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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회 전후로 북한에서 살포한 대남전단지가 최근 많이 발견됐다.
▲ 조선로동당 삐라 당대회 전후로 북한에서 살포한 대남전단지가 최근 많이 발견됐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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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일) 오후 12시 20분께, 부평공원 주변을 걸어가다 우연히 삐라(대남전단)를 발견했습니다. 처음엔 종교단체 홍보지로 보여 그냥 지나쳤지요. 그러다 문득 '조선로동당'이란 문구가 본 것 같아 다시 봤더니 정말 삐라가 맞았습니다. 신기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1980년대 유년 시절, 부평 지역은 논과 밭이 전부였습니다. 장마철에는 농수로 물이 넘쳐 온 동네가 수영장이 되곤 했죠. 비가 그치면 동네 아재들은 미꾸라지, 붕어를 잡으러 수로로 향했습니다.

덩달아 국민학생인 또래 친구들도 장마 소풍을 떠났죠. 논과 밭을 운동장 삼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개구리 잡아서 장난치고, 메뚜기 잡아서 구워먹었죠. 때론 수로 근처 늪에 빠져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놀만큼 놀다가 돌아오는 길목엔 어김없이 삐라가 우리를 반겨줬습니다. 반공 메커니즘이 몰아쳤던 당시엔 삐라가 넘쳐났습니다. 학교마다 반공 웅변대회, 반공 글짓기, 반공 포스터, 반공영화 감상문 등으로 상장도 무수히 받았습니다. 또 하나 반공 만화영화의 대표 격인 <똘이장군> <해돌이 대모험> <마린엑스> 등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삐라는 당시 초딩들의 로또 복권이었습니다. 삐라를 주워 인근 파출소 경찰에 넘기면 칭찬을 기본이요, 연필·공책 등을 선물로 주곤 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경찰이 선생님에게도 알려 '반공 어린이상'까지 받는 날도 있었답니다.

이와는 반대로 삐라를 잃어버린 날에는 울상이 됐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또래 친구가 몰래 삐라를 훔쳐가 대신 경찰에 신고해 공책을 타갔던 웃지 못할 기억도 떠오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반공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보여주는 한 장면 같습니다. 당시 초등학교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대명사 격인 이승복 어린이의 동상이 세워졌을 정도였지요(물론 이 일화는 조작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었죠). 또한 아이들 딱지부터 책받침까지 모든 학용품에 '북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애국가가 울리면 조건반사로 멈춰 서야 했던 암흑의 시절이었습니다.

삐라, 이 죽일 놈과의 인연은 그 시대를 끝으로 완전히 끊겼습니다. 논과 밭이 사라지고 온통 아파트·빌딩으로 덮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시대도 완전히 변해 반공의 그림자도 독재의 죽음과 함께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어린 꼬마가 어느 새 40대가 되고 30년 만에 삐라를 다시 보게 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지금은 삐라를 신고해도 공책은 받을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삐라가 지구상에서 완전 사라지는 날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날이겠지요. 제 민족끼리 이간질시켜 통일을 방해하는 나쁜 삐라와 이제 그만 '안녕'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삐라, #대남전단, #조선로동당,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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