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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내가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추천되어 선출되었다는 보도를 본 주변에서는 '비상임'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다른 일을 아예 안 하는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상임위원에 비해서 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 비상임 주제에 그런 말을 듣는 것도 죄송하고, 알음알음 사건을 수임해야 하는 점방(시골 동네 가게) 변호사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만은 비슷하게 무거워 강연·기고나 연구 등 많은 외부 업무는 되도록 사양했다. 무엇보다 적어도 주어진 일을 '바빠서' 못하게 되는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위원회 준비모임을 시작한 12월에는 2015년 1월부터 해야 할 책무에 마음을 다잡았지만, 해가 바뀌어 2015년 1월이 되어도 위원회 업무는커녕 밑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임기는 1월 1일부터라지만, 임명장은 3월,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간 사이 국무총리를 통해 겨우 받았다. 조달청 사무실 한 구석을 빌려 있었던 준비단 사무실을 옮긴 것도 참사 1주기를 앞둔 4월에야 가능했다.

겨우 받은 임명장... 그 뒤로도 계속 발목을 잡혔다

새누리당 추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들의 조직적인 방해로 세월호 특위 출범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15년 2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회의실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설립준비단 3차 간담회에 참석한 조대환 부위원장이 유가족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세월호 유가족 지나치는 조대환 부위원장 새누리당 추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들의 조직적인 방해로 세월호 특위 출범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15년 2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회의실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설립준비단 3차 간담회에 참석한 조대환 부위원장이 유가족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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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취지를 없애버리는 '시행령'과의 싸움이 지루하게 계속되었고, 5월 11일이 되어서야, 그것도 정부안이 거의 그대로 통과되었다. 시행령에 따르면 필요한 인력은 절반 이상 줄었고, 할 일의 범위도 대폭 축소되었지만, 나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생각으로 다시 마음을 잡았다. 하지만 이 또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다음은 예산, 그 다음에는 채용... 차례차례 발목이 잡혔다. 해양수산부에서 지원받아 겨우 경비를 사용하던 것도 4월 14일부로 끊겼다. 청사 보증금과 월세는 외상으로, 급한 비품은 개인비용으로 사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조사관 채용 절차를 진행했지만, 1차 채용 직원들이 출근한 (2015년 7월 27일) 이후에도 예산이 확정되지 않았고, 8월 4일에야 겨우 예비비가 의결되어 처음으로 예산이란 것을 받아보았다. 정부가 '돈줄을 틀어쥐고 협박'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되었다.

시행령에 따라 6개월 후 정원이 늘어나 11월 11일부로, 별정직 직원 정원이 49명에서 67명, 파견공무원 정원이 36명에서 48명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별정직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는 절차를 진행하였으나, 18명의 일반직 공무원은 아직도 파견이 안 됐다. 파견공무원 현원은 정원 대비 3분의 2도 안 되는 30명에 불과한 실정이다(믿을 수 있는가? 시행령이 정한 날짜부터 거의 6개월이 지났다!).

뿐만 아니라 별정직 직원 중 가장 높은 직급이자, 특조위의 가장 중요한 지위 중 하나인 '진상규명국 국장'은 지난해 8월 채용공고를 통해 선발했다. 이후 인사혁신처 역량평가, 청와대 인사검증을 거쳐 11월 17일 겨우 인사혁신처 검증을 통과하는가 싶더니, 아직까지 임명이 되지 않았다. 생업을 정리하고 응모한 후보자에게 위원회가 미안하다고 해야 할 실정이다. 왜 가만히 있느냐고? 수차례 문의 전화를 하고 공문까지 보내도 아무런 답신이 없다.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여당이 추천한 상임위원(부위원장 겸 사무처장) 두 사람이 연달아 사임하고, 여당 추천 비상임위원 4명 중 2명은 총선 출마를 위해 새누리당에 입당하여 자격이 상실됐다.

나머지 2명 역시 지난해 11월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대응의 적정성'을 조사대상으로 한다면 사임하겠다고 하였으나, 아직까지 정식으로 사퇴서를 제출하지 않은 채 회의에 나오지 않고 있어 공석이다.

이런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견디기 어렵다. 그동안 너무도 많이 한 이야기라, 이제는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처럼 들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부족하다고 하지만 그 예산과 그 인원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다는 지적도 많이 들었다.

정부는 정말 집요했다

지난 2015년 4월 6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해수부 청사 앞에서 유기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며 진입을 시도하던 일부 세월호 유가족이 연행되자 호송을 막기 위해 다른 유가족들이 길바닥에 누어 있다.
▲ "유가족이 죄인이냐?" 지난 2015년 4월 6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해수부 청사 앞에서 유기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며 진입을 시도하던 일부 세월호 유가족이 연행되자 호송을 막기 위해 다른 유가족들이 길바닥에 누어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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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특조위 구성원들도 부족한 예산이나 인원 탓보다는,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다. 지난해 7월부터 채용되기 시작했지만 3분의 1은 11월 말에야 출근을 시작했다. 조사관들은 업무파악이나 조사방법에 관한 기본적인 교육도 못 받은 상태에서 12월 14일부터 사흘간 청문회를 준비해야 했다(청문회 장소나 주류 언론의 무관심, 증인들의 비협조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접어 두자).

그리고 그 1차 청문회 결과와 후속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16년 2월에는 특별검사 임명요구를 위한 준비를 해야 했고, 3월 28일에는 침몰 원인과 관련된 2차 청문회를 준비했다. 겉으로 드러난 일을 제외하고도, 각 기관에 대한 자료 요청과 정리·분석, 인양 현장을 비롯한 현지 출장 조사, 연구용역 발주와 결과물 취합, 사실조회, 피해자 전수조사 등의 일도 계속 진행 중이다.

올 3월 11일까지 접수된 진상규명 신청 사건이 모두 238건인데, 말이 238건이지 한 건당 조사해야 할 내용이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는 것도 많다. 사실 전문조사 인력도 아니고 조사 경력자도 많지 않은 직원들이 몇 달 안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다 조사된 내용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많지만, 기존 내용을 정리하는 데서 그칠 수는 없는 것이 특조위의 사명이다. 이는 피해자 가족들과 다른 국민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렇게 부족하나마 일을 하고 싶어도, 정부가 정한 예산이 올 6월 말까지만 쓸 수 있다. 특별법에 특조위의 활동기간이 '위원회가 구성된 때'로부터 1년이고, 6개월 연장이 가능하다고 돼있다. 위원회는 이미 6개월 연장 의결을 하였는데, 이 1년 6개월이 언제부터 시작되는지가 문제다.

정부는 특별법의 시행일인 2015년 1월 1일부터 '위원회가 구성된 때'로 본다는 것인데, 법 시행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시행령이 발효된 것이 5월 11일, 직원들을 채용하여 실질적으로 위원회 사무처를 구성한 것이 7월 27일, 첫 예산이 배정된 것이 8월 4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기가 막힌 해석이다.

특조위 입장은 물론이고 법률 전문가들도 1월 1일은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정부는 논쟁조차 하지 않고 6월까지만 예산을 배정해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위원회 활동기간을 (1년 6개월이라는 기간 자체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특별법 개정안이 19대 국회에 상정되었고, 지난해 9월 여야가 처리에 합의하기도 하였지만 소식이 없다.

예산만을 기준으로 활동기한이 6월 말이라면 이제 남은 시간은 50일이 채 안 된다. 238건이나 되는 신청 사건을 조사하고, 3차 청문회를 하고, 두 번째 특별검사 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아시다시피 세월호 특별법은 6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서명으로 제정되었다. 참사 이후 거리에서, 청와대 앞에서, 국회 앞에서 풍찬노숙을 하며 울어야 했던 피해자 가족들은,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서명하고 법 제정 운동을 벌였던 국민들은 아마 이 법 제정으로 많은 것이 달라질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우리가 낸 세금 중 일부라도, 국민을 위한 봉사자라는 공무원 중 몇 명이라도, 이 문제에 제대로 투입되고, 조사가 이루어져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주기를 기대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이나 함성이 아니라, 법률과 제도 속에서 국가기관이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길 기대했다.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세월호유가족이 지난해 12월 14일 오전 명동 서울YWCA에서 열린 세월호 특조위 제1차 청문회에서 상영 된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다시 눈물 터트린 영석 엄마 세월호유가족이 지난해 12월 14일 오전 명동 서울YWCA에서 열린 세월호 특조위 제1차 청문회에서 상영 된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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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정부가 특조위에 대해 취한 태도와 대우는 그러한 믿음과 기대를 무너뜨렸다. 법률에 의해 구성된 국가기관에 대한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위법한 상황이 계속됐다. 한 고비를 넘어 황당해하고 있으면 그 황당함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벌어진 입을 다물 틈도 없이 말이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벽을 보고 서있는 것 같은 무력감과, 그럴 능력과 힘도 없으면서 이 자리에 있는 자신이 부끄럽고 죄스러워 만성적인 우울함에 빠져 있다.

알고 있다. 이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점을. 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력하게 있으니 특조위가 할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당연한 질책이고, 대꾸할 말도 없다. 가족들의 원망을 대할 때 가장 속이 상한다.

또 하나, 수많은 제약 속에서도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특조위에 지원한 조사관을 생각할 때도 그렇다. 별정직 공무원(상당수는 변호사, 회계사, 기자, 연구자, 과거사 위원회 조사관 출신이거나 사회단체 활동가들이지만 그 밖에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사람들도 있다)뿐 아니라 부처에서 파견된 사람들까지 모두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고용기간 등 제약이 많은 환경임에도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감 하나로 이 불투명한 자리에 온 사람들이다.

청문회 준비나 조사 활동은 모두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비상임위원이라는 것에도 엄청난 고민을 했고 작은 일에도 늘 허덕이는 나로서는, 그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다. 난 그들을 보며 늘 놀라곤 한다. 이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역시 6월 이후 특조위가 어떻게 될 것인지다.

그래서 나는 정부가 이렇게 나오는 것이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예산이 아깝다는 생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만약 어렵사리 만든 특조위라는 조직을 이렇게 끝내고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대책들을 흐지부지해 버린다면, 그리하여 수많은 진상규명의 요구들을 '미제'로 두게 된다면, 그동안 우리사회가 들인 노력과 시간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정부가 배정했던 그 예산도 제대로 성과를 보지 못한 채 증발하는 것이다. 

겨우겨우 뽑아서 교육시키고, 이제 겨우 업무를 파악하고, 어느 정도 교육이 된 조사관들을 제대로 활용해 보지도 못하고 위원회를 끝낸다면 그 실익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동안 특조위 구성원들이 들인 시간, 노력뿐 아니라, 이 기구를 만들고 조정하고 지원하는 데 썼던 정부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특조위에 제대로 된 활동기간이 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쉬운 셈이 이 정부에게는 왜 그리 어려운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입니다.



태그:#세월호, #특조위, #해양수산부, #진상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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