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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사실 잔인한 것이 많다. 백설공주도 그렇고, 헨젤과 그레텔도 그렇다. 잔혹동화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상에서 읽을 수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런 잔인한 이야기를 걸러내고 수정해서 아이들이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의 옛이야기 중에도 전해지는 그대로 보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잔인한 것들이 많다. 아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교훈적인 목적을 가지고 조금 바꾸거나, 그림을 덜 무섭게 그린다. 그런데 보림에서 나온 <여우 누이>는 다소 무섭다. 처음 이 책을 샀을 때 아이들은 무서워서 읽지 않겠다고 했다. 읽어 주려고 해도 거절했다.

사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의 그림은 예쁘고, 귀엽고, 깜찍하고, 내용은 착하고, 귀엽고, 서로 돕는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 생각을 처음 깨준 책이 <아툭>이다. 그림체는 우울한 푸른 색 일색이었고, 내용은 복수를 꿈꾸는 아툭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어린이 책 연구 모임에서 잠깐 얻어 들은 것에서 보면 이런 우울한 책도 아이들에겐 필요하다고 한다.

사랑과 증오에 대한 책이다.
▲ 아툭 표지 사랑과 증오에 대한 책이다.
ⓒ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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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 자라면서 불안과 공포, 질투 같은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겪게 됩니다. 따라서 부정적인 감정이나 갈등 요소들을 무조건 가리고 덮어서 보여 주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린이 나름대로 부정적인 감정이나 갈등에 적절히 대처하고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보림 <여우 누이>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가 보림에서 나온 <여우 누이>의 그림은 무섭다. 여러 종류의 <여우 누이>가 있겠지만 보림에서 나온 <여우 누이>가 가장 무서울 것 같다.

부부가 딸 낳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는 여우. 여우는 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
▲ 보림에서 나온 <여우 누이> 표지 부부가 딸 낳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는 여우. 여우는 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
ⓒ 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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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아들이 <여우 누이>를 다시 읽었다고 하기에 설거지하면서 들을 테니 줄거리를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말해 달라는 내 부탁에 아들은 쭉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그러다 문득 여우 누이와 아버지는 불통으로 인해 불행을 자초한 현대인의 한 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여우 누이는 왜 사람이 되려고 했는지 궁금했다. 여우로서의 생활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무엇이 여우로서의 삶에 만족은 못하고 다른 이의 생명을 앗아가면서까지 자기 정체성을 바꾸려 한 것일까?

나는 여우 누이가 요즘 SNS 상에서 다른 사람의 일상을 그대로 가져다가 마치 자기인 것처럼 꾸미는 이른바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남이 되고 싶어 하는 것, 다른 이의 삶을 부러워 하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고 싶게 되는 것이 바로 '리플리 증후군'이다. 자신에게 만족하는 못하는 것의 결과는 불행뿐이다. 결국 여우 누이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가시에 찔리고, 불에 타고 물에 빠져 죽게 된다. 고통스럽게.

두 번째 인물은 아버지다. 아들만 셋을 둔 아버지는 만족하지 못하고 딸을 바랐다. 빌고 또 빌어 딸을 낳았는데 이는 성황당 뒤에서 이 부부의 기도를 들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여우가 변한 것이다. 날마다 가축들이 죽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밤새 확인하게 한다. 하지만 지켜 보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잠이 들어 보지 못했고, 셋째 아들은 다리를 꼬집어 가면서 졸음을 쫓아 드디어 누군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바로 누이였다. 셋째 아들은 다음 날 아버지에게 밤에 본 것을 사실대로 말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막내 아들을 내쫓았다.

이 대목에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답정너'가 보였다. '답정너'는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에서 준 말이다. 답을 이미 내 놓고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질문하거나, 원하는 답이 아닐 경우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 이런 모습 또한 불행을 가져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아버지가 셋째 아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그날 밤에 아들과 함께 지켜보기만 했더라도 온 가족이 다 죽게 되는 그런 불행은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막내 딸이 자기 자신을 죽이려고 다가 오는 모습을 볼 때 그 마음은 어땠을까? 셋째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로 가슴을 쳤을 것이다.

여우 누이가 하늘에 그려져 있다. 여우가 아버지의 마음을 조종하는 걸까?
▲ 쫓겨 나는 셋째 아들 여우 누이가 하늘에 그려져 있다. 여우가 아버지의 마음을 조종하는 걸까?
ⓒ 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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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밤새 망 보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한 두 아들, 소통하지 않았던 아버지, 자기 자신에 만족하지 못한 여우는 모두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다. 여우와 아버지 외에 불행한 죽음을 맞는 사람에는 두 아들과 어머니가 있다. 여기서 어머니에 대해서는 거의 나오지 않지만 다른 두 아들 역시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이에 반해 셋째 아들은 밤새 다리를 꼬집어 가면서 자기 할 일을 성실히 수행했고, 자기가 본 것을 그대로 아버지에게 전달했으며, 아버지가 믿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내쫓는데도 아버지의 말을 따른다. 여러 해가 흘러도 집 생각을 하며 식구들을 걱정했다. 결국 여우 누이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셋째 아들이며, 여우를 물리친 이도 셋째 아들이다. 이 이야기 속에 숨은 교훈은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제서야 하게 된다.

전해 오는 이야기들은 이야기가 주는 재미도 있지만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가르침이 있다. 처음엔 이 <여우 누이>가 주려는 교훈이 무엇일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모든 이야기가 다 교훈적인 것은 아니고 단지 흥미만을 주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아들이 조잘조잘 들려 주는 줄거리를 들으면서 번뜩, 다른 이와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노력하지도 않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가져 오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발행하는 '투게더광산톡'에도 송고되었습니다.



태그:#여우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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