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의 스틸컷. 스크린 수에 비해 관객이 제대로 동원되지 않고 있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의 스틸컷. 스크린 수에 비해 관객이 제대로 동원되지 않고 있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어마어마한 스크린 수를 확보했다. 그 숫자에 버금가는 관객이 좌석을 채워야 장사도 되고 명분도 선다. 그렇지 않다면, 80%에 육박한 예매율은 그저 스크린 숫자를 늘리기 위한 불순한 알리바이로 전락한다. 관객이 찾으니 스크린을 많이 배정할 수밖에 없다는 멀티플렉스의 논리는 그래서 위험하다. 얼마든지 선후 관계를 바꿔치기할 수 있단 얘기다.

스크린 수 1611개(아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상영 횟수 7376회, 관객 수 21만9652명, 매출액 점유율 75.1%.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아래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개봉일(24일)의 각종 수치다. 이날 전국 극장을 찾은 4명 중의 3명이 두 명의 슈퍼히어로가 치고받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본 셈이다.

하지만, 3월 넷째 주라는 전통적인 비수기를 극복하는 건 배트맨과 슈퍼맨이 짝패를 이뤘다고 해도 힘에 부쳐 보였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개봉 첫날 좌석 점유율은 고작 15.6%. 무려 141만1248개의 좌석을 확보했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관객 수는 21만9652였다. 좌석이 남아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압도적인 예매율을 믿은 채 무턱대고 엄청난 스크린을 열어젖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실제로, 개봉일인 지난 24일 오전 8시 <배트맨 대 슈퍼맨>의 실시간 예매율은 79.2%, 예매 관객 수는 21만 명을 넘긴 바 있다. 딱 예매 관객과 비수기에 걸맞은 관객들만이 <배트맨 대 슈퍼맨>의 상영 극장을 찾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스크린 수와 좌석 점유율의 관계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흥행 지표들, 무엇을 가리키나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의 포스터. DC 최고의 영웅 둘이 전면에 나섰지만, 흥행 성적은 썩 좋지 못하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의 포스터. DC 최고의 영웅 둘이 전면에 나섰지만, 흥행 성적은 썩 좋지 못하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결과적으로, 언론 기사 엠바고가 걸리는 등 흥행성이 채 검증되지도 않은 개봉 당일부터 2400여 개의 전국 스크린 중 1600개가 넘는 숫자를 한 영화에 몰아주는 작금의 시스템이 정상적인가 하는 물음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러한 예는 DC의 <배트맨 대 슈퍼맨>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검사외전> 논란이 있었고, 작년엔 마블의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있었다. 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처럼 '허당'은 아니었다. 직접 비교해 보자.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개봉 이틀째 수치는 개봉일과 엇비슷했다. 좌석점유율은 15.9%로 고작 3%가 올랐고, 관객 수는 22만8054명, 스크린 수는 1611개였다. 주말로 접어든 토요일(26일)에야 51만794명을 동원하며 수치에 걸맞은 이름값을 했다. 스크린 수가 1700개에서 딱 4개 모자란 1696개였다.

그러나 좌석점유율은 32.8%에 그치며, 개봉 후 한 달이 지난 <주토피아>(45.1%)에도 못 미쳤다. 여전히 스크린 수와 비교해 관객몰이에 나섰다는 인상은 주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이 정도 스크린 수라면 개봉 3일 만에 100만 돌파는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이어야 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의 누적 관객 수는 26일까지 97만7352명에 그쳤다.

<검사외전> <어벤져스2>와는 또 다르다

 영화 <검사외전>의 한 장면. <검사외전> 역시 스크린을 독과점하고 있다는 비판을 여러 차례 받았다.

영화 <검사외전>의 한 장면. <검사외전> 역시 스크린을 독과점하고 있다는 비판을 여러 차례 받았다. ⓒ (주)쇼박스미디어플렉스


지난 2월, 스크린 독과점을 두고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던 <검사외전>은 어땠을까. <검사외전>의 시작은 오히려 소박한 편이었다. 지난 2월 3일 개봉 당일 1268개로 출발한 <검사외전>은 차곡차곡 스크린 수를 늘려간 끝에 설 연휴의 복판이던 9일 1812개로 정점을 찍었다.

그에 앞서 개봉 2일 차에 1418개, 4일 차에 1636개, 개봉 6일 차에 1779개로 그야말로 착실하게 스크린 수를 넓혀 간 것이다. 같은 기간 좌석 점유율 역시 40%로 출발해 55%까지 도달하며 1·2위를 지켜나갔다. 멀티플렉스 관계자들이 최소한 "관객들이 찾는 영화에 스크린을 밀어줬다"는 변명의 여지는 있었던 셈이다.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아래 <어벤져스2>)의 경우도 <배트맨 대 슈퍼맨>과 비교 불가 수준이다. 작년 4월 23일 개봉한 <어벤져스2>는 개봉일 스크린 1731개로 출발, 개봉 주 주말인 3일과 4일 각각 1843개와 1826개로 정점을 찍었다.

이 기간 일일 관객 수는 각각 23일 62만2165명과 25일 115만5761명, 26일 101만3207명을 동원했다. 특히 25일의 일일 관객 수는 외화로는 최초로 하루 100만 명을 돌파한 역대 신기록이었다. 좌석 점유율 역시 38.3%로 출발, 25일은 63.7%까지 치고 올라갔다. <배트맨 대 슈퍼맨>과 달리 스크린 수에 걸맞은 관객 동원력을 입증했던 셈이다.

올 한 해도 이어질 멀티플렉스의 스크린 밀어주기

 CGV는 특정 영화의 상영관을 <검사외전>으로 변경하고, 이미 예매한 관객들에게 예매 취소를 부탁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나,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CGV는 특정 영화의 상영관을 <검사외전>으로 변경하고, 이미 예매한 관객들에게 예매 취소를 부탁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나,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 CGV


비수기라 절대적인 관객 수가 적지 않느냐고? 화제작에 스크린 수를 몰아 줘야 하지 않느냐고? 관객 혹은 언론 매체들이 멀티플렉스의 수익까지 걱정해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한 영화에 스크린 수를 무식할 정도로 몰아주는 작금의 행태에 대해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검사외전> 논란' 당시 지적했듯이(관련 기사 : 이제 제발 '매트릭스 극장' 좀 탈출하자)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1등 영화 밀어주기'는 배급사와 멀티플렉스 간 수직계열화를 넘어 '대기업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데 방점이 찍힌다. 4대 배급사의 텐트폴(성수기용 대작 영화) 한국 영화든, 할리우드 직배사의 블록버스터든 소위 '될 만한 영화'들은 높은 예매율을 근거 삼아 1600개나 1700개 스크린부터 열어젖힐 수 있는 분위기가 이미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좌석 점유율이 턱없이 낮았던 <배트맨 대 슈퍼맨>이 그 출발로 볼 수 있다. 경쟁영화와의 대진표가 중요하긴 하지만, 오는 4월 28일 개봉 예정인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를 비롯해 5월의 <엑스맨 : 아포칼립스>나 8월의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같은 인지도나 흥행성 높은 작품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그건 7·8월에 집중되는 한국 텐트폴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그들만의 '밀어주고 끌어주기'의 폐해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점은 널리 지적된 바 있다. 멀티플렉스를 찾은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스스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볼 (다양한) 영화가 없어서 스크린 수 1위, 2위 영화의 관람을 강요당하는 작금의 현실 말이다.

어떡하나. 자극은 원래 더 큰 자극과 욕망을 불러오는 법. 더 많은 수익을 갈망하는 멀티플렉스들의 이러한 스크린 수 '올인'이 올해 더 거세질 전망인 것을. 미국에서조차 혹평 일색이며 한국에서도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배트맨 대 슈퍼맨>. 이 DC코믹스의 야심작에 쏠린 1700개에 육박하는 스크린 수가 이러한 스크린 독점과 멀티플렉스 카르텔의 폐해를 다시금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배트맨대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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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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