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팀 입장에서 보면 얄미울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었다. 일본은 승리를 지켜내기 위해 후반전 추가 시간 3분이 흘러갈 동안 한국의 왼쪽 측면에서 미드필더 도요카와 유타를 중심에 두고 시간을 끌기 위해 진을 쳤다. 무리하게 공격 방향을 전환하지 않고 반경 10미터 이내의 공간에서만 계속 공을 돌리며 소유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 선수들은 평정심을 잃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흥분한다고 해서 펠레 스코어 점수판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축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이 한국 시각으로 30일 오후 11시 45분 카타르 도하에 있는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을 겸한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맞수 일본에게 후반전에 내리 세 골을 내주며 2-3 펠레 스코어로 역전패했다.

눈앞에서 놓친 우승트로피

 30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대한민국 대 일본 결승전. 2대3 한국의 패배로 경기가 끝난 후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6.1.31

30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대한민국 대 일본 결승전. 2대3 한국의 패배로 경기가 끝난 후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6.1.31 ⓒ 연합뉴스


FC 레드 불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클럽) 일정 때문에 먼저 소속 팀에 복귀한 황희찬을 대신하여 골잡이 자리에 진성욱을 내세운 신태용호는 65분까지 완벽에 가까운 경기 운영을 펼치며 우승 샴페인을 준비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희망 진성욱이 빼어난 활약을 펼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기 초반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은 두 차례의 결정적인 기회를 아쉽게 접어두고 일본 골문을 노린 우리 선수들은 20분 만에 선취골을 만들어냈다. 심상민이 왼쪽에서 띄워준 공을 진성욱이 이마로 떨어뜨려 주었고, 이 공을 받은 권창훈이 오른발 발리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권창훈의 발끝을 떠난 공이 일본 수비수 이와나미 다쿠야의 왼쪽 무릎에 스치며 방향이 살짝 바뀌어 굴러들어간 것이다.

선취골을 도운 진성욱은 후반전 시작 2분도 안 되어 이창민이 낮게 깔아준 공을 완벽하게 잡아놓고 180도 돌아서는 멋진 회전 기술을 자랑하며 오른발 돌려차기를 성공시켰다. '권창훈-이창민-진성욱'으로 이어진 연결 흐름도, 마무리 동작도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멋진 작품이었다.

이렇게 후반전 중반까지 2-0의 점수판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보는 축구팬들이나 뛰는 선수들이나 이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일만 생각했던 것이다. 잘 나갈 때 뒤를 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지 너무나 잘 가르쳐준 경기가 된 것이다. 축구장에서의 교훈은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잠을 달아나게 했다.

적어도 한국 벤치는 냉철했어야 했다

 30일 오후(현지시각) 카타르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대한민국 대 일본 결승전. 2대3 한국의 패배로 경기가 끝난 후 신태용 감독이 경기장을 올려다보고 있다. 2016.1.31

30일 오후(현지시각) 카타르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대한민국 대 일본 결승전. 2대3 한국의 패배로 경기가 끝난 후 신태용 감독이 경기장을 올려다보고 있다. 2016.1.31 ⓒ 연합뉴스


한국 선수들은 2-0의 점수판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일본 골문을 위협했다. 62분에 류승우가 오른발 중거리 슛을 터뜨렸다. 일본 골문 왼쪽 기둥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고 말았지만 그 과정이 더 인상적이었다. 일본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쩔쩔매는 장면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분 뒤에도 일본의 오른쪽을 무너뜨린 심상민이 날카로운 크로스로 문창진의 헤더 슛을 도와주었다. 문창진의 이마에 맞은 공이 일본 골문 크로스바를 살짝 넘어가고 말았지만 그 과정 역시 일본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 선수들과 벤치는 간과하고 말았다. 한국이 2-0을 만든 이후 계속해서 잘 나가는 사이에 일본은 조심스럽게 반전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상징적인 장면이 슈퍼 서브 아사노 다쿠마가 교체(60분)로 들어온 것이었다. 일본의 조별리그 세 경기, 8강-준결승 경기를 살펴보면 이러한 조치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결과만 놓고 봐도 교체 선수 아사노 다쿠마에게 만회골, 역전 결승골 두 골을 내줬다는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빠르고 정확한 역습 전술로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그리고 우리와 결승전에서도 그렇게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적어도 한국 벤치에서는 이라크와의 준결승전에서 '도하의 기적'을 이룬 일본의 경기력 포인트가 어디어디인가를 정확하게 읽고 있어야 했다. 잘 나갈 때에도 한 번 더 냉철한 상대 분석이 이루어져야 했던 것이다.

일본은 66분에 첫 번째 유효 슛을 기록했다. 비록 한국 수비수 몸에 맞고 골키퍼 김동준 앞으로 느리게 굴러오는 공이었지만 교체 선수 아사노 다쿠마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딱 1분 뒤에 첫 골을 얻어맞았다. 일본 미드필더 야지마 신야의 역습 찔러주기가 한국 센터백 뒤를 노린 것이다. 발 빠른 아사노 다쿠마를 따라붙지 못했다.

이 순간이라도 우리 수비수들은 정신을 바짝 차렸어야 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1분 뒤에 동점골까지 얻어맞았다. 오른쪽 측면에서 너무 쉽게 크로스를 허용했고, 야지마 신야가 마크맨도 없는 상황에서 런닝 헤더 슛을 가볍게 성공시켰다. 이 과정에서 우리 수비수들은 공에만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왼쪽 풀백 심상민이 자신이 따라붙으며 밀어내야 할 야지마 신야를 너무 쉽게 풀어준 것이었다.

1분 간격으로 터진 일본의 득점 과정에서 한국 수비 조직력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읽어낼 수 있었다. 리우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귀중한 목표를 이뤘지만 그 다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1분에 터진 일본의 역전 결승골이 단적으로 이 부분을 꼬집고 있었다. 한국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가 걷어낸 공이 멀리가지 못하고 일본 미드필더 나카지마에게 걸렸고, 이 공은 곧바로 아사노 다쿠마에게 연결되었다.

그런데 이 패스가 낮게 깔리는 날카로운 패스가 아니고 높게 뜬 공이었기 때문에 한국 센터백이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장 완장을 찬 수비의 핵 연제민은 아사노 다쿠마를 몸으로 우선 밀어내지 못하고 허겁지겁 뒤를 따라 뛰어 들어가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14분 사이에 무려 세 골을 내준 뒤에서야 신태용 감독은 연제민을 대신하여 수비수 정승현을 들여보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우리 옛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겨우 1골 차이라고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마음대로 따라붙을 수 없는 격차를 느낄 뿐이었다. 이창민을 대신하여 들어간 공격형 미드필더 김승준이 분전했지만 일본의 교체 선수들처럼 공간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일본 수비수들과 뒤엉켜 엉뚱한 몸싸움만 해댔다.

잘 나갈 때 뒤를 살피지 못한 신태용호는 우승 트로피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리우올림픽 본선 준비를 위한 예방주사로서는 조금 아픈 편이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 결과(30일 오후 11시 45분,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도하)

★ 한국 2-3 일본 [득점 : 권창훈(20분,도움-진성욱), 진성욱(47분,도움-이창민) / 아사노 다쿠마(67분,도움-야마지 신야), 야지마 신야(68분,도움-야마나카), 아사노 다쿠마(81분,도움-나카지마)]
- 주심 : 압둘라흐만 알자심(카타르)

◎ 한국 선수들(감독 : 신태용)
FW : 진성욱(78분↔김현)
AMF : 류승우, 문창진, 권창훈
DMF : 박용우, 이창민(78분↔김승준)
DF : 심상민, 송주훈, 연제민(83분↔정승현), 이슬찬
GK : 김동준

◎ 일본 선수들(감독 : 데구라모리 마코토)
FW : 구보 유야, 오나이우(46분↔하라카와)
MF : 나카지마, 엔도, 오시마(60분↔아사노 다쿠마), 야지마(75분↔토요카와 유타)
DF : 야마나카, 우에다, 이와나미, 무로야
GK : 구시비키
- 경고 : 야마나카(23분), 이와나미(86분)

◇ AFC U-23 챔피언십 최종 순위
1위 일본
2위 한국
3위 이라크(3위까지 리우올림픽 본선 진출)
4위 카타르
축구 한일전 리우올림픽 진성욱 신태용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top