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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지진을 이기고 붉게 익은 커피 체리 네팔, 신두팔촉 이촉마을 쓰러진 커피나무들을 다시 정성껏 일으켜 지진 후 첫 커피를 수확하는 아름다운 커피 공정무역 커피 농부들의 마을에 함께 머물며 붉은 커피 체리를 함께 추수하던 겨울 ⓒ 이매진피스 신주희
아름다운 커피 농부들을 만난 건, 어쩌면 지진 덕분이었다. 여러 차례 네팔을 오가는 걸음 속에서도 커피 마을은 늘 너무 높고 먼 곳에 있어 쉬이 가 닿을 수 없었다.

그 아득한 산위의 마을에 지진이 찾아오던 봄,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져 내리며 마을이 완파되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진으로 무너진 집은 무려 84만채. 그중에서도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은 신두팔촉 지역이었다. 마을이 '완파' 되었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지진이란 두 글자가 얼마나 크고 광폭한 뜻을 지닌 말인지 무너진 마을들에 다다른 후에야 비로서 그 단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진이 일어난 지 100여 일이 지난 후 다다른 신두팔촉의 커피 마을, 산 위의 네팔 사람들에게 '지진'은 여전히 지나간 사건이 아니었다. 매일 찾아오는 강도 4.0 이상의 여진은 지진을 잊을 수도, 일상을 복구할 수도 없게하는 통증의 진원지였다. 100일간 찾아온 강도 4.0 이상의 여진만 무려 140여 차례. 여진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왔던 일상이었던 것이다.

지진으로 무너진 마당에서 커피 농부들은 쓰러진 커피 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옥수수를 거두어 마당에 널어 두었다. 마당 가득 널린 옥수수를 밟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길, 네팔에 2년간 머물며 커피 농부들을 지원했던 아름다운 커피 한수정 선생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었다.

"네팔 농부들이 이렇게 마당에 옥수수를 널어 말리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원래는 처마 밑에 가지런히 널어 말리는데 집이 다 무너지니 옥수수를 널어 말릴 처마조차 사라졌네요."
처마가 아니라 마당으로 내려앉은 옥수수들 집이 무너지니 처마가 없어 옥수수를 바닥에 널어 말리는 네팔 농가 ⓒ 이매진피스 신주희
마당으로 내려앉은 것은 옥수수만이 아니었다. 집안의 세간도, 아이들도, 기르는 짐승들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집에 쉬이 들어서질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다. 무너진 폐허에서 꺼내온 나무막대들과 구호단체들이 가져다 준 천막 밑에서 우기를 건너고 언제일지 모를 집을 다시 세워가는 삶은 얼마나 가파를 것인가...

집 안에 있어도 집 밖에 있어도 안심할 수 없는 어떤 불안. 그것은 다만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었나 보다. 마당의 송아지가 너무 귀여워 만지려 하니 흠칫 놀라 물러선다. 농부 아저씨가 소들을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상태를 설명해 주신다.

"지진이란 게 사람만 무서운 게 아니었나봐요. 저 어미 소가 지진이 나고 두 달 동안 젖이 나질 않았어요. 염소들도 마찬가지구요. 전에 없이 사람이 다가가면 손길을 피하고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요. 소도 염소도 다 아직 아물지 않은 거죠."

쓰러진 커피나무 숲,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우는 농부들
커피나무를 돌보는 농부 무너진 커피나무들을 일으켜 세우고, 천천히 식물의 속도로 집과 마을을, 숲을 일으켜 가는 네팔 농부들 ⓒ 이매진피스 신주희
그 무서운 지진 속에서도 농부들은 쓰러진 커피나무 숲으로 달려가 커피 나무들을 일으켜 세우고, 저장해둔 커피를 덮어버린 흙더미를 파헤쳐 커피콩들을 거두었다. 아름다운 커피 팀이 도착하니 그 흙더미 속에서 꺼낸 커피를 소중히 보듬어 보여주신다.

사람도 생명도 죽어나가는 그 무서운 지진 속에서 커피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파묻힌 커피를 꺼낸 그 극진한 손길에 마음이 아득해왔다. 늘 오르내리던 마을들이 지진으로 무너졌건만 모금 때문에 애만 태우다가 뒤늦게 달려온 아름다운 커피 한수정 팀장은 그 따스한 손에 담긴 커피들을 보고 그만 울음을 떠뜨리고 만다

신두팔촉의 커피 농부들에게 커피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산길을 걸으며 여쭙는 질문들에 아름다운 커피 네팔 현지 조합대표인 프라찬다 선생님은 찬찬히 답해 주셨다.

"아무것도 추수할 수 없는 겨울, 마지막으로 추수하는 작물인 커피는 다음 농사를 지어 추수를 하기 까지 가족들이 겨울을 건너게 해줄, 또 아이들의 학비 마련을 도와줄 소중한 작물이에요. 공정무역 커피는 소농들의 협동조합과 거래를 하죠. 그리고 해마다 구입하기로 한 커피 추수물량에 대한 대금의 60%를 선불로 건네요. 물론 커피를 종묘하는 법, 유기농으로 짓는 법, 농사일기를 쓰는 법... 커피를 어떻게 키우고 가꾸어 가는지 가르쳐주는 것도 협동조합의 중요한 일이죠. 네팔 커피는 다른 나라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편이니까요."

가는 곳마다 커피 잎의 상태부터 살피고 농부들에게 커피나무에 대해 묻는 프라찬다 선생님은 네팔커피의 역사와 삶을 함께 해 산 증인이라고 아름다운 커피 선생님들이 귀띔해 주신다.

올해도 그렇듯 아름다운 커피는 네팔 농부들에게 선구매금을 지원했을 터. 그러나 신두팔촉의 마을들을 덮친 지진은 그냥 나무와 커피나무를 가리지 않았다. 산 사람도, 짐승도, 커피나무도 그저 마을을 쓸어내리는 지진속에 휩쓸려가는 아프고 쓰린 날들이 지나갔을 뿐이다.

어떤 농부는 커피나무 전부를 잃어버리기도 했을 터이고, 또 3년을 키워 이제 추수를 고대하던 어린 나무들이 쓰러지기도 했을 터였다. 게다가 집은 무너져 내리고 삶은 뿌리 채 흔들린 곤궁한 시절, 미리 받은 돈을 돌려주어야 하는 시름 속에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보관한 커피는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을 것인지...
지진을 이겨낸 커피콩 무너진 폐허 속에서 발견된 커피콩들, 그 무서운 지진 속에서도 새싹을 피워 올렸다. ⓒ 이매진피스 신주희
산비탈 가파른 마을길들을 걷는데 커피 농부인 구릉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지진이 있고나서 아름다운 커피 직원들이 커피 마을을 찾아왔어요. 사람들은 무너진 집도 집이지만 이미 선금을 60%나 받았는데 커피나무가 부러지고, 커피를 수확할 수 없게 된 현실이 너무 미안하고 암담했어요. 그런데 아름다운 커피에서 온 사람 누구도 커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는 거에요. 그저 다친 사람 없느냐고, 죽거나 아픈 사람은 없느냐고 살펴요.

무너진 집들은 몇 채나 되는지,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느냐고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그 산자락을 몇 달간 오르내렸죠. 한 달치 식량을 가져다 주고, 또 당장 우기를 넘길 함석지붕과 심어서 먹을 채소씨앗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그러니 우리도 살아남은 커피나무들을 소중히 돌보아야죠. 멀리 한국의 벗들이 우리를 돌보아 주었듯이..."

신두팔촉 지역의 높은 산위에 흩어져 있는 400여 명의 조합원들을 찾아다니며 지진으로 다치거나 아픈 이는 없는지, 농가와 펄핑 센터(커피과육 제거기가 있는 곳)는 어떤지 살피고 돌보며 지진 직후부터 농부들과 마을 사람들을 지원해 온 커피협동조합 수더르산 블라케 조합장은 지진이 가져다 준 가장 소중한 것을 가만히 이야기해 주신다.

"지진으로 많은 것을 잃었죠. 하지만 소중한 것을 얻기도 했어요. 이번 지진이 있고 나서 사람들이 말해요. 이제야 공정무역이 뭔지 알 것 같다고... 공정무역이 별건가요? 사람이 사람과 만나 서로에게 없는 것을 나누고 부족한 것을 나누고 채워가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죠."
한창 더운 8월의 태양 속에서 함께 커피 농부들을 만나고 난 후 헤어지는 자리, 다음해 1월 재건을 위해 마음과 사람을 모아 다시 오는 마음의 여정을 준비 중이라 말씀드리자 아름다운 커피 프라찬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1월말이요? 그때 온다면 커피 추수를 함께 할 수 있겠네요."

지진을 이기고 붉게 익은 커피 체리를 추수할 수 있다는 말에 이미 가슴 한 켠이 뛰기 시작했다.

공정무역, 커피나무 숲에 깃드는 여행
이촉마을 유채와 보리로 아름다운 신두팔촉 이촉마을 , 커피 협동조합 농부들을 찾아가는 길 ⓒ 이매진피스 신주희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더디고 느리다. 촘촘한 걸음으로 1월이 마침내 다가왔고, 다시 산 위의 커피농부들을 만나기 위해 멀고 긴 여행을 시작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산위의 마을을 향해 함께 오르는 소중한 일행들이 생겼다는 것 뿐.

가을과 겨울을 건너 이촉마을에 오르는 길은 무너진 집들이 없었다면 지진은 거짓말이었다는 듯 마냥 아름다웠다. 층층이 푸른 논과 구불구불 고랑을 따라 유채로 가득한 들판을 아이들은 송아지마냥 뛰어다녔다. 제주에서 온 곶자왈 작은학교 친구들은 한겨울에 핀 유채의 풍경에 반가움에 겨웠고, 유기농업을 배우는 풀무학교 친구들은 아름다운 논의 풍경에 넋을 잃었다.

산 중턱에 차를 멈추고, 산 위의 마을을 향해 짐과 선물을 가지고 올라가는 길, 권유선 아름다운 커피 간사님이 넌지시 걱정을 건네왔다.

"커피가 갑자기 잘 익어서 아이들이 도착할 때 쯤이면 다 떨어져 못쓰게 된다고 지난주 추수를 많아 하셨데요. 커피가 너무 적어서 아이들이 실망하면 어떡하죠?"

그러나 걱정은 늘 어른들의 것이었다. 생전 처음 커피 나무를 마주하고 붉은 커피 체리가 익는 커피 나무 숲에 깃든 아이들은 흥분과 기쁨에 숲의 야생동물처럼 눈을 반짝였다.
공정무역 커피 추수 여행 이촉마을, 공정무역 커피를 추수하는 풀무학교 학생들 ⓒ 이매진피스 신주희
아이들의 흥분을 눈치 챈 커피 농부, 팟 바하두르 조합장님은 아이들에게 찬찬히 커피 추수하는 법을 설명해 주셨다.

"커피를 너무 세게 잡아 당겨서 따면 열매 끝에 있는 짧은 가지가 끊어져 버려요. 그럼 그 자리엔 다시 열매가 열리지 않아요. 그래서 천천히 살피며 익은 커피를 옆으로 돌려서 살살 따주어야 해요. 커피는 다른 과일과 조금 다르게 한 가지에서도 한 알 한 알 익는 시기가 달라요. 아직 푸른 커피체리도 소중히 다루어야 해요. 익을 때를 기다리는 중이거든요."

아름다운 커피의 현지 직원인 먼두와 권유선 선생님이 곁에서 설명을 보태주셨다.

"보통 커피추수 기간은 한 달 이상 걸려요 농부들이 매일 밭을 오가며 익은 체리들을 체크해서 일일이 수작업을 하는 거죠."

기계농을 하는 브라질이나 남미의 커피 대농장(플랜테이션)과는 달리 추수부터 커피 과육을 제거하기까지 한 알 한 알 사람의 손이 가는 수고로운 과정이었다.
공정무역 커피 추수 이촉마을 공정무역 커피 조합장님과 곶자왈 작은학교, 풀무학교 친구들이 함께 붉게 익은 커피 체리들을 추수하고 있다 ⓒ 이매진피스 신주희
네팔의 커피농부들은 많아야 50그루에서 100그루, 그늘이 있는 산 비탈이나 집 앞에 텃밭처럼 조금씩 짓는 소농들이었다. 그 농부들 400여 명이 모여 아름다운 커피와 거래를 하는 커피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공정무역을 배우러 아이들이 온다는 소식에 아이들을 위해 다 따지 않고 일부러 커피를 남겨두셨다는 커피 농부들은 체리를 따며 하냥 신기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연신 빙글빙글 웃으신다. 커피 농부 할아버지는 추수를 마친 아이들에게 커피 체리가 어떻게 커피콩이 되는지 보여주시려고 다시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하셨다.

아이들은 이제 산양처럼 빠르고 잰 걸음으로 할아버지 뒤를 따라간다. 펄핑 머신(커피과육 제거기)이 있는 펄핑 센터에 간다는 말에 큰 건물을 상상했던 우리가 도착한 곳은 비탈에 면한 작고 허름한 움막이었다. 비를 피하기 위해 함석지붕에 나무기둥 몇개를 받쳐둔 작고 열린 공간에 덩그러니 작은 기계 하나가 놓여있는 곳이 펄핑센터였던 것이다. 조합장님은 아이들의 실망을 눈치챈 듯 펄핑 센터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펄핑머신,과육제거기 신두팔촉 협동조합 아름다운 커피 펄핑센터, 얼굴이 붉어질 때 까지 힘을 주며 돌리는 아이들 모습에 마을 어른들은 웃음을 멈추질 못한다 ⓒ 이매진피스 신주희
"원래는 이것보다는 좀더 멋진 공간이었어요. 하지만 지진에 모두 무너져서 임시로 세운 거예요. 이 기계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마을에서 펄핑을 못하면 커피 체리를 그냥 팔아야 해요. 펄핑을 해서 말리지 않은 생체리는 빨리 상하기 때문에 제값을 못받기 일쑤고 또 잘 상해서 싸게 팔아야 할 때도 많죠. 하지만 이렇게 펄핑(커피체리를 벗기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잘 씻고 말려서 우리가 보는 생두가 되요. 그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값도 훨씬 높아지죠."

조합장님은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 펄핑 머신을 돌려서 커피 껍질을 까 보도록 손잡이를 내어주신다. 그런데 의외로 핸들은 쉬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힘을 주며 돌리는 아이들 모습에 마을 어른들은 웃음을 멈추질 못한다.

커피 농부 다카 아저씨는 펄핑 머신을 나온 파치먼트를 물에 담가 물에 뜨는 쭉정이들을 또 골라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펄핑 머신을 돌려보고 난 친구들은 체리과육에 섞여 나오는 생두가 너무 아깝다며 얼른 주워서 통에 담는다. 그렇게 힘을 들여 수동으로 펄핑을 마치고 나면 잘 발효를 시켜 커피콩에 묻은 과육을 잘 벗겨내고 말려야 건강하고 맛있는 커피 생두가 된다고 한다. 한 친구는 커피추수와 펄핑 과정을 수첩에 부지런히 적던 손을 떨구더니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하나 하나 다 손으로 하는 것일 줄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커피 생두 벌레먹은 생두가 있는지 로스팅 전 일일이 다시 손으로 골라낸다 ⓒ 이매진피스 신주희
커피추수 그리고 마을잔치

아이들이 커피를 추수한다는 일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마는 마을은 온통 어린 손님들 맞이로 분주했다. 아름다운 커피 협동조합 활동가인 먼두 선생님은 어디선가 쇠로 만든 항아리와 긴 막대기를 들고 나타나셨다.

작은 모닥불을 하나 더 지피더니 그 위에 항아리를 올려두고 연신 막대기로 젖기 시작하신다. 그 소리와 움직임이 사뭇 궁금해 아이들이 쳐다보니 "커피, 커피" 하고 외치시며 보러 오라 하신다. 그 와중에도 커피가 탈까봐 손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바지런하게 균일한 속도로 20여 분을 저어야 하는 네팔 전통방식의 항아리 로스팅... 신기해 하는 아이들에게도 막대기를 한 번씩 건네주시지만 커피를 살피는 손끝은 매섭다. 십여 분이 지나자 항아리 속에서 거짓말처럼 커피 향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지진으로 무너진 마을 한 가운데, 장작불과 항아리에서 볶아진 커피라니... 금방 볶아서 내린 커피는 순하고 부드러웠다. 아이들도 저마다 한 모금씩 맛보고 싶다고 줄을 서고, 커피를 마시고난 아이들 표정이 궁금하신지 마을 분들은 자꾸 쳐다보며 웃으신다.
네팔 전통 로스팅 장작불을 피우고, 놋쇠 항아리를 불에 달구어 이십분 남짓 손으로 골고루 저어준다. 모닥불 연기와 함께 온통 커피 향이 번진다 ⓒ 이매진피스 신주희
마당 한 켠에 장작불이 올라오고 여기 저기 텐트를 세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어느새 캠핑장에 온 듯 도리어 신이 나서 어른들을 거들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느라 한창 배가 고팠던 터라 커다란 솥을 걸고 밥을 짓고 달밧을 끓이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자 모두가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마을 아이들이 모여들고, 실뜨기 실이며 공을 꺼내어 서로 어울리기 시작한다.
함께하는 실뜨기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저 함박웃음으로 함께 한다. 네팔 방식도 있다며 어느새 가르쳐 주기 시작하시는 아저씨 ⓒ 이매진피스 신주희
마을 사람들과 함께 따순 달밧 한 그릇 나누고 산자락에 눅신하니 어둠이 내리니 시작하니 어른들은 추울까봐 다시 불을 지펴 모닥불을 만들어 주셨다. 커피처럼 짙고 부드러운 어둠이 히말라야 산자락과 마을을 고요히 감싸기 시작하자, 건너편 아득한 산 위의 마을들에 별이 켜지듯 사람의 불빛이 켜진다. 하늘을 보듯 올려다 보아야 하는 높은 마을들에 반딧불처럼 점점이 켜진 따뜻한 불빛들을 하냥 신기하게 보다가 한 친구가 말한다.

"별이 하늘에만 뜨는 게 아니네요... 불켜진 사람들 마을이 저렇게 아름다운 건 줄 몰랐어요."

집이 있다는 것, 그 집에서 저녁에 식구들을 위해 불 하나 밝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생경한 일인지 이촉의 밤은 아이들에게 그 불빛의 온기로 가르쳐준다.

"저 불빛속의 사람들도 우리가 켜둔 불빛을 보며 위로를 얻을 거야."

아이들은 기타를 꺼내고 오카리나를 꺼내어 연주를 하고, 마을 어르신들은 답례로 북과 기타를 가지고 나오신다. 모닥불가에 자리를 펴고 남자들은 남자들 대로 여자들은 여자들 대로 서로 원을 그려 앉는다. 한쪽에서 선창을 하면 즉흥으로 다른 한쪽이 화답을 하는 노래가 몇 순배 오가니 흥이 한껏 올라 춤까지 어이진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난지 한 순배가 돌고 나면 꺄르르 꺄르르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환하게 퍼진다. 밤이 새도록 그렇게 서로 노래를 하며 서로의 마음을 노래로 전한다는 마을의 전통이 그렇게 마당에서 펼쳐지고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흥에 겨워 아이들은 같이 춤도 추고 박자도 탄다. 깊은 밤 모닥불가에 피어오르는 노래는 끝날 줄을 모르고, 저녁 달과 별들이 마을 위로 떠오른다.
함께 둘러앉은 밤 모닥불을 피워두고, 태양광 랜턴에 의지해 아이들은 동그랗게 모여 발을 맞댄다. ⓒ 이매진피스 신주희
다음날 아침, 일찍 지어주신 아침 밥을 먹고, 카트만두를 향해 다시 먼 길을 떠나며 마을분들과 인사를 나눈다. 노래와 춤으로 늦은 밤에 잠이 드셨을 터인데 어느새 다들 일찍 일어나셔서 밥을 짓고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마을을 나서는 길을 배웅해 주신다.

"여러분,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전에는 손님이 오시면 집집마다 홈스테이를 했는데 지난 봄 지진으로 재워줄 수 있는 방이 모두 무너져 버렸어요. 멀리서 온 귀한 손님들을 텐트에서 묶게 해 너무 마음이 무겁고 미안합니다. 다음에 올 때는 집들이 다시 세워지고 꼭 집에서 재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려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있던 아름다운 커피 건물은 어느새 아름다운 카페와 더불어 커피의 여정을 보여주는 커피 박물관이 되어 있다.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산 위의 마을들을 오르내리느라 분주했을 그 시간들 짬짬이 카페와 박물관을 꾸미기 위해 애쓰고 수고했을 손길들이 눈에 선했다.
네팔, 아름다운 커피 박물관 사네파촉, 아름다운 커피와 아름다운 커피 박물관이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을 맞이해 준다 ⓒ 이매진피스 신주희
박성호 간사님의 안내로 커피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저마다 아는 척으로 소란하다.

"어 먼두 선생님이다."
"우리가 갔던 마을인가봐."
"야, 펄핑머신이다!"

어떻게 한 알의 붉은 커피 콩이 커피나무로 자라나는지, 그늘과 햇빛이 어떻게 커피를 자라게 하는지, 한 그루의 나무가 커피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그렇게 거둔 붉은 커피가 멀리 우리가 사는 곳까지 여행을 와 한 잔의 컵 속에 담기기까지 얼마나 긴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한 장의 사진 앞에서 커피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커피나무 숲 그늘에 함께 서 있다.

마당까지 열려있는 일층 카페에선 바리스타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는 바리스타님이 아이들에게 커피 맛을 보여주고 싶다고 라떼아트를 선물해 주고, 아이들은 연신 탄성을 그칠 줄 몰랐다.

높은 산에서 내려온 한 잔의 커피, 그 커피가 다시 더 먼 여행을 해서 한국까지 다다르면, 그것이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한 잔의 커피가 된다는 배우던 붉은 커피나무 숲...  산 위의 무너진 마을 한가운데서 텐트를 치고 장작불에 밥과 커피를 내어 주시던 커피마을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해 산을 오르내리는 아름다운 커피 사람들과 함께 한 여행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 에스프레소처럼 깊고 진한 기억의 공간을 만든다.

한 잔의 커피가 세상을 바꾸는 여행을 시작하듯 커피나무 숲에서 머문 하루의 여행이 아이들의 삶에 어떤 새로운 여행의 문을 열어갈지 가늠할 수 없는 설레임으로 다시 길을 나선다.
커피추수여행을 마치며 공정무역 커피추수여행_ 깊은 여정을 동행한 소중한 길벗 곳자왈 작은학교와 문용포 선생님, 풀무학교와 이매진피스, 아름다운 커피 선생님들과 함께 ⓒ 이매진피스 신주희
아름다운 커피 네팔카페 및 커피 박물관

-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
- 커피 가격 80루피(800원)~150루피(1500원)
- 박물관을 방문하려면?
: 매장 운영시간에 입장, 자유롭게 관람 가능
- 네팔 카트만두 사네파(촉) 사거리 977-1-5529308
- www.beautifulcoffee.org

덧붙이는 글 | 희망을 여행하라 개정판에 게재될 네팔, 공정무역 커피 추수 여행 이야기를 먼저 공유합니다.

태그:#공정무역의 날 , #공정여행, #공정무역커피,아름다운커피 , #이매진피스 , #네팔 커피추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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