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는 600만 명의 유태인, 300만 명의 소련군 전쟁 포로, 200만 명의 폴란드 인과 그밖의 "생존할 가치가 없는 존재"들을 학살했다. 이른바 열등 인종들, 곧 동성애자와 집시, 정치범과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이 몰살을 당했다. 나치 정권 당시 살해당한 정신·신체장애자와 정신병자의 수만도 2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독일 쾰른의 리하르트-바그너 가에 살고 있었던 예술가 군터 뎀니히는 이들 희생자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싶었다. 그는 나치 희생자들의 집 앞 보도에 '걸림돌'이라는 이름의 황동 블록을 까는 일을 시작했다. 1992년이었다.

가로와 세로 모두 10센티미터인 정방형의 황동판에 나치 정권이 학살한 이들의 이름과 간략한 생애 이력이 새겨졌다. 뎀니히는 "유럽의 전역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살았던 집 앞에 모두 합쳐 600만 개의 걸림돌이 깔려야 합니다"(19쪽)라고 말했다. 그의 바람이 통한 걸까. '걸림돌'은 양심적인 독일 시민과 유럽인들을 통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까지 독일을 비롯해 유럽 18개 국에 5만3000개의 걸림돌이 인도에 자리를 잡았다.

<걸림돌> 표지
 <걸림돌> 표지
ⓒ 살림터

관련사진보기

덴마크 태생의 영국 저술가 키르스텐 세룹-빌펠트는 '걸림돌'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역사를 탐문해 기록한 책 <걸림돌>(살림터, 2015년 12월)에서 "역사적 사건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항상 웅장한 구조물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억과 경고, 그리고 경외를 위해 이토록 현명하면서도 동시에 감동적인 추모 방식보다 더 이상적인 방식을 난 결코 생각할 수 없다.' - <걸림돌> 18쪽

저자는 유태인을 비롯해 동성애자, 신티와 로마(집시), 살해당한 정치범들의 비극적인 사연 12개를 담담한 약전(略傳) 형식의 이야기체로 풀어 나갔다. 개인의 전 생애에 초점을 맞추는 전기 형식과 이야기 문체를 쓴 이유가 뭘까. 저자는 기억 작업이 '습득(習得)'과 '소원(疏遠, 멀어짐)'을 뜻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데, 이 중 '습득'을 위해서인 것 같다.

우리에게는 공식적인 추모 문화가 있다. 이른바 '추모 작업'은 한편으로는 '부담을 덜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한 기억을 장기적으로 방해'한다. 희생자들은 분석, 이론, 통계 뒤로 사라지고, 그래서 기억되어야 할 사람들은 그저 '이름 없는 대상' 혹은 '수동적 희생자'로 인식될 뿐이다. 이러한 공식적 기억 작업의 또 다른 난점은 경직된 의식이다. (중략) 만일 추모를 하는 자들과 추모의 대상자들 사이에 내적인 관계가 없다면 추모 작업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위의 책, 226쪽

저자는 발문에서 한나 아렌트의 "문제는 우리의 적들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들이었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우리의 친구들'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일상적인 삶과 인간 관계 속에서 "책임과 무책임, 저항과 순응, 신뢰와 배신, 주저와 감행, 용기와 비겁, 권력, 탐욕, 권리, 양심 그리고 거절과 무시에 대한 기억"(227쪽)의 주인공이다.

그 기억의 주체들이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저자가 강조한 이 책의 목적처럼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그렇게 될 때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작업이 '소원'이 아니라 '습득'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저녁 인근 학교 한 선생님으로부터 노란 리본 500여 개를 전해 받았다. 4.16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이해 우리 학교 모든 학생들에게 하나씩 나눠 줌으로써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게 하고 싶어서였다.

<걸림돌>에 추천 글을 쓴 안경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서럽게 죽은 사람은 망각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무고한 희생자를 기억할 책무가 있다고 단언했다. 그다음 날 우리 반을 포함해 몇몇 학급에 들어가 노란 리본을 돌리며 '추모'와 '기억'의 의미를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의 가슴이나 가방이나 휴대전화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엄마 나야> 표지
 <엄마 나야> 표지
ⓒ 문학동네

관련사진보기

점심 무렵에는 동료 선생님 한 분으로부터 <엄마 나야>(난다, 2015년 12월)라는 제목의 시집 한 권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 생일시 모음"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34명의 시인들이 단원고 2학년 학생 35명의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를 썼다.

3학년 어느 반에 노란 리본을 나눠준 뒤 <엄마 나야>의 시 한 편을 낭송했다. 평범한 내용의 생일 '육성시'가 사진 속 아이들의 평범한 얼굴과 겹쳐지면서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상기된 표정과 안타깝게 흔들리는 눈빛의 아이들을 보며 시의 힘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시인들에게 육성 생일시 쓰기를 제안한 정신과의사 정혜신과 심리기획가 이명수는 청탁 메시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이들 부모님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이에게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으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중략) 치유적 관점에서 볼 때 부모님을 비롯해 남아 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통증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기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런 메시지인 것 같아서요.' - <엄마 나야> 4쪽

<엄마 나야>의 시편들을 읽고 있으면 아이들이 바로 곁에서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인다. 책 서지의 '지은이' 칸에는 직접 시를 쓴 시인 34명 중의 어느 대표 시인 이름 대신 학생 35명을 대표한 '곽수인'(단원고 2학년 7반)이 적혀 있다. '망자'가 시를 쓴 셈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걸림돌>의 저자가 강조한 '소원'이 아니라 '습득'에 가까운 기억 작업의 효과를 염두에 둔 조치가 아니었을까.

1980년대 어느 존경받는 교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약자에게 보내는 연민의 눈물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약자의 고통과 비참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다"로 바꾸고 싶다.

'걸림돌'과 '노란 리본'을 다시 떠올린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어느새 만 2년째가 되는 날이 다가왔다. 전국 곳곳에서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행사가 다채롭게 준비되고 있다. 내가 사는 이 조그만 도시 군산에서도 걷기 행사와 거리 캠페인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문득 이런 질문을 해 본다. 그 모든 기억 작업은 '습득'과 '소원'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걸림돌>(키르스텐 세룹-빌펠트 지음, 문봉애 옮김 / 살림터 / 2016.2.29. / 241쪽 / 1,3000원)
<엄마 나야>(곽수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12.17. / 260쪽 / 5500원)

덧붙이는 글 |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걸림돌 - 나치의 학살로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하여...

키르스텐 세룹-빌펠트 지음, 문봉애 옮김, 살림터(2016)


태그:#<걸림돌>, #<엄마 나야>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