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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 줄 알았던 누리과정 예산문제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전체 지방교육청 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한 곳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감사원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7개 지방교육청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금 집행방법이 달라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이르면 3월 중 어린이집의 결제 시기가 도래하게 되면 논란이 재연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미봉책으로만 일관할 것인지 답답합니다.

중앙정부, 지방교육청 살림살이 모두 빠듯해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영유아 누리과정(만3세-5세) 예산의 전액 국고 지원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영유아 누리과정(만3세-5세) 예산의 전액 국고 지원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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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5일을 기준으로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하는 국가채무 시계가 600조 원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2012년 말 국가채무가 443.1조 원이었으니 3년 만에 150조 원 이상이 늘어난 것입니다.

게다가, 2015년 추경예산 기준 관리재정수지(전체 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한 수지)가 46.5조 원 적자였습니다. 2013년에는 23.4조 원, 2014년 25.5조 원 적자였으니 3년 동안 총 95.4조 원의 적자가 발생했습니다. 중앙정부 살림살이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교육부는 2015년 예산 편성 시 기획재정부에 누리과정 예산 2.2조 원을 요청했었습니다. 교육부도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앙정부의 예산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가 전액 삭감을 했습니다. 아마도 중앙정부 살림살이가 너무나 빠듯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지방교육청 상황은 어떨까요? 지방교육청 재정이 어렵다는 것은 중앙정부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입니다.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 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계획을 세웠던 2011년, 중앙정부는 2015년이 되면 지방재정교부금이 49.4조 원이 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39.4조 원밖에 안 되었습니다.

2015년에 6.1조 원, 2016년 3.9조 원 지방채를 발행하여 교육예산을 메꾸고 있다는 것은 현재 교육재정이 정상적이지 않고 큰 무리가 오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도입한 누리과정, 지금 와서 포기?

지난 1월 26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보육대란 책임 회피 박근혜 정권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서있다.
 지난 1월 26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보육대란 책임 회피 박근혜 정권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서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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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애초부터 감당할 수 없었던 정책을 무리하게 도입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재정여건을 감안하면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정말, 누리과정을 축소해야 할까요?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1년과 2012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누리과정(무상보육) 정책을 도입했을까요?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부담되는 줄 알지만 누리과정을 도입한 것 아닐까요? 이제 와서 누리과정을 포기한다면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초저출산현상의 기준인 1.3명이 안 되어 아직도 전 세계 최하위권입니다.

우리나라의 세금에 대한 불신과 저항은 뿌리가 깊고 강력합니다. 굽힐 줄 모르는 박근혜 정부가 거의 유일하게 정책을 뒤집은 경우가 2015년 연말정산 파동이었습니다. 국민들의 세금 규탄이 커지자 논란이 되는 공제를 모두 원상 회복시켰습니다.

그런데 세금에 대한 불신과 저항의 배경에는 내가 낸 세금이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내 주변 이웃에게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복지 체험이 부족한 것도 주요한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금 걷어서 쓸데없는 개발사업이나 하고 선심성 행사나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세금에 대해서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2010년부터 시작된 보편복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상급식에서 시작해서 누리과정 그리고 기초연금까지 하나씩 보편복지 제도를 도입해 왔습니다. 초등학교 이전의 자녀를 둔 부모, 초·중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 그리고 65세 이상의 어르신을 부양하는 가족들 모두 무언가 정부로부터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내가 낸 세금이 엉뚱하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주변의 이웃에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체험이 쌓이고 쌓이면 세금에 대한 불신과 저항이 조금씩 녹을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 목적세 도입하여 누리과정 예산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2013년 8월 8일, '사회복지세 도입'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기자회견
 2013년 8월 8일, '사회복지세 도입'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기자회견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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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을 부담할 재원이 지방교육청에도 없고 중앙정부에도 없다면, 국민들이 조금씩 부담하는 것은 어떨까요? 누리과정 예산을 위한 사회복지 목적세를 만들어서 다 같이 부담해 보는 것입니다. 누리과정의 필요성과 혜택을 체감하고 있으니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 목적세를 설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예를 들어 2016년 예산상 법인세가 46조 원이니 법인세에 10%를 부가하여 사회복지 목적세를 걷으면 4조 원의 재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어렵다면, 여유가 있는 대기업에만 증세가 되도록 하는 방안도 가능합니다. 어렵게 만들어낸 저출산 대책을 여기에서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쉽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누리과정 예산을 보통교부금이 아니라 목적교부금으로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지방교육청의 다른 예산과 섞지 말고 별도로 관리하자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서 그 재원도 별도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사회복지 목적세로 거두어 우리의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보육을 받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별도 예산이 필요한 것은 누리과정뿐만이 아닙니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기초연금도 조만간 중앙정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처음 도입부터 소득수준에 따라 일부를 배제하고, 기초생활보장대상자와 국민연금 가입자 역차별을 만들어 두었는데 재원이 부족하다고 점점 더 누더기로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누리과정뿐만 아니라 기초연금의 안정적인 재원조달을 위해서도 사회복지 목적세는 필요합니다.

보수정부의 성과로 역사에 기록되기 위해서는

누리과정과 기초연금은 보편복지 바람이 낳은 성과이고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합의한 정책이다. 더구나 구체적인 기획은 보수정부가 한 정책입니다. 그 정책들은 일회성으로 민심을 얻자고 만들어낸 정책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나온 정책들입니다. 이 정책들이 재원 문제 때문에 사라진다면 그 정책을 기획해낸 고민이 물거품이 됩니다.

반면 사회복지 목적세를 신설하여 예산문제를 해결해 그 정책들이 정착된다면, 보수정부가 기획한 복지정책이 우리나라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고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야당도 증세논의를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책임 있는 수권정당임을 자임한다면 재원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집권당이 아니라고 복지정책이라고 고사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공당의 자세도, 집권의 비전을 가진 정당의 자세도 아닙니다.

4월 총선 공약으로 누리과정 예산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보편복지를 위해 최근에 도입했거나 앞으로 도입할 정책을 위한 예산 확보를 위해 사회복지 목적세를 신설하자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국민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리과정 시한폭탄이 조금씩 다가오는 지금.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덧붙이는 글 | 프레시안에 2월 23일 자에 실린 <보육 대란, 증세로 돌파하자> 기사를 다듬은 글입니다
홍순탁 시민기자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회원입니다.



태그:#누리과정, #사회복지 목적세, #증세, #보육대란, #내가만드는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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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는 회계사입니다 '숫자는 힘이 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쎈 숫자를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포장하여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을 시민의 편에 서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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