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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릉군에 소재하고 있는 안용복 기념관
▲ 안용복기념관 경북 울릉군에 소재하고 있는 안용복 기념관
ⓒ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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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때 안용복이란 어부가 있었다. 그는 1693년(숙종 19년) 동래 어민들과 함께 울릉도에 고기를 잡으러 출항했다 일본인 어부들에게 납치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 조선은 태종 때부터 울릉도를 비롯한 많은 섬에 거주하고 있던 백성들을 모두 육지로 이주시키는 공도정책을 폈다.

광해군 때는 빈 섬에 일본인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지시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공도정책으로 인해 일본인들은 17세기 후반 60년 동안 울릉도 바다에서 자유롭게 조업을 했다. 안용복은 "울릉도는 조선의 땅"이라고 맞서다 일본인들에게 잡혀간 것이었다.

안용복에게 내려진 건 상 아닌 유배라는 형벌

일본으로 끌려간 안용복은 끌려간 일본인 도주에게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다시 한번 강하게 주장하며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도주는 안용복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에도막부에 이 사실을 보고하고 막부에서는 "앞으로 일본인은 더 이상 울릉도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금령까지 내렸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오던 길에 대마도 족장에게 다시 잡혀 구금되었고 어렵게 풀려난 안용복이 조선으로 돌아와 동래부사를 찾아가 사연을 말하자 동래부사는 영토 문제의 중요한 성과를 올린 그에게 상을 내리는 것이 아닌 '국경침범'을 이유로 곤장을 때리고 2년간 감옥에 넣었다.

2년 뒤 1696년(숙종 22년), 감옥에서 풀려난 안용복은 다시 울릉도로 향한다. 그는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을 실행했다. 그는 울릉도와 독도가 강원도에 속한 것을 보여주는 '조선팔도지도'등의 증빙자료와 물품을 마련했다.

그 해 1월 조선 조정과 일본막부를 대행한 대마도는 울릉도,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일본 어민의 어업활동을 금지하기로 결정했지만 안용복이 울릉도에 도착했을 때 여전히 일본인들은 예전처럼 조업을 하고 있었다. 안용복은 스스로 '울릉도 수포장'을 자처하며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도주에게 다시 한번 강하게 항의했다. 그런 다음 다시는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선으로 돌아온 안용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다시 가혹한 처벌이었다. 관리를 참칭하고 자발적으로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 때문에 죄는 더욱 무거워졌다. 그는 1696년 8월 양양에 도착했지만 현감에게 구금되었고 이후 탈출하였지만 그해 9월에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기에 이른다.

조정 대신들의 격론 끝에 결국 유배형으로 감형되었고 그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국가를 대신해 울릉도, 독도의 영유권을 확인하고 조업권을 확보한 민간인 어부의 희생에 조선 조정은 상 대신에 강한 처벌로 국가의 무능을 감추었던 것이다.

연평도 어민 불법 중국 어선 2척 직접 나포

연평도 어민들이 중국어선을 나포한 뒤 연평도항으로 끌고 온 다음 배에 승선해 불법조업한 어획물과 어구 등을 살펴보고 있다.
▲ 중국어선 연평도 어민들이 중국어선을 나포한 뒤 연평도항으로 끌고 온 다음 배에 승선해 불법조업한 어획물과 어구 등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제공 연평도어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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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연평도 어선 19척이 연평도 북방 약 1 km 지점에 있던 중국 어선 두 척을 나포해 연평도 항구로 돌아왔다. 연평도 어민들은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이 극심한 상황에서 분노를 참지 못해 이들 선박을 나포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포된 중국 어선에는 각종 해산물이 가득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하지만 인천해경은 우리 어민이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을 직접 나포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밝히고 우리 어선에 대해 조업구역 이탈과 관련해 선박 안전조업규칙 등 관련 법률 위반사항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 어선들의 막무가내 불법조업은 고스란히 어장의 황폐화와 우리 어민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성어기에 접어들면 하루 평균 250여 척의 중국 어선이 우리 해역 북방한계선 부근에서 불법조업을 하지만 단속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동해까지 그 불법조업을 확대해 한 해 평균 4천억 원의 피해를 보고 있다. 서해 꽃게부터 동해의 명물 오징어까지 어족자원이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으로 씨가 말라 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해산물 소비국이다. 해산물 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이에 따라 어선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정부가 국제협정을 어기는 민간 수산기업이나 불법 조업 어선을 거의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 이런 불법조업에 대해 한국 정부의 대응은 어떠할까?

그동안 우리 정부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특별한 대책을 내놓거나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31일 '제 15차 한중 어업 공동위원회'에서 합의문을 채택했지만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은 오히려 증가해 합의문이 유명무실한 책임회피용임이 드러났다.

해군, 해경, 어업관리단 등의 정부기관들이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불법 어선의 수에 비해 단속의 효과는 턱없이 부족하다. 설사 단속인력이나 장비들이 늘어난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더구나 한중 FTA 협정문에는 국내 수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중국 불법조업의 대책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현대 국가의 3요소는 주권, 영토, 국민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역할은 영토를 지키고 국민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중국 어선이 불법조업을 하는 바다는 분명한 우리의 영해이다. 그리고 그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으로 생업을 위협받고 재산상의 피해를 입는 어민들은 우리 국민들이다. 우리 영해를 침범한 다른 나라 어선의 불법조업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수년간 이어짐에도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보면 주권국가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강국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무역대국이라 자평하는 대한민국이 가장 많은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나라가 중국임도 분명한 사실이다. 남한과 북한 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중국의 위치, 괜한 분쟁으로 외교 문제까지 비화되어 대중국 무역 손실을 입을 우려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연평도 어민의 중국 어선 나포처럼 자국의 영해에 중국 어선이 침범하는 상항을 이렇게 오랜 기간 방치하여 연평도 어민이 직접 나섰다면 주권국가의 정부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 정부는 피해를 입고 있는 어민들의 피해 보상에도 지극히 소극적이다.

무역대국 대한민국보다 주권국가 대한민국으로

조선의 어부 안용복은 무능한 국가를 대신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받고 돌아왔으나 국가는 그를 처벌하고 유배를 보냈다. 300여 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연평도 어민들은 계속되는 중국어 선의 불법조업에 대해 국가의 미온적인 대처를 참지 못하고 중국의 불법조업 어선을 직접 나포하였으나 해경은 우리 어민들에 대해 불법 여부를 조사한다고 한다.

국가의 무능과 소극적 대응에 국민들이 직접 나서야 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감내하며 살아야 할까? 무역대국 대한민국보다 중요한 것은 당당한 주권국가 대한민국이 아닐까?

[참고]
1. 이훈, "조선후기 독도를 지킨 어부 안용복" <역사비평>33호(1996)
2. 울릉군청 홈페이지(http://www.ulleung.go.kr)


태그:#안용복, #연평도, #중국어선나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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