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썰전>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 중 하나인 '상속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다뤘다. <썰전> 패널 유시민 작가는 최근 한진그룹의 위기를 이야기하며 그 원인 중 하나로 '상속 자본주의'를 지목했다. 경영 1세대 창업주들이 정부의 비호를 받았더라도 스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다면, 2, 3세대 경영인들은 1세대가 쌓은 부를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물려받았다. 유 작가는 이들의 각종 갑질, 부도덕 경영 등, 대한민국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탄식했다.

 태선 로펌과 한국 그룹 인물 관계도

태선 로펌과 한국 그룹 인물 관계도 ⓒ tvN


드라마, 상속 자본주의의 실상을 드러내다

상속 자본주의의 위해한 실상은 드라마를 통해 가감 없이 그려진다. 아침드라마부터 주말, 미니 할 것 없이 드라마에서 '갑질' 좀 하는 젊은 녀석들은 하나같이 '상속 자본주의'의 수혜자들. tvN 금토 드라마 <기억>도 마찬가지다.

박찬홍-김지우 작가 콤비는 그간 드라마에 우리 현대사의 부조리를 담아왔다. 드라마로 보는 한국 현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활> <마왕> <상어>로 이어지는 복수 3부작 속 악인들은 일본 강점기에는 친일파로, 6.25 전쟁 중에는 반공론자, 전쟁 후에는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자본가로 등장해 현대사 속 권력자들의 어두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한 개인, 한 가족의 운명이 뒤바뀐 사건의 배후에는 언제나 이 사회의 부조리한 권력의 상징인 누군가가 존재했다.

이런 구성은 <기억>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공'만을 쫓으며 살아온 변호사 이성민. 그에게 닥친 '알츠하이머'라는 병은, 그가 기억 속에 숨겨두었던 아들 동우의 사고사를 불러왔다. 모든 기억을 잃기 전에 진실을 찾으려는 그의 앞에, 현재 대한민국을 고스란히 복기해낸 '상속 자본주의'의 비열한 민낯이 등장한다.

 tvN <기억>에서 이성민은 갑작스레 닥친 알츠하이머를 통해, 잊고 있던 아들 동우의 뺑소니 사건을 떠올린다.

tvN <기억>에서 이성민은 갑작스레 닥친 알츠하이머를 통해, 잊고 있던 아들 동우의 뺑소니 사건을 떠올린다. ⓒ tvN


드라마에서 법과 자본의 부적절한 관계는 새로울 것도 없는 클리셰다. <기억> 속 태선 로펌과 한국 그룹도 마찬가지다. 한국 그룹은 자사 관련 사건들을 태선 로펌에 몰아주고, 태선 로펌은 재벌 3세 신영진(이기우 분)의 이혼 사건에서부터, 차원석의 의료 과실 등 온갖 뒤치다꺼리를 해준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관계가 아닌, 서로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악연에 가깝다.

드라마는 이 둘의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드는 주역으로 각각의 3세들을 등장시킨다. 바로 박태석 변호사(이성민 분)의 아들 동우를 죽게 만든 태선 로펌의 후계자 이승호(여회현 분)와 15년 전 박태석이 포기한 살인 사건의 범인 신영진이다. 두 사건은 모두 각 그룹 3세의 부도덕한 '처신'의 결과다.

법과 재벌, 그 추악한 상속 행위

하지만 이들의 범죄 행위는 태선로펌과 한국그룹이라는 강력한 존재로 인해 덮였다. 태선 로펌의 하수인인 형사 등의 도움으로 동우의 사고사는 흐지부지 미제사건이 됐고, 박태석이 포기한 슈퍼 할머니 살해 사건은 엄한 인물을 15년 동안 감방에서 썩게 만들었다.

이찬무는 얄팍한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태석을 스카우트했지만, 그 스스로 '자존심'을 버렸다고 표현하듯, 아들의 죄를 덮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신영진의 살해 사건은 당시 검사 옷을 벗을 이찬무와 한국 그룹의 뒷배를 봐준 이찬무의 모친 황태선(문숙 분)으로 인해 왜곡되었다. 그리고 이제 15년이 흘러 알츠하이머에 걸린 박태석이 진실을 밝히려고 하자, 황태선은 승호의 친구를 죽여 죄를 덮어씌우려고 한다.

작게는 신영진의 이혼 소송부터, 차원석의 의료 과실, 이승호의 뺑소니 사건 그리고 신영진의 살인 사건 등 개인적 부도덕 차원을 넘어선 살인 범죄까지, 태선로펌과 한국그룹의 죄악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뒤처리 방식은 태선 로펌과 한국그룹, 즉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양대 권력이 생존해온 방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늘 공적인 자리에 있음에도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왔던 이들은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협박, 상해는 물론, 억울한 이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심지어 죽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관리'해온 결과, 한국그룹 재벌 3세 신영진은 '폭력성'을 제어할 수 없어 살인까지 저지르고 마는 사이코패스가 됐고, 태선로펌 3세 이승호는 죄책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15년을 살아야 했다.

 <기억>이 고발하고자 하는 내용이, 딱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새로운 문제제기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진행형 이야기라는 건 확실하다.

<기억>이 고발하고자 하는 내용이, 딱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새로운 문제제기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진행형 이야기라는 건 확실하다. ⓒ tvN


2005년 <부활>에서 무릉건설 회장 강인철 역을 맡았던 배우 이정길은 <상어>에서 친일파 출신 가야호텔 창업주가 된 조상득을, <기억>에서는 한국그룹 총수 신화식으로 등장한다. 이정길이 연기한 두 얼굴의 강인철도, 관대한 자선 사업가 조상득도, 자식의 잘못을 덮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신화식도 결국은 동질의 인물들이다.

결국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텃밭에선 악이 자라나듯, 결국 <기억> 속 상속 자본주의는 자신이 뿌린 악의 씨앗을 감당하지 못해 궤멸해 간다. 시작부터 잘못된 권력의 처절한 결말이다. 그리고 이는 최근 트렌드라서가 아니라, 박찬홍-김지우 콤비가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부조리한 한국의 권력사다.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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