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살 당하는 소녀들 일본군이 소각명령에 따라 위안부 소녀들을 총살하려는 장면

▲ 총살 당하는 소녀들 일본군이 소각명령에 따라 위안부 소녀들을 총살하려는 장면 ⓒ (주)와우픽쳐스


2016년 2월 스크린에 재현된 두 개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귀향>(鬼鄕)이고, 다른 하나는 <동주>이다.

영혼이라도 돌아와야 할 꽃다운 소녀들

끌려가는 소녀 일본군에 끌려가는 소녀 '정민'

▲ 끌려가는 소녀 일본군에 끌려가는 소녀 '정민' ⓒ (주)와우픽쳐스


<귀향>은 단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위안부 소녀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소녀들이 잔혹한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 위안부로 끌려가서 그중 일부만 돌아왔다. 영화는 그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비극의 기록이다.

"강일출 할머니의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그림을 보고 이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 그 그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소녀들이 타향에서 불타며 외롭게 돌아가셨으니 영화에서나마 고향으로 모시고 싶었다." - 감독 조정래

이 영화가 개봉되기까지 14년의 세월이 걸렸다 한다. <귀향>이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는 것은 이 작품의 제작비 마련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것을 말해주며 숱한 난관을 이겨낸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된 것도 결국 개미 같은 국민 후원자들의 노력과 개봉관을 늘려달라는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감독 조정래의 말처럼 이 작품은 영화를 통한 씻김굿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시점의 무녀 또한 성폭력의 상처를 지닌 소녀로 접신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위안부 소녀들이 폭력에 유린당하는 참상을 목도하게 된다. 역사 교과서 속의 5.18의 상처가 <모래시계>나 <화려한 휴가> 때문에 사람들의 머리가 아닌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듯이, 불에 태워지고 총살당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내내 힘들고 괴로웠다.

끔찍한 고통을 겪었던 소녀들의 아픔에 우린 진정 공감할 수 있을까.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일본군의 모습을 보면서 우린 같은 인간으로서 반성할 수 있을까. 허구가 아닌 실화를 토대로 한 불편한 진실이기에 그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위안부 생존자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증언과 증거가 있음에도 여전히 일본 정부는 진정한 사과도 하지 않고 진상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슬픔과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살아남은 자 또한 상처를 기억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함께 끌려가 그 참혹한 지옥에서 죽은 친구 '정민(강하나)'의 시신을 두고 겨우 살아 돌아온 '영희(서미지, 손숙)'는 무녀(최리)를 통해 과거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 한 맺힌 눈물의 해후를 하게 된다. 그렇게 머나먼 과거의 시간에서 현재로 귀향한 '정민'은 비로소 안식에 든다.

누가 저 청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윤동주와 송몽규 기차를 타고 함께 가는 두 사람

▲ 윤동주와 송몽규 기차를 타고 함께 가는 두 사람 ⓒ 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 <동주>는 감독의 말처럼 한 장의 흑백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컬러가 난무하는 세상에 흑백이라니 다소 도전적인 모험이라 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은 저예산 영화이다. 그러나 투자 대비 효용은 단순한 손익분기점으로 말할 것만은 아니다.

"흑백사진으로만 봐오던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열사 스물여덟 청춘의 시절을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낸 이분들의 영혼을 흑백의 화면에 정중히 모시고 싶었다." - 감독 이준익

영화 <왕의 남자>와 <사도>를 기억하는 이라면 이 영화는 담담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정극이다. 서사는 역순행적이지만 영화는 시종 흑백의 톤으로 1943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윤동주의 시를 곁들인다. 영화로 보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인 셈이다. <동주>에서 극적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동주(강하늘)'와 '몽규(박정민)'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듯 나라가 없는 암담한 시기에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에 대한 지식인의 고뇌일 것이다.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윤동주 윤동주의 시집 출판에 도움을 주겠다는 일본인 여학생

▲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윤동주 윤동주의 시집 출판에 도움을 주겠다는 일본인 여학생 ⓒ 메가박스㈜플러스엠


송몽규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윤동주와 함께 동인지 간행과 작품 품평회 등을 열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두 사람은 바늘과 실의 관계인 것 같지만, 사상까지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살아온 삶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송몽규는 독립운동에 직접 뛰어들어 주도적인 활동을 했다면 윤동주는 주로 서정적인 내면의 소리를 통해 사유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송몽규는 한국인 유학생을 모아놓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체포, 기소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힌 후 1945년 3월 7일 옥사하였다. 취조하는 형사의 말처럼 윤동주는 송몽규가 주도한 독립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수감되었고, 같은해 2월 16일 옥사하였다. 사인은 영화에서 보듯 생체실험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청년 '동주'와 '몽규'는 이역의 감옥에서 광복을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미쳐 돌아가는 일제 군국주의 시대에, 그것도 우리말을 할 수도 쓸 수도 없었던 폭압의 시절에 조선어로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슬픈 천명'의 시인 윤동주. 생전에 자필시집을 내려다 고초를 당할 것이라는 주위의 만류에 뜻을 이루지 못했던 윤동주는 죽어서야 시인이 되었다.

<동주>의 '동주'는 조작된 진술서에 서명하라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준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삶'이란 영화의 대사처럼 '동주'는 그렇게 시대의 '십자가'로 자기 죽음을 받아들인다.

암울한 시대에 바치는 진혼가

씻김굿을 하는 무녀 씻김굿을 하는 무녀(최리)의 모습. 이 영화 전체가 곧 하나의 씻김굿이었다.

▲ 씻김굿을 하는 무녀 씻김굿을 하는 무녀(최리)의 모습. 이 영화 전체가 곧 하나의 씻김굿이었다. ⓒ (주)와우픽쳐스


공교롭게도 <귀향>의 소녀들이 끌려간 1943년,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 역시 감옥으로 끌려간다. 꽃다운 청춘들은 그렇게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대동아공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침략과 수탈을 일삼던 일제는 자신만이 우월한 민족이라는 그릇된 허상으로 아시아 각국의 국민에게 위안부와 생체실험에 이르기까지 잔인무도한 일들을 자행해 왔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더 많이 알려지게 된 것은 의식 있는 작가와 감독들이 학살에 관련된 문예물을 끊임없이 생산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품으로서의 영화만이 아닌 의식을 일깨우는 작품도 볼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 <귀향>과 <동주>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적 진실인 셈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한다. 국정화되는 역사교과서에도 위안부 문제가 왜곡 축소되어 있다 한다. 심각하게 우려할 일이다. 역사의 상처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넘어 인권을 짓밟아온 짐승의 시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비참하게 죽은 그들의 혼이라도 안식할 수 있도록 보편적 인간으로서 함께 연대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똑바로 견디면서 봐야 할 영화이다.

<귀향>과 <동주>는 그런 지옥 같은 시대에 희생당한 넋을 기리는 위령제이며 진혼가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이 노래를 듣고 넋이라도 영면하길 부디 기원해 본다.

귀향 동주 윤동주 송몽규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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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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