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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만화. 이렇게 잘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야구나 축구, 농구를 좋아해 <공포의 외인구단>이나 <슬램덩크> 같은 스포츠 만화에 빠져들고, 거꾸로 만화를 통해 스포츠에 입문하기도 합니다. 오늘부터 스포츠를 소재로 한 만화 이야기를 엮어갑니다. [편집자말]
다카기 나오코 만화 <마라톤 2년차>
 다카기 나오코 만화 <마라톤 2년차>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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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렸으면 마신다! 급수는 맥주!"

땀 뻘뻘 흘리며 달린 뒤 마시는 맥주만큼 시원하고 맛있는 게 있을까? 마라톤에 푹 빠져 만화 입문기까지 낸 일본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다카기 나오코에게 '포상 맥주'는 곧 달리기의 목적이다. 비바람을 뚫고 수십 Km를 달려 몸은 녹초가 됐을지언정 맥주 한 잔을 들이켜는 순간 모든 고통을 잊는다. 이보다 더 무서운 마약이 있을 수 없다. 

일본에 '포상 맥주'가 있다면 한국엔 '포상 막걸리'

일본에 '포상 맥주'가 있다면 한국엔 '포상 막걸리'가 있다. 국내 마라톤 대회는 '물 인심' 못지않게 '술 인심'도 후한 편이어서 골인한 마라토너들은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로 먼저 목을 축인다. 여기에 고소한 두부김치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다카기 나오코의 <마라톤 2년차>(살림)를 읽는 내내 한국과 일본의 마라톤 문화를 비교하게 됐다. 성숙기에 접어든 일본 마라톤 문화가 부럽기도 했지만, 그동안 몰랐던 우리 마라톤 문화의 장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를 찾아 떠나는 마라톤 여행의 묘미였다.

지난해 나온 <마라톤 1년차>가 마라톤에 첫 발을 디딘 지은이가 처음 풀코스를 완주할 때까지를 그린 '좌충우돌 초보 탈출기'였다면, <마라톤 2년차>는 달리기를 좀 더 지속적으로 즐기는 방법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젠 휴면기에 접어든 '마라톤 12년차'의 가슴을 더 충동질했는지도 모른다.  

<마라톤 1년차>를 보고 마라톤에 입문했다는 독자들이 적지 않은데 내게도 비슷한 자극제가 있었다. 바로 지난 2005년 '지적장애 마라토너' 배형진씨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말아톤>이다.

극중 초원이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씨가 코치의 손을 자기 가슴에 갖다 대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하는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심장을 뛰게 만들고, 낯선 이들도 하나로 이어주는 마라톤의 매력이 느껴져서다.

그즈음 나도 마라톤을 시작했고 지난 2008년까지 풀코스를 5차례 완주했다. 하지만 그 뒤로 마라톤은 일상에서 조금씩 멀어졌고 이제는 어쩌다 10Km 대회에 참가하는 게 고작이다. 어느 순간 달리는 재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 내게 <마라톤 2년차>는 한창 마라톤에 빠져 지내던 마라톤 2~3년차의 추억을 떠올렸다. 공교롭게 지은이가 마라톤에 입문한 시기와도 겹친다.

2005년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 주인공 초원이(조승우 분)가 마라톤 훈련 도중 코치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대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라고 말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좁혀진 순간이다.
 2005년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 주인공 초원이(조승우 분)가 마라톤 훈련 도중 코치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대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라고 말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좁혀진 순간이다.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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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 도쿄에서 열린 5km 대회로 마라톤에 입문한 나오코는 1년 만에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대회에서 42.195km 풀코스 완주에 성공한다. 2년차에는 일본 가고시마 최남단에 있는 요론섬에서 두 번째 풀코스 완주에 도전한다. 마라톤을 즐기기 시작한 지은이는 미에현 스페인마을, 야마나시현 거봉 언덕, 시마네현 나카우미 등 마라톤 대회를 찾아 전국을 누비고 동료들과 릴레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달리기가 끝나면 어김없이 '포상 맥주'와 함께 진수성찬이 네모 칸들을 가득가득 채운다. 맛깔스러운 토속 음식 사진들과 주인공들의 식탐은 시종일관 독자의 군침을 자극한다. 마라톤이 아니라 '여행+식탐' 만화가 아닐까, 착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마라톤 초보자를 위한 알짜 팁들이 등장해 균형을 맞춘다.

달림이 미각 자극하는 '마라톤 여행'의 묘미

사실 '마라톤 여행'에서 먹는 재미는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매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마라톤대회가 열리는데, 내가 참가한 지역 대회만 해도 전남 곡성부터 광주, 충북 영동과 옥천, 인천 강화, 강원도 춘천, 제주까지 손으로 다 꼽을 수 없다. 심지어 <말아톤> 실제 주인공 배형진씨를 비롯한 남측 달림이들과 평양 한복판을 달리기도 했다(관련기사: [2005 평양 마라톤 완주기] 꼭잡은 손, 반가운 인사말에 기록도 '훌쩍').

지역에서 열리는 작은 마라톤 대회일수록 인심도 후하다. 주로에선 열성적인 지역민들의 응원과 응원과 푸짐한 간식거리에 감동하고, 골인 지점에선 막걸리나 잔치국수로 피로를 잊는다. 전국에서 온 달림이들도 오며 가며 각 지역 관광 명소나 맛집에 들러 여행의 재미를 만끽한다. 만화 <마라톤 2년차>가 10년 만에 일깨운 것도 마라톤으로 이어진 인연과 여행의 추억이었다. 이제 슬슬 다시 달려볼까.


마라톤 2년차 - 들썩들썩 근질근질 읽으면 달리고 싶어지는

다카기 나오코 지음, 윤지은 옮김, 살림(2016)


태그:#마라톤 2년차, #마라톤, #다카기 나오코, #말아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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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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