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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마당이 있는 집이 얼마나 재미있는가를 알려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지 싶습니다. 마당이 없는 집에서 살 적에는 마당이 얼마나 재미있는가를 알 수 없구나 싶어요.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처럼 층을 이룬 집에서는 춤을 추고 싶어도 막상 제대로 춤을 추지 못해요. 발을 구르면서 뛰고 싶어도 발을 못 구르고 뛰지도 못하지요.

달리기를 어디에서 할까요? 종이비행기는 어디에서 날릴까요? 이 겨울에 연을 날리면서 놀려면 어떤 집에서 살아야 할까요? 높은 건물이 빼곡하거나 전봇대랑 전깃줄이 어지러운 데에서는, 게다가 자동차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곳에서는 아무런 놀이를 못 즐기기 마련입니다.

아침에 이불을 마당에서 털고 방바닥을 치우는데 큰아이하고 작은아이가 다툽니다. 작은아이가 아무렇게나 어질러서 굴러다니는 빛깔 펜을 큰아이가 치우는데, 작은아이가 다른 장난감을 치울 듯 말 듯하다가 누나 곁에 달라붙어서 저도 함께하겠다고 나서기 때문입니다. 작은아이는 아직 잠옷을 갈아입지 않았고 추운 겨울에 양말도 안 꿰었습니다.

툭탁거리는 두 아이는 방을 지나 마루에서까지 아옹다옹합니다. 두 아이가 얼마나 더 신나게 툭탁거리는가를 지켜보다가 큰아이를 불러서 마당으로 내려서라고 이릅니다. 그렇지만 큰아이는 마당으로 내려서려 하지 않아요. 한참 기다리다가 아버지가 혼자 대문을 열고 고샅으로 나오니 그제야 앙앙거리면서 따라옵니다.

집에서 서로 가르치고 배웁니다.
 집에서 서로 가르치고 배웁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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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품는 꿈을 신나게 그림으로 옮깁니다.
 마음으로 품는 꿈을 신나게 그림으로 옮깁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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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없는 집에서 살았으면 툭탁거리는 두 아이를 한동안 떨어뜨리지 못하겠지요. 그리고 툭탁거리느라 잔뜩 골이 난 두 아이더러 차가운 바깥바람을 쐬면서 머리를 식히고 구름이랑 해랑 바라보자고 하지 못하겠지요. 셋이 마당에 서서 하늘바라기를 하는데 물까치 예닐곱 마리가 우리 집 마당으로 날아와서 초피나무에 앉습니다.

물까치도 아이들 툭탁질이 궁금해서 날아왔을까요? 큰아이한테는 '동생이 어지른 것을 안 치우다가 누나가 치울 적에 달라붙으면 저리 가라고만 하지 말고 차분히 알려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작은아이한테는 '네가 안 치운 것을 누나가 치워 주는데 누나하고 함께 치우고 싶으면 누나한테 함께 해도 되느냐 하고 부드러이 먼저 물은 뒤에 누나가 좋다고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동시집 <도둑괭이 앞발 권법>(실천문학사, 2015)을 읽습니다. 충남 보령에서 나고 자란 뒤 이 고장에서 그대로 아이들하고 글놀이를 한다는 박경희 님이 빚은 노래잔치입니다. 책을 조용히 펼칩니다. 정갈한 동시집에 흐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입니다.

"봄볕 가득 받은 마늘을 깐다 / 껍데기 벗길 때부터 맵다. (마늘)"

"우리 학교 학생 수 / 다 합쳐봐야 / 열다섯 명 // 우리 새엄마도 / 다른 나라 사람이다 / 근데 난 한국 사람이다. (그냥 우리 동네 사람)"

농업고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 <은수저>. 13권까지 번역되었다.
 농업고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 <은수저>. 13권까지 번역되었다.
ⓒ 학산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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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마늘은 가을볕이랑 겨울볕이랑 봄볕을 가득 받고서 자랍니다. 마늘뿐 아니라 마늘쫑에도 가을부터 봄까지 흐른 고운 볕살이 가득 깃들어요. 비닐이나 랩에 담겨 가게에 놓인 상품인 마늘이나 마늘쫑이 아니라, 볕을 먹고 비를 마시며 바람을 머금은 마늘이나 마늘쫑이지요. 우리가 마늘을 먹을 적에는 마늘에 깃든 볕을 함께 먹고, 밥 한 그릇을 먹을 적에도 쌀알에 담긴 바람하고 빗물을 함께 먹어요.

일본 홋카이도에서 축산 일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만화를 그린다는 아라카와 히로무라는 분이 빚은 만화책 <은수저>(학산문화사)는 한국말로 13권까지 나왔습니다. 이 만화책은 '농업고'를 다니는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와요. 한국에서는 시골에서 농업고가 사라져요. 농업중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어요. 초등학교를 '농업초'로 새로 바꾸려 하는 곳은 아마 없으리라 느껴요. 숲유치원은 있지만 숲초등학교나 숲중학교나 숲고등학교, 나아가 숲대학교로 배움자리를 새로 보듬으려고 하는 손길도 아직 거의 없어요. 만화책 <은수저> 2권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소는 왠지 친근하게 구네." "늙은 소들뿐이라 사람을 잘 따라." "늙은 소?" "엄마가 하나하나 개성을 파악해서 귀여워하며 기르니까, 웬만한 일로는 소를 처분하지 않거든." (116쪽)

오늘날 한국에서 '소 농장'을 하는데 웬만한 일로는 소를 잡지 않는 집은 얼마나 있을까요? 소 한 마리 한 마리를 살뜰히 여기면서 돌보는 손길로 소젖을 얻으려는 집은 얼마나 될까요?

들길을 걸으며 겨울바람을 쐽니다. 겨울이 되어 씨앗이 모두 날아간 억새를 살그마니 쓰다듬습니다.
 들길을 걸으며 겨울바람을 쐽니다. 겨울이 되어 씨앗이 모두 날아간 억새를 살그마니 쓰다듬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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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는 이웃집 개를 구경하려고 문틈으로 들여다봅니다.
 두 아이는 이웃집 개를 구경하려고 문틈으로 들여다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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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짓는 농사가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그러나 크게 짓는 농사가 되면 하나하나 살뜰히 아끼거나 돌보기 어렵습니다. 학교라는 곳도 커다란 학교가 되면 교사가 모든 아이를 하나하나 알뜰히 사랑하거나 보살피기 어렵지요.

우리 식구가 사는 고흥이라는 고장을 보면, 고흥읍에 있는 큰 초등학교에는 천 아이가 넘게 다녀요. 작은 면에는 스무 아이가 다니거나 백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고요. 천 아이가 넘게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서로 얼마나 가까이 지낼 만하거나 교사와 아이 사이에 얼마나 따사로운 손길이 흐를 만할까요.

올해로 우리 집 큰아이는 이태째 초등학교에 안 가고 집에서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삶을 누립니다. 때때로 동생하고 툭탁거리지만, 툭탁거리고 나서 으레 둘이 살가이 안고 달래면서 토닥여 줍니다. 툭탁질을 그치고 손이랑 낯을 씻은 뒤 밥상맡에 나란히 앉으면 언제 툭탁거렸느냐는 듯이 깔깔거리면서 수저를 들어요.

헛간 벽을 타고 자라는 담쟁이를 붙잡고 매달려 놀기.
 헛간 벽을 타고 자라는 담쟁이를 붙잡고 매달려 놀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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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수레도 아이들한테는 놀잇감이 됩니다.
 짐수레도 아이들한테는 놀잇감이 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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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함께 배우고 놀다가 마루에서 달리고, 이내 마당으로 뛰쳐나와서 이 겨울에도 "아, 덥다!" 하고 외칩니다. "언제 여름이 와? 빨리 여름이 와서 골짜기 가고 바다 가면 좋겠다!" 하고 더 외쳐요. 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큰 학교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읍내 큰 학교가 학생을 많이 끌어모으면 나라에서 지원비를 많이 준다는데, 지원비로 강당이나 기숙사나 체육관을 지을 돈은 얻더라도 뭔가 큰 것을 잃지 않는가 하고.

덧붙이는 글 | 전남 고흥에서 '사진책도서관 숲노래'를 꾸리면서 아이들하고 짓는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6년 2월호에도 함께 싣습니다.



태그:#시골도서관, #시골살이, #아이키우기, #고흥,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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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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