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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보름 남짓. 쌍둥이 남매는 추가로 학원을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하고 싶었는데 못했어요.

입학식 날부터 일주일쯤 휴가를 내고 친구 엄마들과 인사도 할 겸, 학원도 알아볼 겸,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저의 사정과 상관없이 돌아가고, 갑자기 1월부터 지금까지 두 번이나 업무 변경이 생기는 바람에 자리를 비우기가 힘들어졌습니다.

3월 중순 학부모 총회 때도 휴가를 내야 하겠기에 입학식 날 하루만 겨우 휴가를 냈고, 입학식 이후 오후 시간에는 아이들 준비물에 이름표 붙이느라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입학식 날 나눠준 준비물 리스트에 따라 색연필, 사인펜, 크레파스, 연필, 공책, 클리어 파일 등 쌍둥이 남매용 학용품에 붙인 이름표가 200개가 넘습니다. 담임선생님과 쓸 준비물뿐만 아니라 돌봄 교실에서 쓸 준비물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분량의 문구류를 준비해야 했거든요.

초등학교 입학 준비물 목록
▲ 준비물 목록 초등학교 입학 준비물 목록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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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에 이름표 붙이기
 준비물에 이름표 붙이기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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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왜 학원 안 보내줘?"... 아이의 볼멘소리

입학식 행사는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유치원이나 동네친구 중 누가 같은 반인지 확인하는 것 이외에 특별한 것 없었어요. 하지만 입학식 날 오후에는 다음날의 등교 준비를 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학원을 사전답사하려던 제 계획은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8세가 됐지만, 결국 쌍둥이 남매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의 주(主) 기관만 변경됐을 뿐입니다.

반면 주위를 보면 초등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영어나 피아노, 태권도 등 다양한 학원에 보내기 시작합니다. 같은 유치원을 졸업한 엄마들끼리,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엄마들끼리 모임이 형성되고, 그룹을 형성해 삼삼오오 학원을 보냅니다. 요즘 엄마들 표현에 의하면 '아이들 스케줄 짜기'라고도 부른다는군요.

방글이는 유치원에서 단짝처럼 지내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됐는데, 그 아이의 엄마가 함께 피아노 학원에 보내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또 땡글이 역시 같은 반이 되지는 못했지만 유치원 단짝 친구의 엄마가 함께 태권도를 보내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왔어요.

그러나 즐거운 마음도 잠시뿐. 토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 학원과 아직까지 상담을 하지 못해서 쌍둥이 남매는 피아노도 태권도도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다른 친구와 함께 손잡고 피아노 학원으로 가거나, 방과 후 수업 후 태권도 차량에 탑승하는데, 쌍둥이 남매는 돌봄 교실로 가야 하기 때문에 같은 학원에 등록하더라도 친구와 손잡고 다니는 즐거움을 누리기는 힘들 거예요.

엄마의 게으른 학원 탐방을 탓하듯 입학 다음날 학교에 다녀온 방글이가 "친구 M은 같은 반 친구 S랑 같이 피아노 가는데 나는 왜 안 보내줘!"라고 볼멘소리를 하더군요. 빠른 시일 내에 꼭 보내주마하고 약속하며 상황을 무마시켰지만 조금은 미안하고 조금은 속상했습니다. 입학 준비물을 예비소집일처럼 사전에 안내해줬더라면 한꺼번에 준비하느라 힘 빼지 않았을 텐데…. 그런 배려가 부족한 학교 행정이 아쉬웠습니다.

시간에 쫓기고 쫓기는 워킹맘, 조급해지는 마음

아직 경험치가 쌓이지 않아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주위에서 귀동냥한 얘기에 따르면 전문성이 필요한 예체능 과목은 학원에 보내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학교에 가더라도 아이들이 학원을 뺑뺑 도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고, 그 결심이 변한 것도 아닙니다. 또 주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막상 학교에 가보니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엄마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하나같이 3월을 시작으로 다양한 학원 스케줄을 준비해뒀더군요.

아직은 적응하고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들의 이야기에 귀가 팔랑거려 전문(?)학원에 보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네요,

돌봄 교실이 끝나고 난 뒤 한두 군데의 학원까지 다녀오면 놀 시간이 없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돌봄 교실을 안 하고 학원만 매일 서너 군데씩 돌리면 여기서 저기로 이동만하다가 하루가 끝나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를 시간이 없습니다. 소문을 모두 신뢰하진 않지만 방과 후는 제가 원하는 만큼의 전문성이나 심화 학습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주고 아이 스스로 공부 습관을 기르길 바랄 수만도 없습니다.

학원을 돌리는 것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에 끌려다니는 악순환의 시작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여러 신문 기사와 주변의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어요. '학원 돌림' 속에서 아이들은 병들고 부모나 조부모는 노후 대책 없이 자녀 교육이라는 개미지옥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악순환에서 나가거나 혹은 다 같이 그 판을 깨자고 일어서는 시기가 와야 한다고 공감하고는 있지만, 제가 거기서 홀로 빠져나오기는 너무 두렵습니다. 저만, 아니 제 아이만 뒤쳐질까봐 두려운 것이죠. 게다가 저는 회사일 때문에 시간을 충분하게 마련하지 못하는 워킹맘입니다. 어떤 일이든 시간에 쫓기고 어수룩합니다.

3월은 적응하는 달, 탐색하는 달. 시간이 필요해요. 저에게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과 학교에 적응하는 시간, 친구를 사귀는 시간, 돌봄 교실에 적응하는 시간을 좀 더 여유롭게 지켜보고, 방과 후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지켜봐야겠어요. 그 뒤에 학원을 선택해도 늦지 않겠죠.

우선 '규칙적인 생활'부터 시작하자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래도 시간표를 만들어줬습니다. 알림장의 앞 페이지에 각각 붙여주고, 냉장고 벽에도 붙여서 아이들을 돌보는 누구나 참고할 수 있게 해뒀습니다. 비는 시간마다 무엇을 더 시켜야 할지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고, 사용해야할 시간의 특색마다 색깔을 달리하면 좋겠지만 시간표를 만드는 것도 겨우 짬을 낸 워킹맘,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저 지금은 요일별로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만 우선으로 가르치는 수밖에요.

1학년 시간표
▲ 1학년 시간표 1학년 시간표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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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무엇이든 더 해주지 못해 마음이 편하진 않지만, 남들이 한다는 것에 휩쓸려 무작정 시작하다가 '이게 아닌데?'라며 우회하고 조정을 거듭해야 하는 건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1학년의 시작. 3월은 이제 겨우 절반이 지나갔을 뿐인데 초등학교 입학을 열 번쯤 한 것 같이 힘든 건 저뿐일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쌍둥이육아, #워킹맘육아, #70점엄마, #초등학교,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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