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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국민의당 신임 원내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를 기다리며 누군가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신임 원내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를 기다리며 누군가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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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무산됐다는 국가보훈처의 결정을 국민의당에게만 사전에 알려 논란이 일고 있다.

불과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이 3당 원내대표의 회동에서 '협치'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국민의당만 협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전히 청와대가 새누리당을 무시하고, 또 야권을 갈라치기 한다는 지적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5.18기념식을 이틀 앞둔 16일 오전 8시경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침 7시 48분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으로 부터 어젯밤 늦게까지 보훈처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에 대한 논의 결과, 국론분열의 문제가 있어 현행대로 합창으로 결정, 청와대에 보고한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이해를 바란다는 연락을 받았다"라는 글을 올렸다.

박 원내대표는 당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인터뷰 직후 현 정무수석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가'라는 보훈처 결정 관련한 연락이 왔다. 이에 박 원내대표는 해당 프로그램과 재차 전화를 연결해 현 정무수석과 통화한 내용을 자세히 공개했다.

박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 회동과 소통 협치의 합의를 잉크도 마르기 전에 찢어버리는 일"이라며 격분했다. 그러면서 박 원내대표는 통화내용을 공개한 뒤 현 수석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 "청와대 발표가 있기 전에 사전 통보를 해줬는데, 이렇게 SNS에 올려서 입장이 난처해졌다"라고 말한 것까지 공개했다.

우상호 "국민의당하고 잘 해보라고 그래"

반면, 같은 시각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청와대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청와대는 국민의당하고만 파트너십을 만들겠다는 것이냐"라며 "왜 이 문제를 국민의당에 통보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회의 직후 '진짜 연락을 못 받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못 받았다, 국민의당하고 잘 해보라고 그래"라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현 정무수석은 보훈처의 결정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후, 이날 오후까지도 우 원내대표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더민주 관계자는 "국민의당에 사전 연락한 것을 지적했지만 청와대로부터 아직까지 아무 연락이 없다"라며 "아직 이틀 동안 시간이 있으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과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비대위원 상견례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야기 나누는 정진석-김광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과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비대위원 상견례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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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사전에 연락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 원내대표 측은 "따로 전화를 받았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말한 것이 보도된 기사를 통해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가 애초 보훈처의 결정을 옹호하다가 유감을 표명하며 태도를 갑작스럽게 바꾸는 과정에서도 청와대와의 소통은 없었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비대위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도 원칙이 있다"라며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기념식에 참석했을 때 (의무적으로) 따라 불러야 한다, 그러면 보훈단체들과 갈등이 생기기 때문에 지금처럼 부르고 싶은 사람만 따라부르는 방식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대위 회의 직후에는 "보훈처가 제창을 허용하지 않기로 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재고해주길 요청한다"라고 말을 바꿨다.

현기환의 전화, 박지원 반발에 역풍 됐다

현기환 정무수석이 박지원 원내대표와 한 통화에서 "입장이 난처해졌다"라고 말한 배경에는 이 같은 정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 수석이 박 원내대표에게만 연락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여당이 더민주보다 국민의당을 더욱 예우하려는 모습을 수차례 보여 '연정' 논란까지 불거진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11일 이춘석 더민주 원내수석부대표를 만나 경제활성화법 통과를 당부하면서 9분 만에 면담을 끝낸 반면,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와는 18분 동안 회동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양당을 예방하면서 우상호 원내대표와는 9분간 만났지만 박지원 원내대표와는 26분간 면담했다. 정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를 '형님'이라 부르며 친근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국민의당 편애'가 오히려 된서리를 맞는 분위기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이날 오전 현기환 정무수석과 한 전화통화 내용을 전격적으로 공개한 것은 청와대와의 선 긋기를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박 원내대표는 더 나아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가) 자기 손을 떠났다고 한 것은 윗선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게 입증된 것"이라며 "청와대에 유감을 표한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면서 "(현 정무수석에게) 우리는 우리 방법대로 하겠다고 이야기했다"라며 "박승춘 보훈처장 해임 촉구결의안을 20대 국회에서 공동발의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념곡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박 원내대표의 강경한 태도는 정국 이슈로 떠오른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여당과의 '연정' 논란으로 최근 호남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결국 박 원내대표의 심기를 달래려던 현 정무수석의 전화가 오히려 청와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협치'를 더욱 꼬이게 하는 모양새가 됐다.


태그:#박지원, #국민의당, #현기환, #임을 위한 행진곡,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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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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