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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자 정치칼럼니스트인 마우리시오 라부페티가 쓴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은 게릴라 전사에서 '세계 최고의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정치인이 된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에 관한 평전이다. 저자는 공과를 분명히 하는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무히카를 조명한다.

무히카는 국제적 지지와 국내적 비판을 동시에 받았고, 몇몇 정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대통령 무히카'와 '자연인 무히카'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치적 언어'와 '생활 언어'도 큰 차이가 없다. 특히 무히카는 재임 기간 동안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설과 카메라 밖의 삶을 일치시키고자 했다. 이것이 '별난' 대통령에게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읽는 내내 '누구와' 계속 비교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불편한' 독서가 되고 말았다. 무히카는 정치철학과 삶의 방식 등 여러모로 청와대 '안주인'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국가의 품격과 수준은 그 나라 정치 지도자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우루과이의 현대사는 무히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대통령이면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만들어 낸 '조용한 혁명'은 무히카가 우루과이 역사에 남긴 빛나는 유산이다.

'무소유의 삶'을 택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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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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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히카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산다. 그는 대통령이면서 농부다. 보통의 국가 원수들이 화려한 저택이나 관저에 사는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간단한 보안시설과 두어명의 경찰이 집을 경비한다. 물론 이 파격적인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는 여론도 있다. 우루과이 국민 중하층 정도 수준의 집에 거주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검소하다는 칭찬과 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는다.

세계는 열광했다. 외신들은 무히카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무히카는 이런 평가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자신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절제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무히카는 알자지라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많이 필요하면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절제할 줄 아는 것이지, 가난한 것이 아니다. 나는 수수한 사람이다.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 물질적인 것에 얽매여 있지 않다. 왜? 시간을 더 갖기 위해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더 갖기 위해서. 자유는 삶을 살아갈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무소유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50쪽)

무히카는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추구한다. 이런 철학은 그가 대통령 월급의 87%를 기부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는 것이 곧 '자유'라고 생각한다. 무히카의 월급은 29만 페소(약 1만 달러)다.

무히카는 "나에게는 농장이 있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사는 방식이 바뀐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 월급은 내게 넘친다. 누군가에게는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남는다"(52쪽)며 우루과이의 협동 제도인 집 짓기 프로젝트 '플란 훈토스'에 기부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2015년 연봉은 2억504만6000원이다. 월급으로는 1708만 원(보조금과 식대 제외)이다. 무히카를 보니 우리나라 대통령은 급여를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진다.

'대통령' 이전에 '시민'이고자 했던 무히카

무히카 정부 시기는 우루과이 현대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기간이었다. 그는 불법 마약거래 근절을 위해 마리화나의 국가 관리를 통한 합법화를 강행했다. 물론 호불호는 엇갈렸지만 무히카는 이 문제에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또한 대통령으로서 소득재분배 같은 문제를 담론 이상으로 밀어붙이는 데 실패했다.

저자는 "이전 정부로부터 이어받은 조세 개혁에는 소득세도 포함되었는데, 정규직 노동자들을 주 대상으로 한 이 악명높은 '총소득세' 덕분에 우루과이 정부는 경제 성장을 지속할 새로운 자금줄을 잡게 되었고, 이로써 재분배에 관해 무히카 대통령이 늘어놓은 장광설은 무의미해졌다"며 "우루과이는 무히카 정부 5년 동안 부자가 더 부유해지는 나라로 변모하고 말았다"고(240쪽) 평가했다.

그러나 무히카가 세계에 던진 메시지는 묵직하고도 울림이 컸다. 그는 2014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무히카는 현 인류가 당면한 생태 위기에 대해 "그 원인은 우리가 만든 문명의 모델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의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더 나가서 "내가 말하는 것들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발전이 행복의 방해물이 될 수는 없다. 발전은 인류의 행복, 즉 이 땅위에서의 사랑, 인간관계, 자녀 돌보기, 친구 사귀기, 기본적인 것 소유하기 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216쪽)고 주장했다.

"우리는 비물질적인 오래된 신들을 희생시키고, '시장 신'을 사원에 모시고 있다. '시장 신'은 우리에게 경제, 정치, 습관, 삶을 설계해주고, 할부금과 카드로 외적인 행복까지 융자해준다. 우리는 소비하고 또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끼고, 그렇게 못할 경우 좌절과 가난을 짊어지고 급기야 스스로를 소외시킨다."(2013년 유엔총회 연설, 51쪽)

저자는 "무히카는 '대통령 무히카'를 비판하기 위해서 '시민 무히카'로 자신의 역할을 바꿀 수 있는 사람"(158쪽)이라고 했다. 정치권에 있으면서도 정치권에 비판적이고 자신의 연설을 삶과 일치시키고자 했으며 대중과 지속적으로 친밀감을 맺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장 게릴라 출신인 무히카는 정치적 직관과 카리스마를 갖고 있으면서도 소박하고 친근하게 청충을 끌어들이는 데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대통령이 무히카는 여느 정치인과는 다른 종류의 유산을 남겼다. 역사가 헤라르도 카에타노는 "무히카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방식, 그리고 생활방식을 통해 대통령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사람으로 기억될 것"(296쪽)이라고 했다.

저자는 "무히카가 시도한 혁명은 이념적이지도 않고, 교조적이지도 않으며, 그가 젊은 시절에 했던 것처럼 폭력적이지도 않다"며 "그것은 그저 단순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세상의 많은 이들이 실현되기를 소망하는 삶에 대한 메시지와 반성과 생각이 동반된 법률적이고 실질적인 변화의 축적"(41쪽)이라고 했다. 무히카의 재임 기간을 '조용학 혁명'으로 부르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지음 / 부키 펴냄 / 2016.2. / 15,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지음, 박채연 옮김, 부키(2016)


태그:#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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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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