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특하고 독하게 영화 속의 메시지를 읽고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청년의 통통 튀는 감성을 담아 표현하고 소통하겠습니다. [편집자말]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오고 갔다. 어떤 이들은 여성혐오를 하지 말자는 추모행진을 진행하기도 하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지 말라며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핑크색 코끼리 탈을 뒤집어쓰고 "육식동물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동물이 나쁜 겁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주토피아>를 다시 본 이유는 "육식동물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동물이 나쁜 것"이라 말한 사람 때문이다. 내가 본 <주토피아>는 범죄를 저지르는 동물이 나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평화로운 꿈의 도시 주토피아?

 이 도시에서는 육식동물이나 초식동물 할 것 없이 모두가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디가 경찰의 꿈을 말하면서 가고 싶어하는 곳 역시 바로 이 '주토피아'이다.

이 도시에서는 육식동물이나 초식동물 할 것 없이 모두가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디가 경찰의 꿈을 말하면서 가고 싶어하는 곳 역시 바로 이 '주토피아'이다.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누구나 꿈꾸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주토피아. 이 도시에서는 육식동물이나 초식동물 모두 공존하며 살아간다. 주인공 토끼인 주디가 경찰이 되고 싶다며, 가고 싶다고 한 곳 역시 '주토피아'다. 주토피아는 누구나 연상할 수 있듯 토머스 모어가 만든 유토피아(UTOPIA)에 동물원(ZOO)을 결합한 이름이다. U에는 '없다'와 '좋은'이라는 뜻이 포함돼있고, TOPIA에는 '장소'라는 뜻이 담겼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과 좋은 곳이라는 이중의 뜻을 품고 있다. 여기에 ZOO가 붙었으니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동물 지상낙원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잡아먹힐 걱정도 할 필요 없고, 토끼도 경찰이 될 수 있으니 주토피아라는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

하지만 주토피아는 겉에서는 꿈의 도시일지 몰라도, 그 내면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단지 여우라는 이유로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겠다며 쫓아내거나, 주디가 수석으로 경찰학교를 졸업했음에도 제대로 된 경찰 임무를 주지 않고 주차단속을 시키는 일은 사소하게 느껴지지만 차별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일이다. 닉은 여우라는 이유로 강제로 입에 재갈을 물었다. 고작 10%를 차지하는 맹수들은 초식동물들이 약하고 작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초식동물들은 맹수들이 위험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어쩌면 감독은 유토피아의 U에서 '좋은'의 의미보다 '없는'이라는 의미로 관객들을 이끄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결국 관객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주토피아의 위선적인 실상이 만들어낸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동물이 평화롭다고 믿고 있었던 꿈의 도시에서 발생한 사건이기에 충격은 더 크다.

범죄를 저지른 동물들만 나쁜가

 "많은 동물들이 꿈을 이루려고 주토피아에 오고 있어.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해. 타고난 것은 못 바꾸니까. 여우는 교활하고 토끼는 멍청하지."

"많은 동물들이 꿈을 이루려고 주토피아에 오고 있어.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해. 타고난 것은 못 바꾸니까. 여우는 교활하고 토끼는 멍청하지."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주토피아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렇다면 몇몇 사람들의 주장처럼 범죄를 저지른 동물들만 나쁜 걸까? 여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주디는 끈질긴 추적 끝에 포유류 실종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 기자회견장에서 실종된 포유류들이 야수로 변했고, 그들은 모두 맹수였으며 그들의 잠재된 사냥 본능이 이번 사건을 만들었다고 발표한다. 주디의 발언은 이후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다. 사람들은 맹수들을 더욱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동등한 동물로 보지 않는다. 여기까지 보면, 몇몇 사람들의 주장이 틀린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맹수들이 야수로 변해 다른 동물들을 공격한 것은 그들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이트하울러(밤의울음꾼)'라는 식물의 특이성분으로 인해 그렇게 변한 것이다. 주토피아에서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차별과 혐오가 범인의 동기였다. 과연 우리는 야수로 변한 동물들만 나쁘다고 할 수 있나. 수많은 차별과 혐오 끝에 범죄를 저지른 범인만 나쁘다고 할 수 있나.

<주토피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주토피아는 제대로 공존하지 못했던 우리를 조명한다. 결국,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 사회를 유지하고 있던 우리가 모두 이 사건의 공모자다. 만일 주디가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다면, 맹수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더 심해졌을 거고, 그로 인한 또 다른 복수극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교활한 여우와 멍청한 토끼

 과연 우리는 야수로 변한 동물들만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수많은 차별과 혐오 끝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된 범인에게만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주토피아>는 그렇지 않음을 이야기 한다. 주토피아라는 이름과 겉모습에만 집중하고 내면적으로는 제대로 공존하지 못했던 우리들을 조명한다.

과연 우리는 야수로 변한 동물들만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수많은 차별과 혐오 끝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된 범인에게만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주토피아>는 그렇지 않음을 이야기 한다. 주토피아라는 이름과 겉모습에만 집중하고 내면적으로는 제대로 공존하지 못했던 우리들을 조명한다.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많은 동물이 꿈을 이루려고 주토피아에 오고 있어.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해. 타고난 것은 못 바꾸니까. 여우는 교활하고 토끼는 멍청하지." 닉과 주디가 처음 만났을 때, 닉이 주디에게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각각의 동물들에게 씌워진 편견들은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주디에게 꿈을 접고 농사를 짓자던 사람들이 그랬고, 여우는 교활하다며 조심하라고 말하던 주디의 아빠가 그렇다. 토끼는 경찰이 될 수 없다며, '인생은 뮤지컬이 아니라'며, 포기하라던 서장도 마찬가지이다.

주디도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녀는 착한 여우가 있듯이 나쁜 토끼도 있다고 말하지만, 사냥본능으로 인해 맹수들이 야수로 변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주디 역시 맹수는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토피아>는 결국 권선징악을 이루고 모두가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결말로 끝맺는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닉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주디와,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고 자신의 상처를 이겨내며 함께 진실을 밝혀낸 닉. 그 둘의 모습은 서로 다를지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교활한 토끼와 멍청한 여우"라고 서로를 부르는 둘의 모습은 처음 만남과 대비되며, 그들이 편견의 벽을 뛰어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의 혐오와 차별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처럼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강남역 여성 살인을 겪고도 새벽 1시 이후에 여성들이 돌아다녔다는 보도나 가해자의 변명에 집중했던 언론들이 그렇고, 여성들이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그렇다.

<주토피아>에서 본 것처럼 차별과 혐오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을수록 당하는 사람들은 더 괴롭기 마련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시선들까지 더해지니 말이다. 분명 애니메이션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찾아보는 것은 현실이 그렇지 못하고, 또 이상을 이루려는 의지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주토피아 주디 강남역살인사건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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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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