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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 전북시각장애도서관장
 송경태 전북시각장애도서관장
ⓒ 송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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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은 1년에 100권의 책을 읽고, 1권의 책을 쓴다. 2000년 석사 학위에 이어 2011년엔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엔 사하라사막 마라톤 250km를 완주했고, 2007년엔 고비 사막, 2008년엔 아타카마 사막과 남극대륙 마라톤을 완주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이라 불리는 코스를 4년 만에 완주했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세상이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불가능은 가능의 다른 이름'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번쩍'하는 섬광이 마지막으로 본 빛

1982년, 그는 군대에서 집중호우에 침수된 무기고를 정리하다 수류탄 폭발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번쩍' 하는 섬광이 그가 마지막으로 본 빛이었다. 입대한 지 40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21살 청년은 사고로 의가사 제대를 하고 집에 돌아갔다. 화기애애했던 집엔 웃음이 사라졌고, 친구들도 더는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절망했다. 집 앞 저수지에 투신하기도 하고, 철길에 누워 있기도 하는 둥 자살을 여섯 번이나 시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귀가 번쩍 뜨이는 사연을 들었다. 대학교 4학년 시각장애인이었는데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저는 시력 잃은 뒤에 배움을 포기했거든요. 시각장애인이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죠. 곧바로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그 사연이 사실이냐'고 물었어요."

방송국은 그에게 사연을 보낸 사람과 연결해줬다. 며칠 후, 그 대학생이 점자책 한 권과 지팡이를 들고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오돌토돌한 점자를 처음으로 만져봤고, '이걸 배우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대학생의 한마디에 그는 그 자리에서 점자를 모두 외웠다.

"저도 다시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거죠. 그날부터 제 도전이 시작된 겁니다."

그는 다음 날부터 지팡이를 갖고 홀로 대문 밖을 나섰다.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마다 "아서라, 혼자 다니다 구덩이에라도 빠지면 황천길 간다"라면서 말렸단다. 대학에 다시 다니겠다고 하자 친구들은 만류했지만, 부모님은 그의 선택을 응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제가 지팡이를 짚고 대문을 나서면 아버지가 발소리를 죽이며 뒤에서 저를 따라오셨대요. 제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물구덩이에 빠질 때도 옆에 계셨대요. 만약 그때 아버지가 '거기 위험하다, 이쪽으로 가라'고 손을 잡았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시각장애는 '신이 준 축복의 선물'

그랜드 캐니언 정상에서
 그랜드 캐니언 정상에서
ⓒ 송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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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제가 세운 3대 목표가 대학졸업, 결혼, 컴퓨터 배우기였어요. 이 3가지 목표를 다 이루는 데 28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넘는 마라톤을 시작했다.

"건강할 땐 마라톤의 '마' 자도 몰랐어요. 장애인 되고 나서, 라디오에서 뻥 뚫린 도로를 마라톤 마니아들이 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뻥 뚫린 길을 신나게 달려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6개월 연습해서 처음 5km 도전했죠. 그다음 10km, 하프, 풀, 울트라까지 하게 됐습니다."

큰 도전 속에서 두 아들을 키워내는 것도 소홀하지 않았다. 두 아들은 그의 못한 군 생활을 대신 마쳐주겠다며 공군장교(큰아들)·육군장교(막내아들)로 자원했다. 두 아들 모두 군대에 있을 때 취업까지 확정됐다. 교대에 다니던 큰아들은 군대에서 임용시험을 통과했고, 막내아들은 최전방에 복무할 때 은행에 지원해 최종 면접까지 합격했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도전을 보면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각장애를 '신이 준 축복의 선물'이라며 감사해 한다. 시각장애인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모두 감사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소위 말해 '뵈는 게 없으니까 무서운 게 없'죠. 제가 작년에 안나푸르나 정상 부근에서 셀파 배낭만 붙잡고 따라갔어요. 친구가 '경태야! 나 여기 올라오는데 울고 올라왔다' 하는 거예요. 올라오는데 폭이 30cm, 양쪽 절벽이 600m였다고 하더라고요. 이 구간이 40m, 50m 되는데 맨정신으로 못 가겠다 해서 기어서 갔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셀파 배낭만 잡고 룰루랄라 간 거잖아요. 안 보는 데서 오는 고마움이 있는 거죠."

그는 1998년 마라톤과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장애인 세계 최초 4대 극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그랜드캐니언 완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정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끝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저에겐 집 밖을 나가 동네 한 바퀴 도는 일이나,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일이나 똑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모험이거든요. 모험에 수반되는 고독과 극한 상황이 저에게는 일상이어서 사막도 에베레스트도 저에게는 특별한 곳이 아니에요."

그는 '계획했던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실천하기 전에 포기하지 않는 삶. 풍랑은 항상 전진하는 자의 것입니다. 도전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있고, 준비된 자에게는 미래가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4월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각장애, #도전, #감동, #극한마라톤완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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