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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부터의 서한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부터의 서한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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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5월 16일)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명의의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아마 제가 학교 밖 선생으로 활동한 때문인 듯싶습니다.

자유학기제 체험처 기관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과 함께 새 학기의 분주한 출발을 마치고 5월을 맞이하였습니다. 학교 현장의 새로운 변화인 '자유학기제'도 2013년 시범운영했던 첫 출발점을 성공적으로 지났습니다. 올해는 전체 중학교 3,213개교에서 전면 시행을 통해 또 다른 도약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자유학기제 동안 선생님 주도의 수업방식이 학생들의 토론과 발표 위주로 중심축이 바뀌었고, 학생 한 명 한 명이 각기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다양한 진로탐색의 기회도 열렸습니다. 생기 넘치는 학생들의 표정에서 자유학기제로 인한 변화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학생의 자기표현력 향상, 학업에 대한 흥미도 향상, 학교생활 만족도 향상, 교사∙학생 간 친밀도 향상 등의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님에게는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선생님들에게는 가르치는 보람과 희망을 높이는 현장 반응도 들었습니다. 이는 모두 '미래 세대인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마음으로 진로체험처를 제공해 주신 여러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소중한 일터를 어린 학생들을 위한 배움의 공간으로 내어 주시고, 학생들을 내 자녀처럼 아껴주신 여러분들이 우리 모두의 선생님이십니다.

-하략-

2016년 5월 11일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준식

전체 중학교에서 실시되는 한 학기 동안의 자유학기제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지 않는 대시 토론과 실습수업이나 직장 체험활동과 같은 진로교육을 받는 제도'를 말합니다.

#2

미국의 명문 사립 기숙학교인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Phillips Exeter Academy)의 수업은 학생들이 원형 테이블에 둘러 앉아 진행되는 토론식 수업입니다.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둘러앉아 수업이 진행되는 그 타원형 테이블을 하크네스(Hakness, 1930년 이 테이블을 기증한 미국 석유재벌이자 자선사업가인 에드워드 하크니스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최초에는 원형이었지만 나중에 타원형으로 바뀌었다)라고 합니다.

누구나 상대를 마주 볼 수 있는 이 원탁은 토론식 수업을 상징하게 되었고 이런 방식의 토론식 수업을 하크네스 테이블(Harkness table) 혹은 하크네스 방식(Hakness Method)이라고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원탁의 하크네스 테이블
 원탁의 하크네스 테이블
ⓒ Phillips Exeter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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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출신의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 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이 학교 출석부의 애칭인 'facebook'을 회사명으로 삼았습니다.

하크네스 방식의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도 교사에 준하는 권한과 역할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학생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이 수업에서는 교사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수방식이 불가능합니다.

위 교육부장관의 편지에서 언급된 '자유학기제 동안 선생님 주도의 수업방식이 학생들의 토론과 발표 위주로 중심축이 바뀌었고...'가 하크네스 방식의 수업과 그 지향점이 같습니다.

이 수업의 승패는 교사와 유사한 권한을 가진 학생들의 '협력'입니다.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익한 토론이 되기 위해서는 수업 전에 충분한 리서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습을 통해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숙지한 다음 자신이 발표하고 질문할 내용들에 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사전에 준비를 하지 않은 학생은 수업시간에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본인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불이익이기도 하지만 전체 수업을 부진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이 수업에서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지식을 나누는 것'이 됩니다. '사고하라! 토론하라! 그리고 질문하고 분석하라!' 이 강령이 이 학교의 학풍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크네스 테이블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이 아니라 상대 학생을 마주보게 된다.
 하크네스 테이블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이 아니라 상대 학생을 마주보게 된다.
ⓒ Phillips Exeter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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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학생 개개인의 목표와 역량, 어려움들을 파악하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꾸준히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끼리 바라보게 되는 이 수업에서 선생님의 개입이 최소화된듯하지만 평소에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됩니다. 미리 부족한 것을 채워서 함께 갈 수 있도록 해야 하므로 선생님의 역할이 더 수업에 앞서 행해져야 하고 정교해져야 합니다. 결코 수업 부담이 적어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각기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다양한 진로탐색의 기회'가 열리고 '학생의 자기표현력 향상, 학업에 대한 흥미도 향상, 학교생활 만족도 향상, 교사∙학생 간 친밀도 향상'이 '자유학기제'라는 제도의 도입으로 우리나라의 공교육에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토론식 수업이 주로 이루어지는 미국 250여 개의 보딩스쿨은 한 학급 당 평균 학생수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와 같은 12명 정도입니다. 교사와 학생수의 비율도 1:5~1:7의 비율이고 보면 우리 공립학교와는 많이 다른 수치입니다. 이것은 하크네스 테이블 방식의 수업이 가능한 전제조건이지요.

이와 더불어 다른 이의 발언을 경청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되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의문점에 대해 질문하여 토픽의 해답을 스스로 발견해가는 학생들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한 학기 동안만이라도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과 끼를 찾고자 하는 이 제도를 선행학습의 기회로 여기는 이도 있습니다. 시험이 없는 시간을 혼란스러워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자유학기제'가 내세우고 있는 경쟁 중심 교육을 타파하고 학생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목적으로 삼아  진로탐색, 주제선택, 예술체육활동, 동아리 활동을 펼치고자 하는 운영체계와는 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는 그것을 지향하는 방법인 만큼 '자유학기제'의 전면 시행에 기대가 적지 않습니다. 한 발 한 발 나아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원탁이 부럽지 않은 교실을 교사와 학생,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자유학기제, #하크네스테이블, #토론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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