을 걷는다. ⓒ 박광은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옳다 그르다는 것도 결국은 내가 일으키는 생각일 뿐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맞고 옳은 것이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다를 수도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톰은 아들이 택했던 삶의 방식, 곧 성공이 보장된 길을 버리고 자신만의 행로를 찾아 떠났던 것 역시 그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비로소 톰은 아들과 진정으로 만날 수 있었고, 아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보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무엇일까?', '나를 꿈꾸게 하고 설레게 하는 것은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제주도에서 보름 동안 혼자 살아보기는 나의 산티아고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순간적인 마음으로 선택했지만 그것은 오래 전부터 꿈꾸었던 일일 수도 있다. 가정의 주부로서만이 아닌 나 자신으로 서고 싶다는 소망이 어쩌면 나의 산티아고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미 '나의 산티아고 길'에 들어섰는지도 모르겠다. 그 길의 끝에 서면 나는 무엇을 보고 또 얻을 수 있을까.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혼자 보름간 살아보는 일은 그러므로 나의 '산티아고 데 카미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관을 빠져 나왔다.

제주도 산티아고 가는 길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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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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