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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베니스라 불리는 연등천의 모습. 서민들의 애환이 가장 많이, 가장 오랫토록 담긴 곳이 바로 여수 연등천 포장마차 골목이다.
 여수의 베니스라 불리는 연등천의 모습. 서민들의 애환이 가장 많이, 가장 오랫토록 담긴 곳이 바로 여수 연등천 포장마차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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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에서 태어나 여수서 자란 소설가 한창훈씨는 "연등천 똥물 위에 떠있는 달빛을 보며 쓴 소주를 마셔보지 않는 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말했다.

서민들의 애환이 가장 많이, 가장 오래 담긴 곳이 바로 '여수 연등천'이다. 여수가 생기고 지금껏 이어져 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연등천 포장마차에서 술 한번 안 마셔 봤다면 그 사람은 '진여'가 아닐 테다. 말하자면 진짜 여수 사람이 아니라는 뜻.

진짜배기 여수 사람이 가는 곳, 연등천 포장마차

풍물시장내 인심좋기로 소문난 경식상회 정인숙씨가 주문한 생선을 들어보이고 있다.
 풍물시장내 인심좋기로 소문난 경식상회 정인숙씨가 주문한 생선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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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에 비친 거무튀튀한 연등천은 사계절 내내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콧등을 스친다. 작년 지인을 데리고 이곳에 왔더니 연등천을 '여수의 베니스'라 불렀다. 베니스 운하 부럽지 않은 연등천 변을 보며 소주 한잔 들이키면 힘든 세상살이가 싸~악 가신다.

날이 저물자 포장마차 알전구가 노란 불빛을 내뿜는다. 다리에서 바라본 연등천 불빛이 천상 베니스에서 본 야경을 연상케 한다. 화려한 조명을 내뿜는 여수 밤바다보다 천변에 비친 불빛이 더 고풍스럽다.

여수의 젖줄 연등천은 하루에도 몇 번 밀물과 썰물이 오르내린다. 새벽부터 장이 서고 나면 다음날 새벽까지 포장마차의 불빛은 꺼질지 모른다. 서시장 아래로 연등천을 따라가면 마지막 포구에 발길이 멈춘다. 여객선터미널이 종점이다. 터미널 너머로 펼쳐진 어시장이 바로 여수의 자랑 '남산동 풍물시장'이다.

이곳은 주로 회를 떠가는 활어와 건어인 마른 물고기를 판다. 오래 전부터 포장마차가 성업했던 연등천 포장마차에 이어 몇 년 전부터 탁주를 마실 수 있는 대폿집이 들어섰다. 호주머니가 가벼워도 푸지게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즉석에서 안주를 골랐다. 오늘 고른 안주는 민어와 조기, 붕장어와 서대 등이다. 경식상회 정인숙씨는 서대는 국산서대를 먹어야 제 맛이라고 한사코 냉장고까지 걸어가 서대를 꺼내왔다.

"저도 오늘은 장사고 뭐고 다 제껴두고 막걸리 한잔 마시고 싶소. 인자본께 우리 아파트에 같이 사는 이웃이데요. 옛소! 오늘은 덤으로 이것도 함께 자셔보소. 국산 서대가 참말로 맛이 쫀득쫀득 하당께."

생선구이로 배 채워도 활어의 반값

노릿노릿 구워진 안주가 막걸리와 만나니 환상이다.
 노릿노릿 구워진 안주가 막걸리와 만나니 환상이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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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릿노릿 구워진 안주가 술을 술술 부른다.
 노릿노릿 구워진 안주가 술을 술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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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를 골라 맞은편 잔치네 포차로 들어갔다. 오늘은 안주인이 관광을 가서 혼자 장사를 하는 주인장 손길이 바쁘다. 이곳은 마른 생선을 사가지고 오면 한판 구워 주는데 5000원과 또 양념값으로 1인당 2000원을 받는다. 푸지게 배를 채워도 안주 값이 활어의 반값 수준이다.

사온 생선을 건넸다. 조금 기다리니 노릿노릿 기름기 좔좔 흐르는 안주가 나왔다. 얼마 전 서울에서 먹었던 안주가 생각났다. 지인은 서울에 오면 꼭 노가리를 먹어야 한다며 한사코 노가리촌으로 유명한 을지로 노가리로 데려갔다.

하지만 솔직히 노가리가 여수 풍물시장의 노릿한 생선구이에 비길 쏘냐. 식감부터 입맛 당기고 호주머니가 얇아도 제대로 대접 받는 곳. 풍물시장에서 맛보는 여수의 대포집 풍경이다. 이윽고 내내 선거 얘기로 목소리를 높이던 지인이 말했다.

"자네 술집 제대로 잡았네. 정치는 개판이어도 여기 오면 안주는 황제급이야. 앞으로 국민들도 좀 대접받는 시대가 오면 얼마나 좋겠드라고. 안 그런가?"

이런저런 얘기에 밤이 점점 깊어간다. 오늘은 달이 뜨지 않았지만 한창훈 소설가의 말을 되새기며 연등천에서 쓴 소주를 벌컥 들이켰다. 그런데 안주가 좋아선지 술이 달다 그냥. 헌데 쓰디쓴 소주 맛이 아니라서 인생의 쓴맛을 도통 알길 없다. 이 역시 인생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수풍물시장, #경식상회, #연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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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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