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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분홍 동백이 화사하다. 봄이구나.
 꽃분홍 동백이 화사하다. 봄이구나.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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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는 아무리 걸어도 피로가 쌓이지 않는 길이다. 걷고난 뒤에 온천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온천의 나라다. 어딜 가도 온천이 있으니, 규슈올레를 걸은 뒤 쌓인 피로를 온천욕으로 깨끗이 날려 보내자.

우리나라에서는 문경새재 옛길을 걸은 뒤, 수안보로 넘어가서 온천욕을 즐기면 아주 좋다. 이건 깨알 정보.

14일에 걸은 규슈올레 기리시마 묘켄 코스는 온천으로 유명한 기리시마 시에 있다. 기리시마 온천은 일본의 풍운아로 불리는 사카모토 료마가 신혼여행을 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료마는 일본 근대화의 기반을 다진 인물로 일본인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는 료마의 기리시마 온천 방문 150주년이 되는 해로 그것을 기념하는 행사가 기리미사 온천지역에서 열린단다.

기리시마 묘켄 코스를 걷노라면 료마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료마가 아내 오료와 함께 산책했던 길이 규슈올레 코스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근대 일본의 역사를 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묘켄 온천거리에서 시작되는 기리시마 묘켄 코스는 이누카이노타키 폭포를 거쳐 와케신사를 지나 료마의 산책길로 이어져 시오히타시 온천 료마공원에서 끝나는 길로 아름다운 숲길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걷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걸은 여운이 남는다. 그래서 걷다보면 아끼듯이 천천히 걷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전체 길이는 11km, 난이도는 중간 정도, 소요예상시간은 4~5시간.

시장이 출근하기 전 매일 걷는 기리시마 묘켄 코스

삼나무 숲이 아름다운 기리시마 묘켄 코스.
 삼나무 숲이 아름다운 기리시마 묘켄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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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시마 묘켄 코스는 절대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길이기도 하다. 길 표시가 너무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는 마에다 슈지 기리시마 시장의 규슈올레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다. 특히 기리시마 묘켄 코스에는 마에다 시장의 집이 있어, 편안한 쉼터 역할도 한다.

마에다 시장은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한 시간 가량 기리시마 묘켄 코스를 걸으면서 꼼꼼하게 길을 살핀단다. 덕분에 다른 규슈올레 코스에 비해 길 표시가 잘 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규슈관광추진기구 이유미씨의 귀띔이다.

걷기 좋은 아름다운 길인 기리시마 묘켄 코스를 찾는 올레꾼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건 마에다 슈지 시장의 넘치는 규슈올레 사랑 때문에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겠지.

일기예보는 13일에 이어 14일에도 비. 하지만 숲길에서는 나무들이 막아주기 때문에 실제 내리는 것보다 비가 적게 내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날, 비는 예상보다 많이 내리지 않았다.

겨울인 줄 알았더니 기리시마 묘켄 코스는 봄기운이 잔뜩 서려 있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분홍색 동백 때문이다. 게다가 숲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게 겨울 풍경인가, 입고 있는 겨울옷이 무겁게 느껴지는 무르익은 봄 풍경이지. 내딛는 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콧노래까지 나올 지경이다. 역시 걷는 건 즐겁다니까.

이누가이노타키 폭포
 이누가이노타키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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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이노타키 폭포에 들러 시원스럽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구경하고, 다시 길을 걷는다. 삼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속으로 길이 강줄기처럼 굽이치며 이어진다. 푹신거리는 흙길이다. 어제 걸었던 이부스키 가이몬 코스가 저절로 떠오른다. 딱딱한 아스팔트길이 이어지던 그 길과 최상급으로 비교된다. 길, 정말 좋다.

걸음이 무거워지는 길이 있으면, 걸음이 가벼워지는 길도 있는 법이지.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도 있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도 있지. 늘 같은 날만 반복된다면 아마도 지루해 미칠 지경이 되어 변화를 갈구하지 않을까? 

길도 그렇다. 좋은 길만 이어진다면 결국은 좋은 줄 모르고 지루해 하리라. 나쁜 길이 있으므로 좋은 길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것이겠지.

마에다 슈지 기리시마 시장
 마에다 슈지 기리시마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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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마에다 슈지 시장님 집이래. 들어갔다가 가야지?"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기에 이름을 슈지(終止)로 지었다는 마에다 시장. 마지막 아이라는 의미란다. 부모가 더 이상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나. 가난한 집에 아이가 일곱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마에다 시장은 초등학생 때 정치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고, 정치인이 돼 7번의 의원 선거와 3번의 시장 선거를 치러, 전부 당선되었다고 한다.

활달하면서 적극적인 성격인 마에다 시장은 일본인으로는 아주 독특한 사람으로 일본 전역에 잘 알려져 있고, 인기도 높단다. 규슈올레 코스에 시장 사택이 있는 건 기리시마 묘켄 코스가 유일하다. 시장 사택에는 젊은 시절의 마에다 시장 사진이 있다. 젊고 패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이 담긴 사진.

"멋있어요, 시장님."

사진을 본 안현미 제주 MBC 작가가 마에다 시장에게 그렇게 외쳤다.

사카모토 료마가 신혼여행 와서 산책을 했다는 길

마에다 슈지 기리시마 시장 사택
 마에다 슈지 기리시마 시장 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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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시장 집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추수가 끝나 텅 빈 논을 끼고 길이 이어진다. 마을을 지났고, 작은 신사 앞도 지났다. 그리고 도착한 와케 신사에서 점심식사로 도시락을 먹었다. 비는 여전히 안개처럼 공중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펼쳐진 도시락 위에 안개비가 흩어져 내린다.

와케 신사는 7km 지점. 이제 남은 길은 4km 남짓. 사카모토 료마가 신혼여행을 와서 산책을 했다는 길이 오롯이 남았다. 어떤 길이기에 료마가 걸으면서 사색에 잠겼을까. 궁금해진다.

사카모토 료마는 막부정치가 이어지던 에도시대에 막부를 타도하고 통치권을 천황에게 돌려준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일본은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살을 당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신혼여행을 간 인물로도 유명하다. 선각자는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그 시대에 신혼여행이라니. 그것도 '허니문'이라는 표현을 했다니 말이다. 서구문명을 앞장서서 받아들였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사카모토 료마와 아내 오료 동상이 시오히타시 온천 료마 공원에 세워져 있다.
 사카모토 료마와 아내 오료 동상이 시오히타시 온천 료마 공원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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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시마 묘켄 코스 도착지인 시오히타시 온천 료마공원에는 그와 아내 오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료마와 그의 뒤를 다소곳이 따라 걷는 오료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그려져 있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료마와 오료가 인연을 맺어 결혼을 하게 된 이야기도 흥미롭다. 원수 사이였던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의 동맹을 이끌어낸 료마가 동맹을 맺은 이튿날, 데라다야 여관에서 막부의 사무라이들에게 공격을 받는데, 그를 위기에서 구해준 사람이 바로 오료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규슈올레를 완주한 손민호 기자가 쓴 <규슈올레>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규슈올레를 걸을 예정이거나 규슈올레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규슈올레에 대한 깨알 정보가 꼼꼼하게 수록되어 있다. 올레꾼 필독서라고나 할까. 인세 절반이 제주올레 후원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걸으면 걸을수록 천천히 아껴 걷고 싶은 길.
 걸으면 걸을수록 천천히 아껴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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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끝에서 여행복 차림의 일본여성을 만났다. 오료 분장을 한 여인이었다. 150년 전에 오료는 남편과 함께 저런 옷차림으로 이 길을 걸었겠지. 그때 오료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걷기 좋은 길은 도착지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끼던 물건을 순식간에 빼앗긴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온천에 발을 담그고 족욕을 하자. 족탕이 마련되어 있으니, 거리낌 없이 양말을 벗고 뜨거운 온천에 발을 담갔다. 아구구, 좋아라.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그제야 기리시마 묘켄 코스를 다 걸었다는 만족감이 가슴을 적신다.

료마공원 근처에는 대중탕이 여럿 있으니, 걸은 피로를 씻을 겸 온천을 즐겨도 좋다. 족탕만으로도 피로가 확 풀렸으니, 온천욕은 저녁식사 이후로 미루는 것도 좋겠지.

오료의 환생인가. 료마는 어디로 갔는가.
 오료의 환생인가. 료마는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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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규슈올레, #료마, #마에다 슈지, #기리시마,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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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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