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의 포스터.

영화 <귀향>의 포스터. ⓒ 와우픽쳐스


"<귀향>은 영화적 완성도를 따지자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관람을 추천한다. 가끔은 보고나면 추천할 수밖에 없는 영화가 있다."

웹툰 작가 강풀의 평이 꽤나 솔직하다. 25일 오후, 그는 매주 목요일 연재 중인 영화리뷰 '강풀의 조조'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조명한 영화 <귀향>을 소개했다. 영화의 스틸과 자신이 직접 그린 웹툰을 버무린 강풀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는 영화 속 소녀의 대사를 비틀며 리뷰를 마쳤다. 스타 배우도, 상업성도 떨어지는 <귀향>을 개봉일부터 관람한 일반 관객들의 마음도 강풀과 같았을까. 

"보고 싶은 영화와 봐야만 할 것 같은 영화. 나는 후자의 느낌으로 <귀향>을 관람했다. 그 늦은 시간. 일부러 극장을 찾아온 수많은 관객들. 아마 많은 관객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이 영화를 선택했고 앞으로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보고 싶은 영화와 봐야만 할 것 같은 영화, <귀향>은 후자다"

 강풀의 <귀향> 리뷰 중 일부.

강풀의 <귀향> 리뷰 중 일부. ⓒ NC소프트 블로그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귀향>이 극장가에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전국 340개 극장, 스크린수 507개로 출발한 <귀향>은 개봉일에만 15만4721명(아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중소배급사인 와우픽쳐스의 배급망을 탔지만, 예매율 1위와 좌석점유율 42.5%를 기록하며 멀티플렉스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친 것이다. <귀향> 측은 "2월 말 개봉작 중 역대 최고 좌석점유율"이라며 "지난 8월 여름 최대 성시기에 개봉하며 2015년 최고 흥행 스코어를 차지한 영화 <베테랑>의 개봉 첫날 좌석점유율과 맞먹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귀향>의 돌풍은 개봉 이틀째인 25일에도 그칠 줄 몰랐다. 스크린 수의 열세에도 할리우드 영화 <데드풀>과 <주토피아>를 따돌리며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했다. 25일만 12만8989명을 끌어 모았고, 누적 관객 수는 개봉 이틀 만에 30만을 육박하는 29만4831명으로 늘렸다.    

흥행의 고비가 될 개봉 첫 주말의 전망도 밝다. <귀향>은 26일 오후 2시 현재 30%에 육박하는 수치로 예매율을 1위를 기록 중이다. 무엇보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대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이 스크린을 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25일, <귀향>의 3대 멀티체인별 스크린 점유율과 상영 횟수 점유율은 각각 9.9%와 13.9%였다. 200만을 돌파하며 순항 중인 19금 블록버스터 <데드풀>의 스크린 점유율(12.0%)과 상영 횟수 점유율(19.1%)을 부지런히 쫓는 형국이다.

여기에 전체 좌석 점유율을 보면 명확해진다. 25일 하루, 전체 40만1528개의 좌석을 확보한 <귀향>은 32.1%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반면, <귀향>의 1.5배가 넘는 66만1394개의 좌석을 차지한 <데드풀>은 12.3%를 기록했다. 여러모로 대조를 이루는 수치인 셈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만든 영화가 온다"는 헤드카피를 내세운 이 녹록지 않은 소재의 휴먼드라마 <귀향>의 흥행을 어떻게 봐라봐야 할까.

멀티플렉스의 문을 열어 젖힌 관객의 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다룬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과 영희 역을 맡은 배우 서미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다룬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과 영희 역을 맡은 배우 서미지. ⓒ 이희훈


<귀향>은 2002년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조정래 감독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할머니들이 남긴 증언과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를 모티브 삼아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시나리오 구상부터 실제 제작까지 걸린 '14년'이란 시간도 시간이지만, <귀향>의 개봉은 여러모로 이례적인 것이 사실이다. 

제작발표회는 2014년 6월이었지만, 묵직한 주제였던 만큼 제작비 조달 자체가 어려웠다. 결국 국민들이 참여하는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통해 순 제작비의 절반 이상인 인 총 12억여 원의 제작비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귀향>에 후원한 총인원은 (2016년 1월 19일 기준) 7만5270명. 

가까스로 작년 4월부터 두 달 간 촬영을 마쳤지만, 다음은 배급이 문제였다. 언론을 통해 제작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는 상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일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치적 상황을 타고, 작년 7월 미 워싱턴에서 열린 '위안부 결의안 채택 8주년 기념식'에서는 프로모 영상을 상영하기도 했다.

작년 12월, 피해자 할머니들이 최초로 관람한 '나눔의 집' 시사회를 시작으로, 국내와 미국의 후원자 시사회가 이어졌다. 영화를 관람한 미국 관객들의 소감이 역으로 국내 언론을 통해 회자되는 이례적인 현상도 펼쳐졌다. <귀향>은 이러한 반향과 개봉 전 예매율 1위 등 관객들의 관심에 힘입어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멀티플렉스의 문을 열어 젖혔다고 볼 수 있다.

<귀향>의 흥행을 지켜 봐야 하는 몇 가지 이유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영화 <귀향>의 한 장면. ⓒ 와우픽쳐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생을 어루만지는 소녀의 씻김굿" - <씨네21> 윤혜지
"분노가 아니라, 치유와 반성과 회복을 위한 씻김굿" - <씨네21> 황진미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올라온 전문가 평점이다. 통상 화제작의 경우 여러 명의 전문기자와 평론가가 평점을 매기는 것과 비교해 2명은 분명 단출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앞서 강풀이 언급한대로 <귀향>의 영화적인 완성도에서는 전문가에 가까울수록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언론 시사 직후 <귀향>에 대한 영화적 만듦새에 혹평을 가했던 한 영화평론가는 자신의 SNS에 쏟아지는 비난 댓글을 받는 해프닝을 겪어야 했다. 반면 각각 약 4000여 명과 1000여 명이 투표한 네티즌과 관람객 평점은 9.54와 9.66에 달한다.

프로파간다와 소재주의에 대한 의혹의 시선, 역사와 현실의 환기와 관객들의 진심, 그리고 사이의 간극. 어쨌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과 <귀향>이라는 영화를 동일시하는 관객들은 그 간극을 크게 개의치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소개한 배급 상황과 더불어 영화가 의도치 않은 사회적 상황 또한 <귀향>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작년 12월 전격적으로 이뤄진 한일 간의 위안부 피해자 협상은 물론이요, 개봉 직전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이 나서서 <귀향>의 상영관 마련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심지어, 스타강사로 알려진 최태성씨가 SNS를 통해 26일 오후 강남 메가박스 5개관을 통째로 대관, 일반인 무료관람 행사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각에선 민감할 수 있는 소재인 <귀향>에 멀티플렉스 체인이 상영을 불편해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지만, 높은 예매율과 사전 인지도와 같은 개봉 전 반응이 결국 초반 흥행의 지렛대로 작용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부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의 경우, '영화 보기 운동' 차원으로 번지며 관객과 언론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 낸 바 있다. 일명 '도가니법'을 이끌어낸 <도가니>가 비근한 예다. 이후 적지 않은 상업영화나 저예산 독립영화들 역시 그 길을 따랐거나 따르고자 했다.

조정래 감독의 끈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 그리고 주제에 공감을보내는 관객들의 열띤 호응까지. 영화 <귀향>은 이 세 요인이 배급과 상영의 문을 넓힌 선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귀향>의 흥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도가니>와 같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현실의 한 단락을 변화시키는 대중영화의 힘을 증명시킬지 귀추가 주목되는 지금이다.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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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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