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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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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톤보리가와. 해가 지자 화려한 네온사인과 예쁜 간판들이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 노시경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느껴지는 점은 일본의 여러 여행지가 우리나라에 비해 참으로 조용하다는 점이다. 시끌벅적해야 할 축제 기간에도 참가자들의 절제된 동작 속에 행사가 진행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런데 일본 내에서도 유독 사람들의 모임이 번잡하고, 도시의 문화가 일본경제의 침체에서도 벗어나 보이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오사카(大阪). 오사카를 여행하다보면 일본의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때가 많다. 

'먹다가 망한다'는 도시, 일본의 부엌이라는 오사카. 이 오사카에서도 먹거리가 가장 밀집한 곳이 도톤보리(道頓堀)다. 도톤보리는 낮에는 조용하다가도 밤이 되면 마치 다른 도시가 된 듯이 변색을 한다. 수많은 네온사인 속에서 젊은 남녀가 넘쳐나고 있다.

주변은 고급 상점가로 둘러싸여 있지만 도톤보리는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정겨운 곳이다. 나는 오사카의 야경과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해가 진 도톤보리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여러 이름난 먹거리를 빠트리지 않고 조금씩 먹어보기로 했다. 도톤보리의 수많은 맛집 정보를 알아보고 길을 나섰지만 어디를 먼저 가야할지 정해야 했다. 어느 맛집을 갈지 정하지 않고 나오면 거리의 수많은 맛집과 먹거리 속에서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도톤보리 마라토너'가 두 손 번쩍 들고 있는 이유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행 명소의 수많은 인파로 인해 여행의 느낌이 물씬 난다. 운하로 만들어진 도톤보리가와(道頓堀川)를 가로질러 난바(なんば)로 이어지는 에비스바시(戎橋) 위에는 여행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운하 위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켜지면서 도톤보리 주변은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 운하를 정비하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다고 하는데, 그 노력으로 인해 도톤보리가와 주변은 오사카의 관광 일번지가 되어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 다리를 함께 건너던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에비스바시 다리 위에서는 남자들이 처음 보는 여자들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
"지금도 젊은 남녀의 눈빛들이 번쩍거리는 것 같지 않아?"

과연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다리 위에 걸터앉아 주변을 탐색 중이었다. 도톤보리가와 위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속에는 도톤보리에서 가장 유명한 마라토너가 있다. 이 마라토너는 현재 글리코 사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지금은 도톤보리의 스토리 있는 상징이 되어 있다.

"저 마라토너가 왜 그렇게 유명한 거야? 어떻게 보면 평범하기만 한데. 그리고 왜 손을 번쩍 들고 서 있지?"
"저 친구는 일본의 글리코(glico)라는 제과 회사에서 만든 마라토너야. 글리코 회사의 과자를 먹고 오사카 일대를 돌아서 도톤보리로 골인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

오랜만에 글리코 마라토너를 보니 내가 다시 오사카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광고판은 수시로 바뀌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는 광고판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네온 광고의 내용도 전혀 바뀌지 않았고, 마라톤을 완주한 글리코 아저씨는 과거와 똑같이 손을 번쩍 든 자세로 골인하고 있다. 옛 광고판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지키면서 역사를 만들어버린 스토리텔링이 대단하기만 하다.

이 마라토너 광고판은 단순한 자세와 표정을 가지고 있지만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옛 광고판의 추억어린 디자인이 남아있어서 사람들을 더 잡아끄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광고판 앞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마라코너가 골인하는 모습을 흉내내며 사진을 찍고 있다. 에비스바시 여기저기서 양 팔을 번쩍 들어 올린 여행자들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카니도라쿠. 게 전문 식당으로 구운 게 등 게와 관련된 다양한 요리를 맛 볼 수 있다. ⓒ 노시경
에비스바시 건너편에는 화려하고 입체적인 간판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톤보리 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개성있는 간판들을 구경하는 것도 도톤보리 구경의 재미이다. 입체 간판에는 문어도 있고 용도 있고 복어도 있고 게도 있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유쾌해지는 간판들이다. 서울에도 강남역이나 명동에 이렇게 광고간판으로 유명한 명소를 만들면 관광산업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리를 건넌 나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본격적으로 맛집을 찾아갔다. 에비스바시 바로 남쪽에 큰 집게발을 가진 게 간판이 걸려 있다. 큰 게를 보고 한눈에 찾을 수 있는, 게 전문 식당 카니도라쿠(かに道楽)다. 도톤보리의 여러 간판 중 가장 크고 힘이 느껴지는 간판을 가진 식당이다. 자세히 보니 게의 다리가 천천히 움직인다.

식당의 이름같이 게 전문요리를 맛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인데 너무나 유명해서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오사카 현지인들도 가보고 싶어 하는 식당이다. 우리나라에서 먹기 힘든 게회, 찐 게, 게 샤브샤브, 게정식 등 메뉴도 다양한데 가격은 만만치 않다. 이 집은 음식의 양도 많지 않아서 게의 맛을 심오하게 음미하거나 식당의 명성을 느끼며 식사를 하는 집이다. 나는 1층 가게 앞에서 간단하게 파는 구운 게를 샀다. 잘 구워져 있어서 먹기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맛은 말 그대로 게의 맛,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먹거리 여행으로만 시간을 다 채우기로 했다
즈보라야. 배가 볼록한 복어 간판이 도톤보리 거리 위에 떠 있다. ⓒ 노시경
카니도라쿠 맞은편에는 배가 볼록한 복어 간판이 거리의 하늘에 둥둥 떠 있다. 복어 간판으로 유명한 즈보라야(づぼらや). 오사카는 복어회를 만드는 전문 자격증이 처음 만들어졌을 정도로 복어요리가 전통이 있는 곳이다. 복 우동, 복어튀김 덮밥, 복 맑은탕과 같은 저렴한 메뉴 중 친구와 함께 복 우동을 조금 먹어 보았다. 반찬으로 나온 잘 손질된 복어 껍질 무침이 참 쫄깃쫄깃하다. 부드러운 복어 맛은 우리나라와 똑같은데 우리나라 복어국의 마늘 같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국물 맛은 심심하다.

이 거리의 대표 먹거리는 누가 뭐래도 타코야키(たこやき)다. 타코야키는 잘게 썬 문어를 밀가루 반죽 안에 넣고 틀에 넣어 구운 후, 가다랑이로 만든 가츠오부시(かつおぶし)와 간장 소스, 마요네즈 등을 뿌려먹는 먹거리이다. 오사카 여행 시에 빠트릴 수 없는 먹거리인데 타고야키가 생겨난 곳답게 도톤보리의 거리 음식 중에서도 타코야키가 가장 많다.
혼케오타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따뜻한 타코야키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노시경
타코야키 굽기. 불판 위의 틀이 돌아가면서 타코야키가 뜨끈뜨끈하게 익어가고 있다. ⓒ 노시경
타코야키의 원조 가게인 혼케오타코(本家大たこ)를 가장 먼저 찾았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타고야키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맛이 비슷하다는 옆 가게로 갈까 생각하다가 계속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먹거리 여행으로만 시간을 다 채우기로 했고 숙소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불판 위 틀 속에 담긴 타코야키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타코야키 틀이 붕어빵 틀 돌아가듯이 재빠르게 여러 번 뒤집히면서 내 앞의 줄도 금세 줄어들었다.

타코야키를 사서 가게 앞에 서서 먹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개수가 가장 작게 담긴 타코야키를 사서 먹어 보았다. 음료와도 함께 먹을 수 있지만 타코야키만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 타코야키만 먹었다. 내가 주문한 타코야키 위에 놓인 가츠오부시가 저녁의 바람에 하늘거리면서 입맛을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타코야키 한 개를 찍어서 입속에 바로 넣었다.

"아, 타코야키 속이 너무 뜨거워. 이거 뱉을 수도 없잖아."

나는 어쩔 수 없이 타코야키를 호들갑스럽게 그대로 씹어 먹었다.

"겉은 뜨겁지 않은데 말이야. 속이 뜨겁네. 입천장을 데어버렸어."

나는 타코야키를 반으로 갈라서 식힌 후에 먹기 시작했다.
원조 타코야키 가게. 원조를 주장하는 이 가게는 타오야키 가게 중에서 줄이 가장 길다. ⓒ 노시경
도톤보리의 밤. 늦은 밤에도 도톤보리를 찾는 여행자의 발길은 줄어들지 않는다. ⓒ 노시경
이번엔 간장 양념을 발라서 타코야키를 먹어보았다. 타코야키 자체의 크기도 크고 안에 들어가 있는 문어 조각도 크다. 이 가게의 타코야키 반죽에는 문어 외에도 다진 야채와 다양한 내용물도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 먹는 타코야키보다는 훨씬 맛이 살아있고, 부드러운 반죽 안에 들어있는 문어의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도톤보리 입체 간판의 동물 중에서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하는 것은 역시 용이다. 거대한 초록색 용이 라멘집 지붕 위에 능청스럽게 앉아 있고 왼발로는 붉은 여의주까지 잡고 있다. 오사카 라멘집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긴류 라멘(金龍ラ-メン) 집. 도톤보리에만 많은 분점들이 있어서 눈에도 자주 띄는 곳이다. 진한 국물이 있는 라멘이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식당이다. 이 식당의 라멘 맛에 대해서는 다녀간 사람들의 평이 다양하게 갈리지만 나는 내가 직접 먹어보고 평가하기로 했다.  
긴류라멘. 서민적인 라멘 맛집에는 간이 좌석에 앉아 라멘의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 노시경
긴류라멘 분점. 긴류라멘 가게마다 서서 라멘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 노시경
길거리에 내놓은 소박한 나무 의자, 흰 천 위에 소박하게 적은 가게 이름에서 오래된 맛집의 정겨움이 풍겨 나온다. 20여 년 전에 와보았던 모습과 전혀 다름이 없을 정도로 식당의 모습은 변한 게 없다. 식당에 인기가 있으면 인테리어를 고칠 법도 한데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모습에서 전통에 대한 강한 고집이 느껴진다. 식당 안쪽에는 작은 다다미 형식으로 된 작은 좌석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라멘을 먹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정겨운 포장마차 같은 분위기가 있다. 직원들은 무심한 듯 하면서도 아주 친절하다.

순서를 기다리는 줄은 없었지만 좌석에는 모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오늘의 맛집기행 중 이곳에서 본격적인 식사를 하기로 했다. 종업원이 고기가 많은 라멘과 고기가 적은 라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해서 나는 고기가 많은 것을 주문했다. 라멘은 전혀 지체 없이 바로 나왔다.

라멘의 외관은 이름 있는 맛집의 라멘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단순하기만 하다. 나는 좌판 같은 좌석에 대충 앉아서 라멘을 맛보았다. 면발은 탱탱하고 바로 나온 뜨거운 국물은 시원했다. 고기 국물을 우려낸 육수가 진했다. 일본 어느 지방의 라멘보다 육수의 맛이 진했고 한국 사람들 입맛에도 가장 맞는 맛이다. 오늘 맛집 기행의 마무리로 삼을 만한 라멘집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곳이다. 

도톤보리, 여행지의 느낌과 함께 일본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다. 깊은 밤이 되었지만 사람들의 인파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에비스바시 다리 위에는 그리코 아저씨를 흉내 내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 있었다. 이 밤 시간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리는 곳은 오사카 내에서 도톤보리 뿐이다. 밤이 점점 지나면서 맛집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고 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는 곳은 술집만 남았다. 시원한 맥주 한잔 하고 싶은 시간, 그리고 분위기 속에 나는 있었다.
글리코 마라토너. 에비스바시 위에는 글리코 마라토너를 흉내 내는 사람들이 줄지 않는다. ⓒ 노시경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500 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 #일본여행, #오사카, #도톤보리, #타코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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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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