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늘에서 본 장흥> 중.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드론 촬영
 <하늘에서 본 장흥> 중.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드론 촬영
ⓒ 마동욱

관련사진보기


총 448쪽 책 안에 장흥군 소재 마을 300여군데를 몽땅 담았다.<하늘에서 본 장흥>(마동욱/눈빛출판사·2016) 사진집이다.

쌍둥이처럼 같이 낸 사진집 <고향의 사계>(마동욱/눈빛출판사·2016)는 총 256쪽에 걸쳐 장흥의 네 계절을 기록했다. 전남 장흥의 산·들·강·바다와 봄·여름·가을·겨울을 종횡으로 짝지어 놓은 책이다.

좋은 사진은 대상을 정직하게 담아내는 것

마동욱 사진작가는 동향 선배이다. 대략 15년 전부터 그의 사진 작업을 지켜 보았다. 작업 결과는 늘 책으로 나왔고 나는 그 책의 첫 번째 독자가 되는 행운을 누렸다. 마 작가는 지금까지 총 9권의 사진집을 내 놓았고 그 중 6권이 고향 장흥에 관한 것이다.

사진을 배워 보겠다고 그의 꽁무니를 두어 해 정도 따라 다녔다. 여의치 않았다. 기술 익히기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부지런해야 했다. 많이 싸돌아다녀야 했고 기다려 주는 법이 없는 빛의 시간에 몸을 맞춰야 했다. 게으른 나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아주 '조금' 배운게 헛되지만은 않았다. 두 가지 가르침을 얻었다.

마 작가는 "목수는 연장탓 않는다"는 통상의 격언을 강조하곤 했다. 과연 그럴까. 사양이 더 좋은 그의 카메라와 한 단계 아래인 내 것을 바꿔 찍어 보았으나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그의 사진은 좋았고 내 사진은 엉망이었다.

그는 또 "잔재주 부리지 말아라, 차렷 하고 찍은 초딩 소풍 때 사진이 마지막까지 남는다"며 '기술'을 궁금해 하는 나를 여러 차례 나무랐다. 음식으로 치면 '조미료'의 남용을 그는 경계했고, 어느 때부터는 아예 그것들을 버린 듯했다.

두 가르침을 종합하면, 카메라 종류에 상관없이 대상을 그저 정직하게 담으면 그것이 '좋은 사진'이라는 것이었다. 단, 부지런히 자주 찍어야 한다. 그래야 카메라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고 대상을 특별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가 이해하는 그의 가르침이다.

<하늘에서 본 장흥> 장흥군 유치면 장흥댐. 드론 촬영
 <하늘에서 본 장흥> 장흥군 유치면 장흥댐. 드론 촬영
ⓒ 마동욱

관련사진보기


드론으로 촬영한 고향의 봄여름가을겨울 

마 작가가 이번에 낸 두 권의 책 속 사진은 모두 '드론'이 날아 올라 찍은 것이다. 그의 유일한 '연장 탓'은 카메라에 날개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을을 기록하기 위해 그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산에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죽지도 못하고 돌덩이를 밀어 올리는 시지푸스가 따로 없었다. 역부족이었다.

산에 올라 셔터를 누르려 치면, 산은 지나치게 높거나 너무 낮았다. 맞춤하다 싶을 때는 울창한 숲이 가로 막았고, 앞이 트여 있는 경우에는 앵글이 맞지 않았다. 농업용 헬기를 띄운 적도 있었다. 비용 감당이 어려울뿐 아니라 무선 장비를 따로 마련해야 했다.

사라져 가는, 혹은 쇠락해 가는 마을을 기록하려는 그에게 드론은 구세주와 같았다. 대략 2년 동안 고가의 팬텀드론 3대를 추락시키고 난 결과 두 권의 책을 완성했다. 책 속에 담긴 사진들은 '차렷' 하고 찍은 사진처럼 평범하다. 날개를 달았을 뿐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는 유별난 게 아니었다.

평범하다는 말이 나왔으니, 애당초 마작가가 '기술'을 잘 모르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 그렇지 않다.

조명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스튜디오에서나 이용하는 원판카메라를 야외에서 '똑딱이'처럼 찍어도 그는 좋은 사진을 얻었다. 맨 눈으로 주변을 둘러 보고 나서 '필름감도:조리개값:셔터속도'의 상대적인 수치를 전기노출계와 정확히 일치시켜 버리는 그였다.

마 작가의 유려한 '기술'은 <그리운 사람은 기차를 타고 온다>(다지리·2000)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동향의 후배인 이대흠 시인이 쓰고 마 작가가 사진을 보탰다. 땡볕 쨍쨍한 여름에 약 한 달 동안 목포에서 문산까지 철길을 걸으며 그곳의 풍경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책이다.

재빠르게 지나가는 기차, 바싹 엎드려 있는 철로변 들꽃들, 철길에서 한 발자욱만 멀어져도 수렁이거나 낭떠러지이거나 산비탈인 조건에서 마 작가는 셔터를 눌렀다. LCD모니터로 확인할 수도 없는 '필름카메라'였다. 양지와 음지의 광량이 극단적인 한 여름에 찰나의 판단으로 노출과 앵글을 결정해야만 했다. 그 악조건에서 그는 '그림 좋은' 사진을 무더기로 건져냈다.

<고향의 사계>. 장흥군 안양면 청송리의 겨울. 드론 촬영
 <고향의 사계>. 장흥군 안양면 청송리의 겨울. 드론 촬영
ⓒ 마동욱

관련사진보기


수억년의 사연들을 그대로 전해주는 간결과 여백의 미

장르가 무엇이든, 경륜의 나이테가 촘촘하고 두꺼울수록 작품은 간결하기 마련이다. 시도, 소설도, 그림도 대개는 그렇다. 마작가가 이번에 내 놓은 두 권의 사진집에서 나는 간결함의 아름다움을 확인한다.

간결하다는 건 여백이 많다는 것이고, 여백이 많다는 건 독자가 걸어 들어가 작품과 놀 수 있는 관용의 공간이 넓게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마 작가는 새처럼 날아 올라 고향의 마을을 '무심하게' 응시했다.

무심함은 또한 고향마을에 대한 무한한 경외의 표현이다. 마을이 담고 있을 천만 갈래의 이야기, 마을을 에워싼 들과 산과 강과 바다와 바람과 먼지들이 품고 있는 수억년의 사연들을 그는 '기술'로 건드리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겸양의 태도가 평범하고 무심한 관용의 여백을 창출한 셈이다.

<하늘에서 본 장흥> 장흥군 안양면 청송리의 겨울. 드론 촬영
 <하늘에서 본 장흥> 장흥군 안양면 청송리의 겨울. 드론 촬영
ⓒ 마동욱

관련사진보기


그럼에도 아쉬움은 있다. 마을 안쪽에 흐르고 있는 골목과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무리 무심한 사진이더라도 기하학적 문양으로 가득한 마을들의 풍경은 만남의 욕망을 자연스레 일깨운다. 사진 자체가 다이내믹한 <고향의 사계>보다 상대적으로 '차렷' 자세가 가지런한 <하늘에서 본 장흥>이 그 욕망을 더 강렬하게 부추긴다.

이 대목에서 마 작가는 탁월한 전략을 구사했다. 지역신문 '마실가자' 편집인인 문충선의 현장 취재글을 <하늘에서 본 장흥>의 군데 군데에 배치한 것이다. 더없이 따뜻하고 질박하며 사실에 충실한 문충선의 글은 사진의 태도를 흩트리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욕망을 해소시키는 '신의 한 수'로 기능하고 있다.

마동욱 작가, 문충선 편집인 같은 고향지킴이가 있다는 건 떠나온 이들에게는 과분한 축복이다. 깊이 감사 드린다. 축복에 보답할 아무런 약속도 못하면서, 떠나온 나는 두 분이 또 다른 '고향기획'을 추진했으면 좋겠다. 염치없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드는 바람이다.

오는 6월15일(수)~21(화)일까지 <하늘에서 본 장흥>과 <고향의 사계> 사진전시회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갤러리에서 열린다. 문의전화: 02-734-7555.


태그:#마동욱, #사진전, #장흥, #하늘에서본장흥, #고향의사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