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월15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영입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지난 1월15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영입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예측이 빗나간 총선, 더불어민주당의 선전

13일 실시된 20대 총선에서는 많은 예측이 빗나갔다. 새누리당이 과반 가까운, 혹은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더불어민주당이 많아야 100여 석 정도의 의석을 차지하지 않겠냐는 기존의 예측과는 다르게, 지역구 253석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110석, 새누리당이 105석, 국민의당이 25석을 차지한 것이다.

즉,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이 된 것인데, 단순히 의석만 많이 차지한 것이 아니라 수도권 지지층을 결집시켰고, 적진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예컨대 서울 강남구 을에서는 전현희 후보가 새누리당의 김종훈 후보를, 송파구 병에서는 남인순 후보가 새누리당 김을동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고, 송파구 갑에서도 비록 패배했지만 약 2300표 차의 접전을 벌이는 등 여당의 세가 강했던 강남 3구에서도 약진에 성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TK(대구·경북)보다는 낫긴 했지만 역시 전통적으로 여당의 세가 강한 PK(부산·경남) 지역에서 5석을 얻었고, 보수 진영의 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충성심이 높은 대구에서는 김부겸(수성구 갑) 후보가 김문수 후보를 제치고 62.3%의 득표율로 당선되기도 했다. 대구에서 31년 만에 야권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요약하자면 수도권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대구에서도 당선자를 배출했으며 PK에서 비록 낙선했더라도 접전을 벌이는 수준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지지자들 내에서는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는 데 성공했다는 환호가 터져 나왔고 이는 이후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이 승리는 사실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는 일일 것이다. 사실상 '텃밭'이었던 호남 지방에서 국민의당에 사실상 참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전라남·북도 각 10개 선거구를 두고 전북에선 2석, 전남에선 1석만을 얻는 데 그쳤고, 심지어 광주광역시의 8개 선거구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게다가 전북 전주에서는 정운천, 전남 순천에서는 이정현 등 새누리당 후보자들이 당선되었기에 더 뼈아플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을 찾아 "호남 민심이 돌아선다면, 정치를 그만두고 대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특히 광주에서는 망월동 5.18 묘역에 참배하며 지지를 호소할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거점을 상실한 것은 아닐까?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개표결과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개표결과
ⓒ 고정미

관련사진보기


정치, 특히 현대의 대의제 정치에서는 '거점' 개념이 중요하다고들 이야기하곤 한다.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많은 후보자들을 당선시킬 수 있는 정치적 거점을 장악하면 다른 당, 혹은 정치세력과의 접전 지역이나 전략공천 지역 등 다른 승부처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더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주당계 정당들에겐 역사적으로 호남 지역이 거점이었다. 5.18 광주민중항쟁 등으로 인해 반 새누리당 정서가 강하고 지속적으로 민주당계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강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안정적 거점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호남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덧씌워져 있었다.

그런데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하면서, 표밭 역할을 했던 기존의 정치적 거점을 빼앗겼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이번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소외론'이 대두된 선거였다. 이전부터 대북송금특검, 열린우리당의 분당 사태등으로 야권에서 호남세력이 소외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게다가 김대중 이후로 노무현과 문재인까지 민주당계 정당과 야권의 맹주 역할을 했던 이들은 모두 영남 출신이었기 때문에, "왜 표는 호남이 주는데 리더는 모두 영남 출신이냐" 하는 불만 또한 거셌다.

또한 문재인의 2선 퇴진 이후 김종인 대표가 공천권을 쥔 이후에 그러한 불만이나 실망감이 더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정치적 역량이나 추함과는 별개로) 박지원 의원 등 기존에 호남에서 정치를 해 왔던 이들이 공천에서 탈락했고 그들이 국민의당으로 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총선 전에 있었던 공천 파동 등은 인해 생겨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을 더욱 키웠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이 호남 입장에선 섭섭할 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들은 자연스럽게 지지의 균열로 이어졌다. 국민의당이라는 '대안'이 생긴 상황에서 어찌 보면 '지지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조금 다른 생각: 거점이 이동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현상을 조금 다르게 분석할 수도 있다. 바로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이라는 정치적 거점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중심 거점을 수도권으로 이동한 게 아닐까? 일부 새누리당 충성도가 높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 대한 우호성향이 수도권 사이에서 이전보다 강해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19대 국회 말엽의 테러방지법 정국과 그로 인한 필리버스터는 정치에 대한 관심과 야권에 대한 지지를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이 이번 선거의 판도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또 박원순 서울특별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당 소속의 지자체장들의 인기, 표창원, 조응천 등 영입인사들의 화제성 또한 더불어민주당의 약진에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타 지역에 비해 중앙 여론에 민감한 수도권 표의 확보에 기여했을 것이다.

이번 선거의 판세를 보면 수도권의 더불어민주당, 호남의 국민의당, 영남의 새누리당으로 일종의 '천하삼분지계'를 형성하는데, 이러한 분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적 거점이 호남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물론 단 한 번의 선거 결과만 두고 거점의 변화나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엔 섣부른 감이 있다. 게다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거점이라기엔 불안정한 면이 있고, 모든 정당이 심혈을 기울이는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선거의 판세를 판가름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거점이 이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해 앞으로 충분히 이야기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기와 기회의 기로에 서 있는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는다"며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경제실패 책임을 준엄하게 심판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는다"며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경제실패 책임을 준엄하게 심판했다"고 말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누구에게 안 그랬겠냐만은, 이번 20대 총선은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에게 매우 중요한 선거였다. 먼저 의석을 100여 석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당 안팎의 예측을 뒤엎고 (일단은) 원내 제1당 자리를 차지했고, 새누리당의 심장부인 대구에서 당선자를 배출했으며, 큰 강세를 보이지 못했던 서울의 강남 3구나 PK 지역에서도 승패와는 관계없이 약진을 했다. 반면에 전통적 거점이었던 호남을 국민의당에게 빼앗기다시피 했고 비례대표에서도 지역구에 비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위기가 드러난 선거이기도 했다.

즉, 더불어민주당에게 이번 총선은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가져온 선거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의석은 많이 얻었을지언정, 승리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뻔한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대선을 앞두고 기회를 살리고, 위기 요소를 줄여가기 위해선 더불어민주당 스스로가 치열한 고민끝에 답을 내는 수밖에 없다.


태그:#더불어민주당, #총선, #선거, #호남, #더민주
댓글1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는 정치학도, 사진가. 아나키즘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자리(Frontier) 라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 사진가 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