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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격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언론계 이슈를 다루면서 현실진단과 더불어 언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언론포커스'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고승우(민언련 이사장), 김서중(성공회대 교수), 김은규(우석대 교수), 박태순(언론소비자주권행동 공동대표), 신태섭(동의대 교수), 이완기(민언련 상임대표), 장행훈(언론광장 공동대표), 최진봉(성공회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 말

지난 9일 오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교육부 프라임 사업 및 선정 대학 발표 규탄 대학생 기자회견'에서 참가한 대학생들이 프라임 사업 반대를 주장하는 내용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교육부 프라임 사업 및 선정 대학 발표 규탄 대학생 기자회견'에서 참가한 대학생들이 프라임 사업 반대를 주장하는 내용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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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지난 3일 프라임사업(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지원 사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21개 대학의 명단을 발표했다. 대학 구조 조정의 일환이다. 골자는 산업의 수요에 맞춰 인문·사회·자연과학대학 정원을 대폭 줄이고 그만큼 공과대학 정원을 늘인 대학에 대해 한해 150억 원씩 3년 동안 모두 450억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교육부가 총대를 메고 선도하고 있는 구조조정의 프로그램이 이런 식으로 착착 진행되면 줄어드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인력수급의 문제가 해결되고 산업의 수요에 부응하는 일자리도 생길까? 아닐 것이다. 이것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이다. 대학의 의미도 교육의 의미도 모르는 외골수 관료들이 오로지 기업의 이익만 고려하는 엽기적인 발상을 무모하게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쥐꼬리만큼 지원하며 대학 교육 숨통 조이는 정부

법에 의해 고등교육기관으로 정의되는 대학의 근본취지는 큰 인물을 기르는 학문(大人之學)을 실천하는 것이다. 두루 학문에 능통하여 훌륭한 인품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곳이다. 가르치는 교수의 자격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부는 대학의 본분을 압살하면서 취업준비학원으로 유도하는 길로 질주하고 있다. 이미 대학교육은 실종되었고 과거 기능인을 양성하는 전문대학의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큰 인물은 고사하고 알바하며 취직 걱정이나 하는 소인배들을 양산하는 구조로 고착되고 있다.

대학에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돈을 미끼로 휘두르는 데 굴복한 지 오래다. 우리나라 대학 재정의 사부담 비율이 OECD 1위다. OECD 평균이 30.9%인데 한국은 무려 79.3%다.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분야가 한둘이 아닌데 이 분야도 빠지지 않는다. 공적 부담에 해당하는 비율은 20.7%로 쥐꼬리만큼 지원하면서 그 알량한 지원금으로 대학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다. 등록금 또한 비쌀 수밖에 없고 대부분 서민 가정의 자녀들인 학생들은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하니 '대인지학'은 먼 나라의 얘기다.

이 정부는 출범 때부터 경제를 살린다며 창조경제를 강조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라면 환영이다. 그런데,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올까? 아이들을 공과대학에 몰아넣고 공학만 가르치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번뜩이게 될까? 아닐 것이다. 공학은 기술이고, 기술은 자연과학이 뒷받침되어야 향상될 수 있다.

자연과학의 뿌리는 자연철학이고, 자연철학은 인문학이다. 기실 자연과학도 인문학이다. 창조경제의 원천은 인문학이다.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 등 출중한 자연과학자들은 대부분 철학에도 능통했다. 맥락이 이러함에도 인문·사회·자연과학대학 정원을 빼다가 공대에 추가하면서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것은 코미디다.

답은 융합교육인데, 융합교육이란 전공영역들 사이의 교류와 연대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지식을 두루 배우는 것이다. 공대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뇌에서 지식의 융합으로 부분의 합을 초월하는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교육부, 대학, 교수들 모두 개념 없이 어두움 속에서 산학(産學)연계만 붙들고 엉뚱한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진보언론조차 제대로 부각하지 못하고 있는 교육의제


이 와중에 언론이라도 잘못을 지적하고 방향을 바로잡아주면 좋을 텐데 그것도 아니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것은 말 뿐이고 주요 의제로 다루지 않는다. 대기업의 대변지로 불리는 조중동 따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매체들도 교육의제는 좀처럼 부각시키지 않는다.

이번 교육부 발표의 경우 <한겨레>는 지난 5월 4일자 16면에 "프라임사업 21개대 선정…공학계로 정원 5천명 이동"이라는 제목으로 단순 전달에 그쳤고, 다음날에는 10면에 대학의 반발과 고3 수험생들의 혼란을 '프라임사업 후폭풍'으로 중계했다. 그리고 5월 6일자에 "수능 코앞에 두고 대입정원 조정이라니"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그걸로 끝이다. 대학생들의 기자회견도 외면했다.

'대학 공공성 실현! 대학생 네트워크 모두의 대학'이라는 단체와 대학교 총학생회장들이 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 수요에 맞추겠다는 목적으로 학문 추구가 본질인 대학을 자본의 논리에 종속시키는 프라임 사업은 전면 철회돼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나마 대학생들이 바른 생각으로 행동에 나섰다는 게 반갑다.

손석희 사장은 지난해 언론정보학회 강연에서 세월호 보도를 예로 들면서 JTBC는 아젠다 세팅(Agenda Setting)뿐만 아니라 아젠다 키핑(Agenda Keeping)까지 책임진다는 말을 했다. 그날그날의 의제를 단편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요한 의제는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도록 꾸준히 보도한다는 얘기다. <한겨레>는 5월 5일과 6일 연달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트럼프를 1면 톱으로 배치했다.

진보매체들이 대학교육을 살리는 일을 미국 대선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으로 아젠다 키핑에 나서주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민주언론시민연합, #교육부, #프라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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